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돌라
부산 영도구 월드카니발 놀이기구 참사가 발생한 지 2달이 넘은 지난 24일, 놀이기구 사고로 어머니와 아들, 형수와 조카를 졸지에 저 세상으로 보낸 전종석 씨는 인터뷰 도중 갑자기 광고이야기를 꺼냈다.
전 씨는 "중년신사가 택시를 타고 가다 죽은 딸에게 전화하는 광고를 보면 정말 이해가 가고,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며 "그런 사람이 우리 말고도 많을 텐데 개인 욕심이겠지만 제발 광고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죽은 아들이 자꾸 보여 눈이 쓰라릴 때까지 감지 못했다는 전 씨는, 하지만 그 슬픔을 마음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다.
딸 둘과 부인을 잃고 혼자 남은 형님 전기석 씨와 사고현장에서 일가족이 추락하는 장면을 손녀를 안고서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 전운성 씨를 생각하면 드러내놓고 슬퍼할 수도 없었기 때문.
☞월드카니발 참사로 4명의 가족을 잃은 피해자 전종석 씨☞실어증에 걸린 아버지 전운성 씨는 둥그런 원만 계속 그려 보여주었다모든 일가친척들이 한꺼번에 피해자가 되는 기막힌 상황 속에서, 누가 누구를 위로하지도 못하고 드러내놓고 슬퍼하지도 못하는 분위기를 눈치라도 챈 듯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종석 씨의 딸 지민(8) 양도 말문을 닫았다. 전 씨는 "나이도 어린 것이 그런 분위기를 자기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동생 이야기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며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자신도 자꾸 위축된다"고 말했다.
한편 부인도 딸도 없는 서울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덩그러니 남은 형님 기석 씨는 하루하루 삶을 지탱하기 힘이 들어 자꾸 술에 의지를 하고 있어 종석 씨는 형을 걱정하며 "술로 자꾸 이겨보려고 하는데 정말 옆에서 보기 힘들 정도다. 정말 광고처럼 아직도 부인과 딸의 휴대폰을 그대로 살려놓고 가끔씩 그 번호로 전화를 하며 그리움을 달래곤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가족들은 죄다 정신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고, 손녀 딸을 안고 곤돌라 안에서 30여 분을 지탱했던 일흔 살의 아버지는 어깨 부상까지 겹쳐 병원을 몇 군데나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버지 전 씨가 여전히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종석 씨는 노트 속에 꼭꼭 숨겨놨던 그림들을 보여줬다. 둥그런 원에 네모난 구조물이 매달린 대관람차 모양이었다. 사고 지점과 추락 방향 등도 그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사고 직후 실어증으로 말을 못할 때, 며칠 동안 둥그런 원만 계속 그려서 보여줬다. 처음에는 무슨 그림인 줄 몰라 정말 아버지가 정신에 문제가 생겼구나 걱정도 많이 했는데 알고보니 대관람차와 사고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종석 씨는 아버지 전 씨가 병상에 있는 동안 이런 그림을 백여 장 넘게 그렸다고 했다. 결국 이 그림이 계기가 돼서 유족들이 대관람차 관람창을 발로 차보겠다는 제의를 했고, 곤돌라 부실제작 사실이 밝혀졌으니 그림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보상금 이야기로 넘어가자 종석 씨의 얼굴 빛이 흐려졌다. "워낙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이 나와서 이야기 하기가 꺼려진다"는 것이었다.
종석 씨에 따르면 보상금은 월드카니발 측 국내 대행사에서 사고 보험으로 들어놓은 5억 원이 전부다. 그것도 곤돌라 한 개당 보험이 들어있어 사고 보상금은 ''일인당''이 아니라 ''곤돌라 당''으로 나오게 된다. 1개 곤돌라 안에서 5명이 모두 사고를 당했으니 보험금은 결국 사망자 1명당 1억 원에 불과한 셈, 종석 씨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상금의 ''백분의 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말끝을 흐렸다.
[BestNocut_L]이 밖에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홍콩월드카니발 측에서 사고 합의금으로 70만 달러를 제안해왔다. 종석 씨는 "완전히 합의된 상황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또 뭐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 이상 받아내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보상금과 합의금을 합쳐 일인당 2억 원 정도 보상을 받게 된 셈이다. 유족들이 생각하기에 어처구니 없는 보상금 규모지만, 이마저도 아직 유족들에게 실제 지급된 돈은 없다는 점이 이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홍콩월드카니발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한 재판은 지난 26일까지 이제 2차 공판이 끝난 상태다. 외국인들이 포함돼 있다보니 통역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재판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직 첫 번째 소송도 끝나지 않았지만 유족들은 스위스의 곤돌라 제작사를 상대로도 부실제작을 이유로 소송을 걸 예정이다.
하지만 국제적인 재판이 되는데다 승소 가능성도 그리 밝지가 않다. 종석 씨는 "부산 법조타운에 있는 변호사를 백여 명 이상 찾아다녔지만 수임하겠다고 나서는 변호사가 없었다"며 "보상금 합의만 보고 끝내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수임할 변호사를 정했고, 소송을 통해 부실제작 사실도 끝까지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또 사고 이후 사과 한마디 없었던 놀이기구 안전성 검사 책임자와 영도구청 관계자까지도 모두 법정에 불러내겠다는 입장이다.
종석 씨는 "담당 검사가 유원시설 관계자와 안전성 검사 책임자의 경우 형사입건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며 "법으로 안 된다고 하니 개인적으로 테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또 재판과정에서 홍콩 월드카니발 측은 사고 놀이기구에 안전장치가 안 돼 있는 점을 지적해줬다면, 자기들도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진술했다며 분노를 나타냈다.
"안전벨트나 안전봉 등 안전사항을 미리 지적해 줬더라면 월드카니발 측에서는 영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100% 다 들어줬을 거라고 했습니다다. 하지만 아무런 지적도 없었지요. 안전성 검사가 무성의하게 형식적으로 진행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실제로 안전성 검사가 무성의하게 진행된 정황은 이미 경찰조사 단계에서 대부분 밝혀졌다.
검사 총책임자인 모 대학교수가 검사기간 동안 현장을 비운 채 해외로 출국을 하는가 하면 현장에서 검사를 진행했던 검사반원들은 이 교수의 제자들로 검사반원으로 지정된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경찰조사에 따르면 이 교수는 검사비 3천만원을 받은 뒤 검사반원들에게는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밝혀졌지만 안전성 검사 총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안전성 검사에 대한 현행 법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아 검사기준도 애매하고 각 검사반원들의 임무도 불명확하기 때문에 수사기관도 상당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찰이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검사작업에 대해 평가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업무상 과실을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경찰에서는 항공기 사고시 꾸려지는 합동 사고조사반 처럼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제 3의 기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부산 영도경찰서 정성학 수사과장은 "현행 법은 놀이기구 안전성 검사를 문화관광부가 유원시설협회에 위탁을 주도록 돼 있다. 하지만 대형사고가 났을 경우는 제 3의 중립적인 기관에서 위원회같은 형태라도 구성해서 안전성 검사와 관련한 인과관계를 밝혀줬으면 혐의를 밝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현재는 그런 규정이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현재 사고 유족들은 안전성 검사 책임자가 형사처벌이 안 될 경우 민사소송으로라도 책임을 묻겠다며 독일 기술진의 자문을 받는 등 현행 법의 한계를 넘기위한 힘겨운 준비를 하고 있다.
종석 씨는 "모든게 마무리가 되면 집을 하나 사서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여 서로 위로하고 살았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하지만 이들이 꿈을 이룰 때까지 유족들은 어쩌면 몇 년이 될지도 모를 길고 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