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무대 안개가 짙게 드리운 1930년대 비밀 댄스 홀, 은은한 조명과 스윙 연주에 맞춰 4명의 남자 댄서가 화려한 춤으로 무대를 채운다.
분위기가 고조될 즈음, 역동적인 댄스를 선보이며 나타난 조난실(김혜수)에게 주변의 시선이 쏠린다. 난실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지고 여자임을 드러내자 환호가 이어지고, 2층에서 술을 마시며 무대를 보던 ''모던보이'' 이해명(박해일)은 그 자리에서 사로잡힌다.
18일 오후 경기도 파주 세트장에서 취재진에게 공개된 영화 ''모던보이(정지우 감독·KNJ엔터테인먼트 제작)'' 촬영 내용은 주인공 해명과 난실이 처음 만나는 장면. 난실에게 첫눈에 반하는 해명의 모습이 우화적으로 펼쳐졌다.
[BestNocut_R]남녀 주인공이 첫 만남을 이루는 장소인 만큼 제작진이 공들여 만든 세트장은 2층 규모로 1930년대 건축과 실내 디자인을 고증하고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 제작진은 당시를 기록한 문서를 통해 비밀클럽 존재를 확인했다. 비록 식민지였지만 막 현대 문화가 도입돼 몸부림치던 시대적 느낌을 살리고자 당시 쓰인 엘리베이터까지 세트에 설치했다.
비밀 댄스클럽의 리더이자, 가수, 유명 양장점의 재단사 등 직업도 역할도 여럿인 여주인공 난실로 분한 김혜수는 이날 날렵한 스윙 댄스 실력을 드러냈다.
무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다 난실을 발견하는 장면을 연기한 박해일은 넋을 잃고 계단을 내려오던 촬영 중 실제로 발을 헛디디는 아찔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모던보이
한편 촬영 현장 공개 뒤 기자간담회에서 김혜수는 "1930년대는 누구나 선입견을 품는 시대이자 가볍게 다루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면서도 "여러 장치를 풍성하게 담아 인물 간에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고 ''모던보이''의 분위기를 밝혔다.
또 "분장과 의상, 미술팀이 철저한 고증에 근거해 만든 새로운 제작물을 먼저 시험받는 혜택을 누리는 중"이라며 "당시를 도드라지게 살았던 여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챙겨 봤고 3개월간 춤과 노래 연습을 했다"고 준비과정을 전했다.
정지우 감독 "어떤 의미로는 성장 영화일 수도…"
연출을 맡은 정지우 감독은 "영화가 선택한 1937년은 식민지 상황이 고착돼 친일이나 독립을 운운하지 않게 되고 소수지만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등장한 때"라고 밝히며 "하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미래가 없는 데서 오는 답답하고 암울함, 음란하고 퇴폐적인 문화가 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주인공 해명의 입을 통해 ''빼앗긴 나라를 찾는 것과 잃어버린 애인을 찾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란 질문을 던지는 정 감독은 "현실이 행복하길 바라는 남자가 불우한 시대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넘길지 관심있었다"고 기획 의도를 덧붙였다.
이어 "잘 먹고 잘 살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돼 조금씩 인식이 넓어지는 해명의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 성장영화가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모던보이''는 부러울 것 없는 한량 해명이 미스터리한 여인 난실과 사랑에 빠지고 감쪽같이 사라진 난실을 찾아나서자 의문의 상황에 얽히는 이야기다. 경상남도 합천에 재현한 1930년대 경성 거리와 당시의 분위기가 남은 대구, 서울 등지를 오가며 현재 90% 이상 촬영을 마쳤고 내년 초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