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영어는 우리말처럼 서로 뒤섞인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언어다. ''시원섭섭하다''라는 표현이나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어! 시원하다!"라고 말하는 역설적인 표현을 찾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 영어 말고 가장 우리말과 가깝다는 일본어에서도 이런 풍부한 감정을 보이지 않고 절제되고 간결한 감정표현만이 나올 뿐이다.
우리말로는 날씨가 추우면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이라는 동요처럼 ''시렵다''는 말을 한다. 춥다 못해 감각이 둔해지면서 손발이 아픈 현상인데 이런 것을 모두 ''손이 춥다'' ''얼었다''라고 말해 ''Hands are cold''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들에게 추운 것은 추운 것이고 ''감각이 없다(numb)''나 ''아프다''는 별개의 문제이다.
자기 몸의 변화를 설명하는데도 이렇게 벽창호 같은 짓을 하니 하물며 마음이 변하는 것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일단 우리나라 말의 감정변화를 영어로 100% 다 옮기기는 힘들다. 언어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의 마음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민감하고 복잡하다. 컴퓨터로 치면 ''software''가 너무 복잡해 영어라는 ''hardware''가 이를 담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를 영어로 가능한 부분까지 말해보자. 귀가 떨어져나가고 얼굴이 아플 정도로 추우면 ''bitter cold''이고 뼛속까지 추울 정도이면 ''It chills to my bone''이라고 말하면 된다.
분노가 뼛속까지 사무치는 것은 ''The anger sips into my heart''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화가 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다''고 하면 된다.[BestNocut_R]
경찰서를 돌며 사회부 기자 초년시절을 보냈는데 가장 마음이 아픈 사건은 가정폭력이 비화돼 살인극을 부르는 경우이다. 이럴 때 피의자들은 "화가 너무 나서 이성을 잃었다"고 말한다. 영어로는 ''The anger blinds me''라고 해서 ''분노로 눈이 멀었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이런 마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다. 마음의 변화를 잘 알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왕도라는 점은 백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