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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母情의 의미를 환기시켜주는 ''열한번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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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한 살 재수(김영찬)는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았다. 일찍 여윈 엄마의 충격도 그렇거니와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시도 때도 없이 때린다. 꼬깃 꼬깃 쌈지돈 모아 컴퓨터 사려던 돈은 못난 아버지(류승용)가 어떻게 알고 빼앗가 가 도박으로 탕진한다. 학교에서는 기초 생활비 보조로 나온 식권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한다. 친구라고는 이웃에 사는 백수 아저씨 백중(황정민) 뿐이다.

    열한 살 재수에게 열한번째 엄마가 찾아온 것은 그렇게 재수를 둘러싼 세상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때 였다. 하지만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끌려온 새 엄마(아버지가 그렇게 부르라고 우격다짐을 함)는 역시 실망스럽다. 엄마같은 푸근함과 따스함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해도 너무한다. 하루종일 잠만 자다가 음악이나 크게 틀어놓고 공부를 방해하지 않나, 식권으로 사온 김밥 한줄을 게걸스럽게 뺏어 먹는다. 몰래 책상을 뒤져 식권 한뭉텅이를 훔쳐다가는 떡뽁이에 오뎅을 사다 배불리 먹는, 차라리 없으면 좋은 그런 엄마다. 재수의 열한 살 인생은 그렇게 힘겹다.

    하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주먹아래 둘은 어느덧 하나가 된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도 머리를 쥐어 박고 도박에서 돈을 잃고 술이라도 먹고 오는 날이면 집안에 가뜩이나 없는 살림이 풍비박산이 난다.

    기분좋게 들어온 아버지가 고기를 사준다. 외식이다. 먹으면서도 때린다. 노래방에 2차를 갔다. 엄마와 재수는 누가 더 불쌍한지 ''놀이''를 한다. 엄마는 재수에게 "내가 제일 불쌍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못난 아버지를 둔)네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동정한다. 재수는 "난 진짜 엄마(어려서 죽음)라도 있었는데 엄마도 없다고 하는 ''엄마''(김혜수)가 더 불쌍하다"고 맞선다. 아버지는 자면서도 잠꼬대로 욕을 한다. 재수가 나중에 혹여나 이상태로 크면 혹 아버지처럼 세상에 불만 가득해서 마구 ''짖어대는''모습이 되지 않을까?

    어느 날 아버지가 또 재수를 심하게 때린다. 보다못한 엄마는 말리다 같이 얻어맞는다. 불쌍한 아이를 보고 엄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연민이 피어오른다. 둘은 교감은 이제 부터 시작이다. 배아파 낳은 아이에 대한 모정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로 새겨진 정이 둘을 이어준다.이제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길만 남은 것일까?

    김혜수의 변신이 놀랍다. 이미 한차례 ''좋지 아니한가''에서 망가진 모습의 맛보기를 선보인 김혜수는 제대로 자신을 풀어놓았다. 외양은 풀었으되 마음은 풀지 않았다. ''열한번째 엄마''의 김혜수는 한결같은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시종일관 결말까지 한호흡으로 연기하고 있다. ''타짜''이후 깊어진 연기 우물의 물맛이 상쾌함을 준다. 김혜수는 22년 연기를 해오고도 퍼 올릴 물이 여전히 넘쳐남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남겼다.

    영찬이는 영화의 신파코드를 책임지고 있다. 갈수록 기성 배우들의 모양새를 따라가는 작위적인 아연연기자들의 모습이 영찬이에게서는 훨씬 적고 순도가 높다.

    김혜수와 함께 동갑내기인 탄탄한 연기의 대명사 황정민과 류승용은 연기의 혼성 트리오를 이룬 듯 절묘한 혼합 배분을 이룬다. 백수이자 남의 여자를 넘보는 백중(황정민)이나 TV다큐 ''긴급출동 SOS''에나 나올법한 못난 아버지 역의 류승용의 교집합은 모정의 결핍이다. 엄마의 따스한 온기담은 품을 그리워하기는 백중이나 류승용이나 재수나 매한가지다.

    슬프되 울리지 않고 아프지만 상처가 아닌 쓰라림으로 다가서는 절제된 감정의 수위는 감독의 몫이었다. 다만 관객에게 숨쉴수 있는 공간은 좀 더 열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2세관람가.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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