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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북한

    처음 타본 북한 열차 "비둘기호보다 조금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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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열차

     

    11시 25분 열차에 빨리 오르라는 북한 승무원의 재촉에 승강장에서 환담을 나누던 남북측 인사 2호(6218호), 3호(6221호)객차에 탑승했다.

    역사에 스피커 시설이 아직 돼있지 않아서인지 북측 역무원이 플랫폼 근처에 주차해놓은 현대 스타렉스에 설치된 확성기 시설을 통해 ''열차에 오르십시오''라며 두세차례 말해 승객들의 탑승을 독촉했다.

    열차의 외관이 현대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초록색 바디에 지붕은 옅은 회색 페인트칠이 돼 있어 조악한 모습이었다.

    임종일 건설교통부 남북교통팀 사무관은 "외관은 비둘기호 정도지만 성능은 비둘기호보다는 낫다"고 설명했다.

    이용섭 건교부 장관, 김용삼 북측 철도상 등을 비롯해 취재 기자 20명은 2호차에 탑승했다. 탑승하자마자 최근 칠을 새로 다시 한 듯 냄새가 코를 찔렀다. 2호차에 들어서자 정면으로 보이는 맞은편 출입구 위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객차는 북측인사와 남측 인사가 서로 마주보게 배치됐다.

    4명당 사이다 1병, 딸기 단물 1병, 일경 금강수(금강산 샘물) 사과, 배 등이 준비돼있었다. (금강산 샘물 공장은 금강산 역 옆쪽에 자리하고 있다)

    객석은 서로 마주보게 고정이 돼 있다. 자리를 뒤로 젖힐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시트와 등받이가 거의 수직을 이뤄 다소 불편한 편이었지만 아이보리 색의 비닐 시트가 생각보다는 푹신했다.

    탑승후 차창밖으로 군인 복장을 한 차장 한명이 빨간 깃발을 45도 하방으로 흔들며 특유의 북한군 걸음걸이로 빠르게 지나쳐갔다. 열차 출발이 임박한 듯 했다. 진행요원(보장성원)들이 여럿 들어와 ''자리에 좀 앉아주십시오. 인원수를 확인하겠습니다''고 말했다.

    ▲ 드디어 출발 = 11시27분. ''뿌우우~'' 기적소리가 울렸다. 뿔나발 소리를 연상케 하는 디젤기관차 특유의 기적소리였다. 열차가 앞뒤로 서너차례 덜컹거리다가 서서히 출발했다.

    ''''북한 열차는 기적소리를 자주 울린다''''고 건설교통부 관계자가 설명했다. 열차에 탑승했던 남측 인사들은 ''''안녕~''''하면서 승강장에 환송 나온 북측 인사들에게 작별인사했고, 환송 나온 학생 등 북측 인사들도 손을 흔들어 환송했다.

    열차는 시속 10km 정도의 속력으로 역을 서서히 빠져나갔다.

    철도 우측으로 50m 가량 떨어진 곳에 평행하게 포장 도로가 나 있었다. 금강산도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멀어졌다. 철로 주변에는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물댄 논들이 펼쳐져 있었으나, 논에 나와 일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열차를 반기는 건 오히려 좌측 도로를 통해 남에서 금강산으로 관광을 떠나는 한국 여행객들이었다. 잠시후 금강산 관광버스 8대 가량이 줄을 지어 열차 진행 반대방향으로 올라갔다. 한 탑승자가 "지금 이때쯤이 금강산 관광 버스가 들어갈 시간이지"라고 말했다.

    11시30분. 우측 옆으로 전답으로 이뤄진 평지와 산이 계속 이어졌다. 어제까지 비가 오는 등 우중충했던 날씨는 이날 만큼은 구름은 비록 많았지만 날씨는 화창했다.

    철도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 도로에는 거의 차가 달리지 않았다. 이따금씩 군인이 모는 도요타 지프, 군용 지프, 트럭 등이 기차와 나란히 달렸다. 열차시험운행의 진행 요원이리라.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검문소나 주요 길목에 북한 군인들이 지켜 섰다.

    이때쯤 첫 곡선주로가 나왔다. 기차 차체가 10도 정도 도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는데 국내 열차 탑승 때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웠던 점이다. 이 같은 상황은 곡선주로마다 반복됐다.

    인근 민가에서는 한 여성이 창문으로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빼꼼히 내다보고 있었다.

    승객들은 바깥 풍경보다는 마주 앉은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열중하는 모습. 곳곳에서 환담이 오가고, 웃음소리도 간간이 터져 나옴. 마치 친한 친구들끼리 이미 사라진 경춘선 비둘기호를 타고 짧은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였다.

    `뭐 하시겠습니까.''열차에서는 평양봉사대에서 나온 여성 봉사단원들이 좌석을 오가며 밝은 얼굴로 음료 서비스 등을 하기 시작했다.한 승객이 "직함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라고 묻자, 그냥 "잠시만요"하고 지나쳤다.

    산과 들만 계속 됐다. 제 마음대로 뻗은듯한 소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따금 열차에서 `끼기긱'' 하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우측으로는 남강이 흘렀다. 산과 들을 벗어나 이따금씩 기와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 마을에선 주민 10여명이 동네 담벼락 너머로 내다보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 11시 50분, 삼일포역을 지나다 = 11시50분쯤 삼일포 역을 지났다. 출발지인 금강산역과 마찬가지로 역 이름은 작게 붙어있고 정면으로 커다란 김일성 주석의 사진과 양 옆으로`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 `영광 스러운 조선로동당 만세''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이어 열차는 남한이 상판제작을 해 복구됐다는 남강 1교 다리를 통해 남강을 건너갔다. 삼일포역을 지나자 멀리 북한의 명승지인 삼일포와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11시50분쯤 긴장이 풀렸는지 여기저기 차창을 열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창을 열자 열차 특유의 `철커덩 철커덩'' 소리가 리듬감 있게 들려왔다. 밝은 북쪽 공기가 들어와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차창 밖으로 이번 열차시험운행을 위해 새로 지었다는 디젤 기관차 차고 건물 두동이 보였다. 한동에는 군인 10명 가량이 차고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밖으로 열차를 지켜봤다. 차고에 디젤기관차는 없었다.

    열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감호역이었다. 북측의 마지막 분계역으로 통행 세관검사가 이뤄지는 곳이다. 11시55분. 금강산역에서 감호역까지 15km 가량 되는데 30분 걸렸으니 평균시속 30km/h를 달린 셈이다.

    12시께 군복차림의 세관원 4명과 역무원 2명이 칸마다 탑승했다. 그중 한명이 `첫열차 운행의 승객이 된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통관 및 세관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검사를 시작했다.

    사진이 첨부된 명단과 본인 대조. 특히 디지털카메라 검사를 철저히 했는데, 차창 밖으로 북측 지역이나 군인 등 사진을 촬영했는지 일일히 검색하고, 혹시 찍힌 사진은 지우도록 했다. 이 때문에 통관 검사에 시간이 꽤 소요됐다. 이들 통관원들이 객차의 중간쯤 갔을 때가 12시15분.

    예정된 군사 분계선 통과 일정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상부 선에서 `빨리 진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들은 끝내 막판 검사를 포기하고 열차에서 하차했고, 그와 거의 동시에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경중 건교부 남북철도팀장이 들어와 "조만간 좌우를 가로지르는 철책선을 지나 200m 가량 더 나아가면 초소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군사분계선이다"고 말해줬다.

    ▲ 12시 21분 역사적인 군사분계선 통과 = 다시 기적소리. 그와 거의 동시에 열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까의 두배는 되는 느낌이었다. 흔들림이 약간 심해졌지만 선반위의 음료수병이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속도를 냄과 동시에 기적소리 빈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5분뒤 북한측 남방한계선을 통과. 이후 DMZ에 들어섰고, 12시21분 역사적인 군사 분계선을 통과했다.

    객차 내에선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분계선을 지나치자 ! 마자 거짓말처럼 속도가 줄면서 열차도 조용해졌다.

    주변 경관이 비슷해 남인지 북인지 분간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60'', `20'' 속도가 적혀있는 속도 표지판, `여기서부터 비무장지대입니다''라는 이정표, 속초56km, 간성 30km 가 적힌 이정표 등 남쪽 영토임을 실감케 하는 사물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영토에 들어오자 동해바다를 따라 설치된 철조망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분단된 현실을 더욱 직시하게 했다.

    12시25분 차창 밖 우측위 통일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열차시험운행 소식을 사전에 들었는지 평일임에도 관광객들이 난간에 빼곡히 들어찰 정도로 많았다. 이들은 전부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들여보였다. 족히 200명은 넘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널찍한 포장 도로가 나타났다. 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의 종착역인 제진역에 도착한 것. 이때가 12시34분이었다. 요란한 고적대 음악소리와 한반도기를 흔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반세기만에 열차가 남북을 달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있었음을 새삼 자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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