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스미스
인간이 ''전설''로 남는 방법, 참 간단하다.
인류 최후의 생존자 네빌(윌 스미스)은 고독과 불안으로 몸서리치지만 지구에 혼자 남았다는 공포에도 뜬금없이 꿋꿋하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류가 사라졌지만 강력한 면역체 덕분에 살아남은 책임을 다하려는 듯 달리고 또 달린다.
[BestNocut_R]영화 ''나는 전설이다(프란시스 로렌스 감독)''가 택한 2012년을 사는 과학자 네빌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같다.
해 뜰 때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깨 잡초만 남은 뉴욕의 거리를 차를 타고 달린다. 실험할 동물을 잡고자 거리를 질주하거나 DVD 대여점에 들려 차례로 영화를 빌리는 것도 네빌의 일과다. 허드슨강에 정박한 항공모함에서 여유 있게 골프를 치는 일은 홀로 남은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해 질 무렵 또다시 울리는 알람을 듣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철문을 굳게 닫는다. 어둠은 곧 죽음의 공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염으로 인간성을 잃고 포악해진 변종인류에게 투입할 백신을 만들려고 실험을 반복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를 늘리는 변종인류와의 싸움이나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잡초로 뒤덮인 뉴욕을 스크린으로 구경하는 일은 꽤 흥미롭다. 폐허가 된 도시에 홀로 선 네빌의 처연함도 감정을 자극한다.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를 향해 작정하고 ''왜?''를 묻는다면 얻어낼 답이 적다. 영화는 불친절하게도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신 상황을 조각조각 이어붙이는 데 그쳤다.
하루아침에 인류가 망했고 오직 네빌만이 살아남았는데도 왜 재앙이 닥쳤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바이러스와 백신, 이를 찾는 과학자가 등장하지만 영화 전반에 깔린 종교 색채는 오히려 극의 힘을 잃게 한다. ''신의 뜻''이라며 네빌을 이끄는 제3의 인물이나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네빌의 행적도 SF영화로는 낯선 선택이다.
재앙으로 잃은 딸(윌스미스의 진짜 딸 윌로우가 출연)이 "아빠 나비가 있어"라고 수 없이 말한 이유가 영화 말미에 가서야 드러나며 결국 ''전설''이 되기로 작정한 네빌의 선택은 숭고하기보다 허무한 느낌이 짙다.
영화는 리처드 매드슨이 1954년 발표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미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지고 50여 년 만에 다시 제작된 작품은 견고해진 컴퓨터 그래픽을 제외한다면 새로울 게 없다. 물론 결말에서 원작과의 차이를 보이지만 2007년식 영화의 끝맺음은 1954년 선택보다 결코 앞서지 않는다.
여러 아쉬움 속에서 더 빛을 내는 건 역시 윌 스미스다.
''맨 인 블랙''이나 ''아이 로봇'' 같은 SF영화에서 유난히 강한 면모를 보인 윌 스미스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혼자 남은 인간을 연기해야 해 대사보다 표정 연기가 많았는데도 최후의 생존자의 울음을 얼굴과 몸짓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흑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음악을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남기는 울림은 꽤 크다.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15kg이나 줄이고 16년 전 몸매로 돌아갔다는 윌 스미스는 근육을 자랑하며 액션 신을 모두 직접 소화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것은 전작 ''행복을 찾아서''에서 보여준 이전보다 넓어진 연기의 스펙트럼이 다시 단순한 액션배우로 폭좁게 회귀한 듯 하기 때문일 듯 싶다. 12일 개봉, 12세 관람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