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친구 중에 성질이 급한 놈이 하나 있는데 이 친구 장가도 빨리 갔지만 결혼하고 정확히 10개월 만에 첫아이를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질 급한 놈은 애도 잘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신혼여행에서 생긴 허니문베이비라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속도위반으로 태어난 애라고 여기지만 말이다.
이 허니문베이비(honeymoon baby)는 영어에서 들어온 외래어다. 그런데 순수 우리말도 이런 표현이 있으니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국어사전에는 ''말머리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예전에는 시집 장가갈 때 신랑은 말을 타고 신부는 가마로 식장으로 갔다. 이 때 신랑을 태운 말이 머리에는 아이를 지고 가니 첫날밤에 새 생명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그런데 이처럼 외래어가 고유어를 몰아낸 것이 비단 우리말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영어는 그야말로 외래어의 난지도 쓰레기 섬 같은 곳이다.
멀쩡한 ''perfume''이라는 말 대신 프랑스어에서 온 ''edu de toilette''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굳이 구분하면 다른 향수와는 달리 액체로 된 향수를 지칭하는 말이기는 하다. 외국어를 쓰면 사람이 뭔가 있어 보이는 모양이기는 한데 미국인들의 발음을 들으면 프랑스인들은 질겁을 한다. 통행금지를 뜻하는 ''curfew''는 ''불을 덮다''는 프랑스어에서 온 것인데 지금은 아예 잘못된 철자에 발음으로 영어에 정착한 귀화어다.
요즘은 정도가 좀 심해서 아예 상품의 상표가 일반명사로 정착하기도 한다. [BestNocut_R]
기저기를 뜻하던 ''diaper''보다는 미국의 기저귀 제조사인 ''pampers''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해 단추를 대체하고 있는 접착 테이프는 이 물건을 처음 만든 회사 이름인 ''velcro''로 상용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두통약의 대표주자이던 아스피린(aspirin)은 카페인이 많이 함유돼 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으며 타이레놀(tylenol)이 시장을 장악해 ''진통제(painkiller)''라는 말은 이제 19세기에 쓰여진 소설에나 등장할 판이다.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 의외로 좋은 일이기도 하다. 미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면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품목의 상표명을 따로 외울 필요 없이 보통명사로 활용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쓰레기 섬 난지도에도 꽃이 피듯이 황폐한 여러분의 단어목록에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상표명을 추가하면 어떨까?
※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