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70~80년대 스크린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강한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한 배우가 있다. 영화배우 이대근씨가 그 주인공. 5년여의 긴 공백을 깨고 ''''이대근 이댁은''''이라는 기발한 영화 제목으로 돌아온 그를 ''영화감독 이장호 누군가를 만나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전문)
> 지난 1일 영화 ''''이대근 이댁은'''' 이 개봉했습니다. 배우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쓰는 건 흔한 일이 아닌데요?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라고 들었습니다. 제 경우는 액션 영화 <대근이가 왔소> (1979)가 처음으로 제 이름이 제목으로 쓰인 경우이고 이번 영화가 두 번째인 셈이죠. 내 이름이 영화 제목으로 쓰인다는 것은 우선은 쑥스러운 일입니다. 자기 영화 봐서 안 쑥스러운 배우 어디 있겠습니까. [BestNocut_R]
처음에 <이대근 이댁은>을 제안 받았을 때 무슨 장난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나 그런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감독님이 작품을 한번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감독하고 작가한테 미안하다고, 내가 아직 사람이 덜 돼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 ''이대근 이댁은'' 어떤 영화죠?한 노인의 외로움이 테마인 거 같아요.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아픔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픔인 것 같은데 그 용서를 받고 난 다음에 느끼는 자기 해방, 그리고 한 노인의 외로움이 아마 큰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영화의 주인공 노인인 이대근은 본인의 실제 모습과 관련이 있나요?''''인간 이대근''''하고는 전혀 관계없고 단지 영화 주인공인 거죠. 그냥 제 이미지를 살려서 타이틀을 그렇게 잡은 거예요. 작가분이 내가 젊었을 때 찍었던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었기에 타이틀을 그렇게 했다 그러더라고요. 제 개인생활하곤 전혀 관계없는 작품입니다.
> 그동안 영화를 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역할도 있었나요?작품을 만날 때마다 제가 부족한 것을 항상 느끼죠. 작품을 시작하는 순간이 되면 ''''마라톤을 지금부터 뛰어야 하는데 내가 왜 훈련 안하고 있었던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떤 작품이든 다 애정이 있고 어려워요. 때로는 작품을 평가하면서 ''''소모품 같은 작품이 아니냐.'''' 이런 말씀들을 하는데 부모가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데 없듯이 저도 어떠한 작품이든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대근씨가 기러기 아빠 원조라 할 만큼 오래 가족들과 떨어져 사셨다는데?제가 딸만 셋이 있습니다. 정력이 부족해서(?) 아들은 못 봤죠. 그 아이들과 26년 동안 떨어져 살았어요. 왜 그렇게 됐냐면, 제가 예전에 대종상을 수상하고 나니까 미국연수를 보내 주더라고요. 그래서 덕분에 미국 5대주를 한 번 돌아봤는데 ''''아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 자식들이 좀 더 큰 미국사회에서 배우고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학을 일찍 보내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 비로소 딸 자식 모두를 출가시킬 수 있었어요. 큰 딸이 결혼하고 나서 막내가 결혼을 했어요. 그 뒤에 둘째가 결혼하게 됐는데 그 사연이 기가 막혀요. 둘째 나이가 꽤 많았거든요. 워싱턴에 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둘째 딸이 수재들만 다닌다는 제퍼슨 하이스쿨을 나오고, 그다음에 영문과를 나오고 다시 의대를 갔다가 약대를 들어와서 인턴 생활하다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둘째 딸은 그렇게 공부하느라 연애할 시간이 전혀 없었지요. 그래서 딸을 둔 아버지로서는 잠이 안 왔어요. 막내 결혼식장에서 동생을 먼저 보내는 둘째를 바라보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그날 저녁에 기도하면서 울었어요. 그런데 둘째가 연애를 시작하더니 두 달 만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 세상 일 모두가 시원하게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을 하셨는데요,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면?저는 TV부터 시작을 했으니까요. TV 드라마로는 <고산자 김정호>라든가 <수사반장> 등이 생각이 나고요. 그리고 액션 영화라고 한다면 <김두한> 시리즈, <시라소니>, 향토물로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뽕>, <감자>등이 있습니다. 사극이라고 한다면 <연산군>, 또 이장호 감독님과 함께 했던 <어둠의 자식들>도 기억이 납니다. 그 해의 작가님들이 쓰신 제일 좋은 작품이라 꼽히는 작품들은 이상하게 나한테 많이 왔습니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 하면서 25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서라벌 예대 연극영화과 나왔어요. 처음엔 연극배우로 시작했죠. ''''성좌''''라는 극단의 초연작인 <노틀담의 꼽추>, <인형의 집>, <이순신> 등을 했어요. 그렇게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배가 너무 고픈 거예요.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까 친구들은 라디오도 가고 TV도 가고 해서 돈을 많이 받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TV쪽으로 가야겠다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아니 그 바보상자에 왜 가냐.''''고 그러는 거예요. 그 때 연극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때였죠.
> 이대근씨에 대해 변강쇠라는 이미지를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불만은 없습니까? 변강쇠전을 그저 야한 영화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변강쇠는 해학을 바탕으로 한 우리 전통의 문학작품이지요. 현대에서야 힘, 그러면 외국 영화들 영향으로 다른 생각들(?) 하시는데, 옛날 봉건 사회에서 우리네 여인들이 겪었던 고충과 서민들의 정서를 해학적인 상징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생각(?)만 마시고 비디오를 한 번 구해서 보시거나 책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지적인 역할을 하고 싶은 욕망은 있으세요?연기자에게 어떤 역할은 어울리고 어떤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없어요. 어떤 역할이라도 나한테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두려움은 있지만 자신감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해요. 영화는 해 볼만큼 했다 싶어요. 그래서 사실 부러울 게 없는데 다만 욕심이 있다면 작품성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이 많고 억울한 것이 많은 사람들인데 그러한 정신의 병을 치유할 수 있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의 영화계는 너무 흥행에만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울 때가 있죠.
이대근
<영화감독 이장호, 누군가를 만나다> ''''영화배우 이대근''''편은 오는 3일 목요일 정오에 CBS TV(스카이라이프 412, 지역 케이블)을 통해 방송된다. 재방송은 오는 6일 일요일 밤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