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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은 붕어빵''

  • 2003-12-08 10:23

왜 남의 나라 통일에 우리가 훼방 놓으려는지..

 


이라크 파병 반대하는 베트남 참전군인 김진선씨 출연 인터뷰(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12월 6일)

▶ 언제 베트남전에 참여했는지

1965년 2월에 갔다가 66년 3월에 귀국, 13개월 근무했다.
그 때가 대한민국 최초로 해외파견을 한 때이다. 그 때는 비둘기 부대라고, 비전투부대로 갔다. 그렇지만 전선이 없는 월남전이었기 때문에 비전투병이라는 것은 무의미했다고 생각한다.

▶ 평화통일시민연대의 활동에는 어느정도의 참전군인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회원 중에 서너분 계신다. 3년 전에 이 단체를 만들었는데 그 전에 경실련통일협회 운영위원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더 적극적인 평화운동을 하기 위해서 평화통일시민연대를 만들었다.

▶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이사이면서 작년 4월까지 집행위원장을 맡았었다. 우리가 지금 현재 평화통일이라는 과제에 대해서 너무 인식이 약하니까 교육을 하고, 각종사업을 하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해 좀 더 생각을 갖자는 취지로 일하고 있다.

▶ 다른나라에서는 참전군인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와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지.

우리나라는 좀 부족하다. 나는 6.25를 10살 때 겪었기 때문에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안다. 또 아직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상황아닌가. 베트남을 갈 당시에는 나도 사실 잘 모르고 갔다.
젊은 용기로 평화의 사도 비둘기 부대라고 해서 갔는데 가보니까 미국의 용병이라는 청부전쟁에 참여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을 현지에 가서 느꼈다.

▶ 그 당시의 경험이 평화운동에 뛰어 든 계기가 됐나

갔다와서는 항상 마음 속으로 월남에 평화가 오기를 바랐다. 37년 후 그러니까 3년전에 월남을 다시 갔었다. 가서보니까 너무나도 평화스러운 국민들을 대할 때 나도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을 해야겠다하는 생각을 했다.

▶ 3년전에 갔을 때는 베트남전 당시와 전혀 다른 상황아니었나.
처음에 내가 갔을 때는 월남가면 모두 죽는 줄 알았다. 그 때 미국의 가족들도 사이공(호치민)에서 철수를 했었다. 당시에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경험도 될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갔다. 그런데 현지에 가니까 너무나도 어려운 때였다. 사이공시내에서 미군이 납치당하고, 그 다음으로 한국군도 그것을 당할 가능성이 많았다.

▶ 당시 참전하신 분들은 베트남전쟁의 발발이유, 전개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랬다. 나도 정확하게 알았더라면...
우리나라의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의 통일방해꾼으로 간 것같은 심정이다.
월남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고, 옆에서 죽어간 전우들을 생각할 때 왜 하필 월남까지 와서 죽어가야되느냐 우리 살아서 돌아가자 이야기했지만 가끔 베트공의 기습을 당하고,
우리는 작전은 안하지만 교량건설할때도 기습이 왔다. 이라크의 게릴라처럼.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방어적 수준에서 같이 전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7도선 캄보디아, 라오스 그 쪽에는 정규적으로 전쟁을 하는 것이니까.
그 때 사실 우리가 봤을 때는 피해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2월달에 갔는데 9,10월에 맹호, 청룡부대가 와서는 너무나도 많이 죽어가는 거다. 100명, 200명 막 이렇게.

▶ 갈 때 당시와는 달리 현지에 가서 ''''내가 미국의 용병이구나''''라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는지.

월남주민과 이야기 한적 있었다. 자신들을 프랑스 식민지로 너무나도 오랫동안 고통을 당했고, 그다음에 미국이 들어와 있는데 외세는 모두 물러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도 전쟁에 시달렸기 때문에 아내도 형제도 잃었기 때문에 지금은 외세 없고 전쟁없는 평화를 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남북이 어서 통일되는 날만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미군과 한국군이 가면 우리는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걸 듣고는 충격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가슴이 찡해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기간이 되지 않아 갈 수도 없었다.
당시에는 전투병 그런 것도 잘 모르고, 우리는 부대안에서 행정일을 했지만 베트공의 기습을 당했을 때는 전투병, 비전투병 구별이 없는 거다.
한국전사에 보면 1965. 4. 2. 대한민국최초로 해외에 파견되서 적군(베트공)과 전투를 벌였다. 우리는 베트공이라고 하지만 그사람들은 베트남인민해방전선연맹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때 박격포탄 50~60발이 우리부대 약 100m 앞에 떨어졌고, 기습공격당하고 해서 첫 전투를 했다. 그래서 비전투병이 전투를 했다.

▶ 전쟁참여 전과 후에 생각이 달라지셨다고 했는데 그 부분은 우리들이 여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은데

역사적으로 그것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베트남을 동남아의 패권주의적인 기지로 보고 가 있었다. 가서보니 너무나도 많은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전쟁터가 정글과 땅굴들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심하게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고엽제를 사용했다. 고엽제라는 것은 낙엽작전이다. 정글위에 비행기로 고엽제를 뿌리면 잎사귀들이 떨어져서 아래가 보이니까 그 때 작전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 때 아래에 있었던 사람들이 더우니까 벗고 있었고, 그 위로 고엽제들이 뿌려진 거다. 그당시에는 증세가 안나타날 수도 있지만 1-2년 후에 증세가 나타나기도하고 삼대까지 간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그런일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눈으로 본거다.

▶ 전쟁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어떻게 하셨는지.

전쟁에서 돌아와서 바로 국군묘지를 갔다. 우리 부대 내에 한 친구가 죽었다. 그 친구는 전쟁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월남의 물이 안 좋아 급성간염으로 병사했다. 다른 부대도 통신병이 서너명 죽어서 가서 애도를 해야되겠다, 그래도 같이 살아돌아가자했는데... 그들은 죽어가고 나는 살아돌아와서 너무나도 애처로와서 갔다.
당시 이건희 하사였는데 거기 이건희 하사가 서있는 거다. 살아서 돌아왔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같이 서있는데 쌍둥이였다. 그래서 그 어머니한테 사죄를 했다.
''''어머니 제가 이건희 하사와 같은 부대의 행정병이었습니다. 어머님께 제가 전사통지서를 보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이 아무 말씀 안하고 ''''그래서 살아와서 다행이죠'''' 이 말만했다.
내가 그 둘레를 둘러봤다. 3,300명이 1년만에 죽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얼마나 많은 수가 죽어갈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10년동안 6,000명 정도 죽었다.
그 뒤로는 소위 개획성 없는 무지막지한 베트공 소탕작전을 안한거다. 처음에는 훈장 받고 부대표창을 받으려고 무리하게 싸운 것이다. 전쟁을 안 해본 사람들이니까 베트공소탕작전한다고 하면 베트공은 이미 달아나고 주민들을 첩자라고 해서 다 죽이는 거다. 그것이 민간인학살이라는 얘기다.

▶ 나도 그 당시 프랑스에 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을 만나면 ''''왜 너네 군인들은 민간인 마을에 와서 군인 아닌 민간인을 학살하느냐'''' 하던데 그 광경을 직접 보신 것인데.

그렇다. 그래서 이번에 가서 위령탑을 세웠다. 그리고 지난번에 지압장군이란 사람이 왔었는데 그분한테 얘기했다. ''''미안하다, 내가 월남사람 죽이진 않았지만, 공범이 돼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쪽에서는 ''''우리는 수교했지 않느냐,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와서 직접 사과했다. 우리는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그 슬픔을 잊을 수 있겠는가.

▶ 미국사람들도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며 그것을 영화화 한 적도 많고, 전사자도 안타깝지만 또 돌아와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는 문제도 심각하다. 전쟁은 평화상태에서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직도 이 선생님은 베트남전 이후 전쟁이 머릿속에 입력된 그런 부분이 있는지.

전쟁은 세계곳곳에서 종종 일어나지만 대개는 명분이 없다. 패권주의 내지 권력싸움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내 생전에 다시는 전쟁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 베트남전에 참여한 참전군인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 주변 사람들은 당뇨병, 고혈압 등을 앓다가 그 후에 고엽제 판정을 받았다.
10년동안 33만명이 다녀왔다. 그 중 15,000명이 고엽제유사환자이다.
한국도 6,000여명이 미국에 고엽제 피해에 대해 보상해 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약간 보상은 했다. 그러나 아직 공인은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월남참전군인들에 대해 어느정도 예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정부에 할 수도 없으니까 미국에 요구를 했는데 재판은 진행중이다.

▶ 국가적차원의 결정에 따랐던 시민들이 2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전쟁명분에 대해 정신적으로 혼란을 가질 수 있는 부분, 한편으로는 아직도 육체적으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 치유가 이루어지면서 또한 국가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문제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계기도 되어야 할 텐데.

그래서 국가에서도 병원을 통해서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다. 사망자나 기타 중상자는 국가유공자, 부상자로 예우를 하고 있는데 고엽제 환자들에 대한 무한한 질병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 치료 약간 하는 정도이다.

▶ 그 문제도 마무리 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 역사적인 정리 안된 상태에서 지금 이라크전쟁 추가파병문제로 시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지.

1차 파병 때 파병은 안되다고 했다. 그 이유는 베트남전에 다녀왔고, 그것에 대해 성찰해보니 파병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결국은 노대통령이 국익을 위해서 간다했는데 그것이 무어냐고 물었다. 나중에 보니 미국이 북핵문제에 대해서 담보 비슷하게 했다는 거다. 부시도 전화했지 않나.
물론 국가 대 국가로서는 우방이고, 맹방이니까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입장에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서희, 제마부대가 파병이 됐다.
그런데 또 추가파병을 이야기해서 370여개 NGO가 모여 이라크파병에 반대하는 비상국민행동이라고 있는데 거기서 뭐라고 했냐면 ''''전투병''''파병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전투병파병을 반대한다고 하면 나중에 전투병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그랬더니 분명히 전투병이 간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전투병/비전투병이 구별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라크에 가서 게릴라 침공 받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했다.
월남은 월남에서 도와달라고 해서 왔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라크에서는 오라고 한 적이 없다. 오직 미국이 UN의 결의를 받아서 다국적군으로 가있다. 그러면 오직 미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가는데 과연 그 명분이 서는가. 또한 그 전쟁이 미국의 침공이었는데 왜 남의 나라를 침범한 일이 없는 우리가 월남전 이후에 또 그런 일을 해야하는가. 그래서 나는 이라크 추가파병은 무조건 안된다고 했다.

▶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이 붕어빵이다라고 표현된 것이 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첫째는 베트남도 전선이 없었고, 이라크도 전선이 없다.
그 다음에 적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방어가 가능한데 갑자기 차량으로, 폭탄으로 총격으로 테러를 가하는 똑같은 상황이다.
아울러 중동에서 그동안 착실하게 일해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바 있다. 그런데 지금 만약 그들이 미국을 다 싫어하는데 미국을 도우러 이라크 전쟁에 갔다 하면 똑같이 싫어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명분이 이라크의 안정, 평화, 질서 유지 위해서 이라크인과 같이 할 수 있다면 좋은데 그렇지 않다면 곤란하다.
더구나 미국 역시 발을 뺄까 말까 하는 상황 아닌가.

▶ 평화의 사도 역할을 하겠다고 가신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치안을 유지하고 평화를 유지위해서 파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는데 그런 여건은 가능한 것인지.

지금 현재로서 이라크에 UN이 인정하는 평화군으로 가서 갈등 없이 피해를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란 전혀 없다.
우리나라도 사실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가. 평화만 원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남북분단극복하고 평화를 가져와야 하는데 소위 타국의 침략전쟁에 편승해서 민족전쟁을 일으키고, 지역을 분할했을 때 우리는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 하겠다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우리가 만약 전쟁이 있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수 있겠는가. 미국만 온다는 건가. 우리를 구하러.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깊이 생각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 고엽제 이야기를 했는데 훨씬 더 심각한 열화우라늄탄이라는 것을 쓰고 있다. 벌써 다른전쟁에서도 쓰고 있다고 하던데.

미국의 14만명가운데 7만명 정도가 유의점에 들어갔다고 하고 사실 환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랬을 때 이라크 곳곳에 그런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고엽제문제와 같은 잘못을 반복할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든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착잡하다.
노대통령의 통치행위, 국익을 위해서 한다는데 대통령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것을 너무 앞세우고 있는 것 아닌가.
노대통령이 이전에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가겠다고 하지 않았나. 미국은 3.8선을 그어놓은 장본인이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에 대해 미국은 결자해지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오히려 북핵문제를 가지고 이라크에 대해서 우리에게 너무 압력을 가한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못마땅하다.
다른단체는 미국 물러나라고 하는데, 있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위해 힘써줬으면 좋겠다.

▶ 참전 군인들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입장은.

내가 40년 전 베트남 갔을 때와 똑같이 그 역사를 잘 모른다.
''''이라크 가면 사병들이 200만원씩 돈을 벌어온다, 우리가 미국을 도와주기 때문에 석유에 대한 배분이 있을 것이다...''''하는데 사실 그 부분은 크게 기대할 수가 없다. 설령 기대할 수 있더라도 그것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바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명분이 없는 전쟁에 추가파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베트남 지휘관했던 장군들의 얘기가 그거다.
이라크전에서 전투경험을 쌓자고 하는데 그런 것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과연 왜 거기가서 그 경험을 쌓아와야 하는지 또 여러 이익이 있다고 하는데 목숨보다 더 큰 이익이 있겠는가. 또 명분이란게 없지 않느냐.
그래서 역사인식이 조금 안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야기 해보지만 잘 안된다.

▶ 10년 동안 진행되었던 베트남전, 우리가 참여한 10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우리도 빨리 종전되기를 바라고 갔었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로 6개월 단위로 교대하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갈지 모르겠는데
미국에서는 여러 이야기 많지 않은가.
내년 부시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하지 않으면 철수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만약에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진짜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파병자체는 명분이 없지만 미국 자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더욱 명분이 없는 것 아닌가.
어느 쯤에서 미국이 손을 떼야할 상황이 될 텐데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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