한예슬
상승세다. 속도가 무섭다. ''무릎팍 도사''에 나와 ''오빠''를 연발했을 뿐인데도 성별을 불문한 다수는 한예슬(25)에게 애정을 쏟는다. ''귀엽다''는 남자들의 말보다 ''나까지 녹였다''는 여자들의 말이 자주 들릴 정도다.
첫 주연작 ''용의주도 미스 신(박용집 감독·18일 개봉)''의 개봉을 앞두고 펼친 홍보로만 이런 효과를 내고 있으니, 영화가 공개된 뒤를 상상해 보는 건 스릴있다. 영화가 한예슬의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것인가 아니면 제동을 걸까, 지켜보는 사람도 이런데 한예슬의 마음은 더 두근두근이다.
"자신 있어요. 일단 부딪혀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일찍 하는 게 낫지 않아요?"
[BestNocut_R]한예슬이 택한 ''용의주도 미스 신''은 4명의 남자를 한꺼번에 만나며 ''좋은 조건''을 찾아 헤매는 여자 ''신미수''가 주인공이다. 영화 데뷔작에서 ''원톱'' 주연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인 한예슬은 "막중한 책임이지만 욕심을 참을 수 없었어요"라며 웃었다.
신미수는 재벌 3세, 사시 준비생, 연하남, 핸섬한 광고주까지 빠짐없이 옆에 둔 욕심 많은 여자다. 하지만 용의주도한 양다리 작전은 그녀의 이름대로 ''미수''에 그치고 만다. 숨 가쁘게 4가지 연애 에피소드를 풀어낸 영화는 마침내 여성의 자아 찾기에 이른다.
"네다리 연애요? 어휴, 실제라면 못하죠(웃음). 배우보다 더 힘든 일인 걸요. 남자에게는 지나치게 용의주도한 신미수는 남자를 바꿀 때마다 모습도 변해요. 한 작품에서 4명을 연기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죠."
보통 한 명을 상대하기 마련인 영화에서 무려 네 명의 남자 배우를 독차지했지만 다행히 권오중, 이종혁, 김인권은 ''유부남''이어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유부남이 편해요. 상대가 싱글이라면 남자 대 여자의 시선을 견제해야 하거든요. 싱글인 손호영 씨는 4명 중 역시 가장 매너가 좋더라고요."
전매특허인 발랄한 매력을 무기로 스크린을 누비는 한예슬은 전체 95%의 장면에 등장하며 영화를 이끌었다. 독특한 캐릭터 덕분에 히트작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여럿 나왔다. 비교당하는 일은 한예슬이 가장 많이 받아야 할 질문이고, 가장 길게 말해야 할 답이다.
"연기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 첫 작품은 ''환상의 커플''이에요. 실제로도 나상실처럼 살았어요. 머리 손질도 하지 않았고 옷차림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만큼 제가 둔해요. ''용의주도''에서는 상실의 캐릭터를 발전시켰어요. 닮았죠. 캐릭터가 연장된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장면마다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한예슬은 ''생명력''이란 단어를 자주 꺼냈다. ''용의주도 미스 신''이 자칫 단순한 전개로 보여도 장면마다 담긴 ''생명력''은 자신 있다고도 강조했다.
한예슬
의외의 달변가 기질을 드러낸 한예슬은 단독 주연을 맡기까지, 짧지만 거센 폭풍처럼 느껴진 지난 시간을 돌이키기도 했다. 이야기는 시트콤 ''논스톱''에 출연하던 때부터 시작했다.
"준비가 안 됐던 저한테 너무 많은 책임을 줬어요.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도망을 못 가요. 연기를 왜 그렇게 못 했는지 모르겠어요."
시트콤과 예능 프로그램의 쾌활한 이미지는 그래도 나았다. 2005년 출연한 드라마 ''그 여름의 태풍''으로 맞은 질타는 걷잡을 수 없었다. 나고 자란 미국으로 돌아간 한예슬은 연기학원을 찾았다. 포기보다는 시련을 극복하고 싶은 오기가 생겨서다. 이어 택한 작품이 ''환상의 커플''이다.
"''환상의 커플''이 박수를 받았던 건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연기자가 큰 즐거움을 줬기 때문이에요. 격려의 차원이죠. 여전히 부족하지만 ''한예슬 가능성은 있구나'' 정도로 봐줬던 거예요."
"지금 대중은 성장하는 한 어린 배우를 보는 거예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무한 경쟁의 ''연예계''에서 혹독한 바람을 뼈 저리게 맞은 한예슬은 완벽한 모습을 위해 애쓰기보다 가능성을 향한 대중의 환호를 원한다.
"지금 대중은 성장하는 한 어린 배우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 직업이 더 재밌어요. 하나씩 보여줄 때마다 반응을 기다리는 재미죠. 상승세인걸 알아요. 그래서 계산적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옳고 그른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하고 싶은 걸 하나씩 하면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순탄한 기반을 마련할 거예요."
다른 연예인이었다면 질타받았을 ''진한 애교''가 오히려 환호받는 분위기는 분명히 한예슬이 ''호감형 연예인''으로 떠올랐다는 증거다. 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상승세가 과연 어디서부터 나올까 궁금하던 찰라, 한예슬이 꺼내 놓은 말에서 조금이나마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여배우의 화려함은 괴리감을 줄 수 있어요. 캐릭터를 대리만족으로 돌려주는 게 연기자의 숙제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