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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최주봉 "쿠웨이트 박 떴을때 동네 난리 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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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최주봉 "쿠웨이트 박 떴을때 동네 난리 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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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 만수아빠 최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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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년부터 94년까지 매주 일요일 아침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은 서민층의 웃음과 애환을 그린 그 드라마였다.

    동네에는 세탁소가 있었고, 세탁소집 주인 ''만수 아빠''도 있었다. 또 드라마 ''왕릉일가''에서 시골 제비족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쿠웨이트 박''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최주봉이다.

    드라마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까지 연기자 최주봉은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배고픈 연극배우였고, 마흔넷까지 아버지한테 쌀을 얻어다 먹어야 했던, 가족들에게는 참 면목 없는 가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최주봉의 성대모사를 빼고는 개인기를 논할 수 없으며, 둘째아들 최규환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가 되었다.

    이제 서울시 뮤지컬 단장이라는 공직을 뒤로하고 다시 연기자로 돌아온 탤런트 최주봉 씨를 22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CBS 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다.

    [BestNocut_R]무대와 스크린을 종횡무진 하는 왕성한 활동

    ▶ 목소리는 여전하신데 살이 조금 찌신 것 같아요.

    = 나잇살이죠.(웃음) 누가 TV를 보고 젊었을 때보다 살이 찐 지금 모습이 더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원래 얼굴이 좀 희한한데 살이 찌니까 얼굴모양이 바뀌는가 봐요.

    ▶ 요즘에 TV드라마 다시 하시죠.

    = MBC 아침 드라마 ''내 곁에 있어''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됐어요. 그동안 안 바빴는데 오랜만에 바빠지긴 했다.

    ▶ 영화도 하셨는데 어떤 영화를 하셨어요?

    = 작년에 ''무도리''라는 영화를 개봉했었고, 다음 달에 ''극락도 살인사건''이 개봉될 예정에 있다. 이 영화는 ''극락도''라는 가상의 섬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뤘는데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영화에요.

    ▶ 연극 ''쥐덫''같은 거네요. 코믹연기는 아니시겠어요?

    = 추리극이라서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목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어요. 상황 자체는 코믹할 수는 있어도 제 캐릭터가 코믹한 건 아니에요. 심각하게 하려고 하는데 보는 분들이 코믹하게 볼 수는 있겠죠. 또 5월에 개봉할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도 촬영이 끝난 상태고요.

    ▶ 영화를 많이 하셨네요.

    = 찬조출연, 특별출연하는 거죠. 옛날 정 때문인데 불러주는 것 자체가 고맙죠. 젊을 때는 바쁘기도 해서 튕기기도 했는데 지금은 돈은 나중에 받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출연하려고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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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보는듯한 뮤지컬 시위

    ▶ 서울 뮤지컬 단장은 언제 그만두셨어요?

    = 단장 임기가 2년인데, 2005년 12월 31일에 그만두었죠.

    ▶ 그때는 행정가로 일하셨는데 다시 연기자로 일하시니까 어떠신가요?

    = 뮤지컬도 서울시에 있는 하나의 조직이잖아요. 행정가는 아니지만 배우로서 조직을 이끌어가면서, 장으로서 행정관과 부딪혀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살아가는 인생살이가 나름대로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할까요. 또 단원들도 같은 배우니까 더 좋아하더라고요. 장이라는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노조 시위할 때도 붉은 머리띠를 파란색으로 바꾸고 앞에서 뮤지컬 형식으로 하니까 시위가 아니라 공연이라고 착각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예술단체가 시위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은 건 아니잖아요. 더구나 청와대 근처라서 외국인들도 많고 이미지가 안 좋잖아요. 예술인다운 시위를 하자고 해서 설득도 시키고 나중에는 순순히 따라주더라고요.

    ▶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시위문화도 좀 변했으면 좋겠네요.

    = 광화문 중심부에 있는 우리가 변해야 다른 단체가, 기업이, 그리고 사람들이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선수범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인들이라고 생각한다.

    큰아들은 디자인, 작은아들은 연기자의 길로

    ▶ 아드님도 배우이시잖아요.

    = 둘째인데 키만 크고 끼도 별로 없는데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정치에 뜻이 있으니 기자나 PD를 한다고 하더니 나중엔 경찰이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더니 연기자의 길을 가겠다는데 요지부동이에요. 대학교 졸업 후에 러시아에서 연극훈련하고 돌아온 선배 밑에서 배우고 있더라고요.

    아버지보다 더 나은 배우가 되겠다는데 혼도 낼 수 없고 할 말이 없었죠. 아들이 둘인데 하나쯤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면 오히려 섭섭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저희 세대와는 다르고 또 잘 될 거라는 가능성도 보여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영화 ''마들렌''에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해서 점점 큰 역을 맡더니 ''최규환''이라는 이름이 그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죠.

    ▶ 큰 아드님은 어떤 일을 하세요?

    = 이공계를 졸업해서 건축설계와 디자인을 해요. 끼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웃음) 자기 길을 잘 찾아간 것 같아요.

    ▶ 큰 아드님은 작년에 결혼했는데 며느님 맞으시니까 어떠세요?

    = 제가 8남매 중 장남인데, 형제들 중에서 처음으로 며느리를 맞은 거예요. 예쁜 며느리가 들어오니까 어리둥절했다가 이제는 정이 들고 모습 하나하나가 귀엽더라고요. 10월에 할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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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어물상 8남매 장남의 멈출 수 없는 끼와 열정

    ▶ 고향이 충남 예산이신데 그곳 출신들이 유명한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 조영남 씨가 고향 선배시고 윤문식 씨, 박인환 씨는 충남의 다른 곳 출신이신데 대학에서 알게 돼서 어울려 다니면서 끈끈한 정을 쌓았어요. 고향 소개를 좀 하자면, 일단 과일이 많이 나요. 특히 사과가 유명한데 사과 때문에 예산여고 학생들이 예뻤어요. 그래서 예산 여고 학생들과 연애하고 싶었는데 나를 쳐다도 안 봐서 홍성 여고 학생과 연예했죠.(웃음)

    ▶ 8남매의 장남이라고 하셨는데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 아버님이 83살에 작고하셨는데 평생을 건어물 장사를 하셨어요. 옛날 시골 건어물 장사가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노상에서 가마니를 깔고 멸치, 오징어를 가져다 놓고 파셨어요. 자식을 자꾸 낳다 보니 8명을 키워야 하니까 좋아하던 술, 담배를 일체 안 하시고 돈만 모으신 거예요. 아버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저도 그런 것을 아니까 어디 가서 생각난 대로 함부로 못하겠더라고요. 지금도 동생들한테 미안한 게,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서 동생들을 가르치고 밀어줬어야 하는데 장남이라는 게 매정하게 손을 뿌리치고 배우가 되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버린 거예요.

    ▶ 막내하고 몇 살 차이세요?

    = 20년 차이이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집에서 아들을 낳았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엄마, 내가 내일모레 군대 가야 할 나이인데 아기를 또 낳으면 어떡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내가 낳고 싶어서 낳았느냐? 생긴 걸 어떻게 하느냐?'' 웃고 난리가 났었죠. 막내가 40대 초반인데 나이 차이가 많으니까 지금도 저를 아버지처럼 대해요.

    ▶ 최주봉 씨는 중.고등학교 때 어떤 학생이었어요?

    = 얌전하고 착실했어요. 그런데 끼는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시골에서 가끔 천막치고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5일 상영하면 5일 다 갔었어요. 5살 때인가 6.25 직후에 폐허가 된 곳에서 장독대 위에 올라가서 변사 노릇을 하더래요.

    그때 당시에 TV가 있었겠어요, 라디오가 있었겠어요. 그런데 조그만 아이가 마이크를 든 시늉을 해 가면서 쇼를 하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쳐다보더래요. 끼라고 하면 끼인 데 그게 발전해서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장남이니까 아버님이 대학을 보내주셨는데 연극영화학과를 들어가신 건가요?

    = 연극영화과를 가라고 순순히 말씀하시겠어요? 아버지께서는 상대를 간다고 하니까 가업을 이어받으면 되겠다고 생각하셔서 보내주신 거죠. 그러다가 연극영화과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으면 시골로 내려갔을 텐데 붙은 거예요. 그때는 입학시험을 쳐서 합격을 하면 일간지에 다 났는데 작은아버지가 신문에 난 제 이름을 보셨어요.

    30명 뽑는데 28등으로 통지표가 날라 왔고 이걸 보여드려야 등록금을 타서 낼 수 있는데 그러면 과를 알게 되잖아요. 그래서 고백했죠. ''아버님, 대학은 가고 싶고 상대는 어렵고 신성일 씨 같은 배우가 꿈이다...'' 했더니 ''뭐, 배우? 네 얼굴을 봐라. 안 돼! 과를 바꿔!'' 이미 정해진 과를 어떻게 바꿉니까.

    하지만 ''서울 올라가서 과를 바꿀 테니 등록금은 일단 내 주세요 했어요.'' 결국 배우로 성공하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했죠. 대신 둘째 동생이 서울대학교를 들어갔어요. 그 바람에 동생과 제가 서울에 올라와 있으니까 용돈도 많이 주시더라고요. 어머니도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두 분이 고생을 많이 하셨죠.

    ''장세탁''으로 집사고, ''쿠웨이트 박''으로 20년 무명 벗고

    ▶ 부모님께 효도 많이 하셨어요?

    = 제가 ''쿠웨이트 박''한다고 할 때 동네가 난리가 났어요. 어머니가 시골 마을 부녀회장이셨는데 쿠웨이트 박이 떴다고 막걸리 파티를 하셨대요. 대학교 졸업 이후에 한 20년 가까이 연극배우로 무명생활을 했으니까 그때 한번 크게 효도한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한 작품 뜰 때 과로로 제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쓰러져 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7~8년을 병상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 74년도에 결혼했는데 후배를 통해서 처음 만났어요. 제 첫인상을 보고 ''저런 사람이 있나'' 했대요. 그때 쫄티에 바지 입고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저런 사람과 연애하면 큰일 나겠다 했는데 말하는 걸 보니 모양은 저래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대요. 제가 워낙 원색이나 컬러풀한 걸 좋아해서 젠틀하게 입고 다니라고 아내한테 많이 혼났어요. 이후에 많이 바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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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무명생활을 하시는 동안에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생활은 어떻게 하셨어요?

    = 제가 부모님께 참 죄송한 게, 44살까지 시골에서 보내주시는 쌀로 생활했어요. 어머니께서는 전화 드릴 때마다 내려오라고 하시죠. 내려오면 아버지 밑에서 가업 이으면 되는데 배우 한다고 고생하면서 TV에도 못 나오지 않느냐고요.

    사람들이 ''자네는 뭐 하나?''하고 물어보는데... 이 ''뭐 하나?''가 미치는 거예요. 직장이 뚜렷하지 않으니까 매번 ''그냥''이라고 얼버무리는 거죠. 연극이라고 말하면 배고픈 거 집어치우고 불쌍한 너희 아버지 도와드리러 내려오라고 하는 그 말이 듣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핑계를 대고 서울에 있고 아내와 아이만 내려가게 했어요. 아내도 고생 많이 했죠. 내려갈 때마다 어머니가 건어물 장사해서 모은 돈을, 그 꼬깃꼬깃한 돈을 챙겨서 주시곤 했어요.

    ▶ 언제부터 형편이 괜찮아지신 거예요?

    = ''한지붕 세가족''할 때부터요. 어느 날 ''한지붕 세가족'' PD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한 번 나오는 역할인데 할 수 있겠느냐고 하더라고요. 방송출연이 꿈인데 한 번 출연이 문제겠어요? 갔더니 쟁쟁한 사람들이 다 앉아있어요. 강남길 씨, 임채무 씨, 윤미라 씨, 김혜경 씨... 일단 연습을 했죠. 이름이 ''장세탁''인데 혼자 세탁하면서 짐도 나르는 모습인데 역할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충청도 사투리를 써 가면서 역할을 재미있게 가공했어요.

    그다음에 또 연락이 왔어요. ''최 선생님, 모니터를 봤는데 두어 번 더 나오셔야 할 것 같아요.'' 4번까지 나왔는데 이번에는 고정출연을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 가서 아내에게 이제 매주 나온다고 이야기했더니 아내가 울더라고요. 그 드라마를 7년을 했는데 그동안에 생활이 안정을 찾았죠.

    ''한지붕 세가족'' 드라마를 하는 도중에 ''쿠웨이트 박''도 하게 됐어요. ''쿠웨이트를 다녀온 쿠웨이트 박'', ''하모니카를 잘 부는 쿠웨이트 박'' 하모니카를 잘 분다고 해서 청량리에 있는 학원에서 일주일 동안 NG 내면 안 되니까 능숙해질 때까지 연습했는데 녹화 첫날부터 NG를 낸 거예요. 그게 7~8번이 나니까 PD가 하모니카도 못 불면서 어떻게 탤런트가 됐느냐고 하더라고요. 10분 쉬고 다시 부는데 똑같은 소절에 가서 ''삑~''하는 소리가 나요.

    그래서 감독에게 하모니카 대신에 노래로 하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스텝들 다 보는 앞에서 시키는데, 불렀던 노래가 라디오 주제곡인 김국환 씨의 ''꽃순이를 아시나요?''였어요. 눈을 지그시 감고 불렀는데 감독이 박수를 치면서 OK 사인이 왔죠. 그래서 매 장면마다 하모니카 대신 노래를 했어요. 그때부터 전화위복이 됐지요.

    "사람이든 연기든 기초가 튼튼해야"

    ▶ 그때의 의상이나 소품이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 시나리오에 ''야한 의상을 입은 쿠웨이트 박''이라고 지문이 나오면 그 다음은 배우의 몫이죠. 캐릭터를 가만히 생각해 보고 남대문 시장에서 싸구려 옷들을 사서 의상을 만들었어요. 진달래 색깔의 머플러 하며 팔찌 등을 하고 가니까 녹화하는 날 난리가 났어요. 어떻게 저런 설정을 하고 나올 수 있냐고요. 상대역인 박혜숙 씨가 웃느라고 녹화를 못 했어요.

    ▶ 어려운 시절을 관통한 선배로서 요즘 잘 나가는 젊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조급해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초를 다 밟고 올라가서 어려움을 겪고 노력한 만큼의 그릇을 쌓아나가야지, 설령 한 번에 쌓았다고 해도 엎어지고 깨지는 과정에서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젊은 시절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면 자만해지고 폼만 잡고 이상한 짓해서 돈을 낭비하기 쉬워요. 자신에게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 언젠가 꽃을 피우게 되어 있다. 노력과 자기역할을 충실히 하는 배우들은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 있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고 기초부터 다져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허튼짓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다리는 직업이기 때문에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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