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전남 구례군 마산면 국립공원연구원 종복원센터 반달가슴곰 복원팀 관계자들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가슴곰 ''라나''의 전파 신호음이 이날 오전 11시30분께 갑자기 분당 20회로 떨어진 것.
복원을 위해 방사된 반달곰의 귀에 부착된 전파 발신기는 곰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때는 분당 40회의 발신음을 내지만 활동이 멈추면 20회로 떨어진다.
이상 신호를 감지한 복원팀 관계자들은 서둘러 ''라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4시간 후 라나는 경남 산청군 지리산 왕시루봉 인근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부검결과 라나의 사인은 추락에 의한 복강 출혈로 판명됐다.
반달곰
라나의 죽음은 지난 2004년 이후 3년간 방사된 곰 20마리 중 4번째였다. 또 그동안 적응 실패 등으로 4마리가 회수됐고 1마리가 실종돼 지리산에는 현재 11마리의 반달가슴곰만이 남게 됐다.
이런 이유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위기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장 큰 적은 인간지난달 1일 복원팀 관계자들은 ''천왕''이를 붙잡아 우리에 가뒀다. 2004년 방사된 천왕이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중 가장 유명 인사다. 지난해 10월 지리산 천왕봉 인근 등산로에서 등산객을 공격, 반달곰 복원사업의 일대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복원팀은 당시 천왕이를 붙잡아 피아골 인근으로 옮겨와 다시 방사했다. 하지만 피아골에서 동면을 한 뒤 지난 4월 깨어난 천왕이는 다시 3일 동안 이동해 한참이나 떨어진 천왕봉 인근으로 향했고, 결국 4년만에 우리로 돌아왔다. 천왕이가 적응에 실패한 것은 등산객들이 마구 버린 쓰레기와 잘못된 인식 탓이다.
비교적 지리산에 잘 적응하던 천왕이는 지난해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를 뒤져 먹이를 해결하면서 자연과 멀어졌다. 이후 천왕이는 먹이가 많은 등산로 인근을 배회했고 등산객들은 먹다 남은 음식을 줬다. 결국 천왕이는 자연에서 먹이를 구하는 일을 포기했다.
회수된 천왕이 이빨은 11개나 썩어 있었다. 식물을 주로 먹는 반달가슴곰은 자연 상태에서는 좀처럼 충치가 생기지 않는다. 지리산에 방사됐다 죽은 반달가슴곰 4마리 중 3마리도 인간이 설치한 올무에 희생됐다.
2005년 8월 북한산 반달가슴곰 ''랑림32''가 올무에 걸려 폐사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11월 ''장강21'', 지난해 11월에는 ''울카''가 희생됐다. 또 2004년 방사된 ''제석''도 지난해 9월 올무에 걸려 상처 치료를 위해 회수됐다. 또 지난 2005년에는 방사됐던 ''레타''는 실종돼 현재도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상 전파신호를 포착한 복원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레타의 귀에 부착됐던 전파발신기는 나무에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누군가 발신기를 떼고 레타를 붙잡아 간 것이다.[BestNocut_R]
▶공존 모색할 때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종복원센터는 연간 2억2000만 원을 들여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방사된 곰들이 지리산 자락에 기대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의 농작물이나 벌통 등에 피해를 입히고 있어 이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곰 복원사업이 마뜩찮다.
그 동안 아무 무리 없이 살아왔던 터전에 반달가슴곰이 돌아다니면서 이만저만 골치거리가 아니기 때문. 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을 포획하기 위해 설치된 올무에 애꿎은 반달가슴곰이 걸려 죽기도 해 주위 시선도 곱지 않아 이래저래 불평이다. 인근 지자체도 마찬가지. 유해 야생동물을 구제하기 위해 포획허가를 내주더라도 엽사들이 반달가슴곰을 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리산을 관통하고 있는 도로와 수많은 등산로도 곰 복원사업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리산을 둘러싼 도로와 등산로가 동물들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 통상적으로 야생 동물들은 도로나 등산로가 있을 경우 1㎞까지는 접근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에 따라 반달가슴곰들은 지리산에 그물망처럼 나 있는 도로와 등산로에 갇혀 ''섬''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등산객이 마구 버린 쓰레기와 호기심은 반달가슴곰의 자연 적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종복원센터 관계자는 "곰 개체수가 50마리 정도로 늘어나고 등산객들이 곰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이라면서 "다행히 인근 주민들과 지자체가 이 사업에 대해 필요성을 공감하기 시작한 만큼 반달가슴곰이 자연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지금부터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