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의 거북선 모형
"이순신과 귀선, 거북배에 대해 우리 정부는 찬양만 했지 제대로 과학적 연구를 위한 토대를 세우진 않았다"
귀선에 매료돼 한평생을 바친 이원식 박사는 "1592년식 이순신 장군이 만든 귀선은 우리 국방, 과학, 문화유산으로 정부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을 개인의 돈과 노력으로 연구하고 복원하게 한 정부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고 얘기한다. 역대 정부의 문화 교육 정책이 이른바 ''거북선''을 찬양만 했지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진 거북선이란 용어도 사실상 귀선, 아니면 거북배라고 해야 하는데 국적불명의 용어"란 얘기다.
지금 일반에게 알려진 거북배의 모습은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건데, 그 기록은 1795년 귀선에 관한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바다를 누빈 귀선의 실체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원식 박사는 23일 CBS 뉴스매거진 오늘(진행:이상벽 09:05-11:00)과의 인터뷰에서, 1592년 귀선은 지금 알려진 귀선보다 30% 정도 작았지만 "용머리에서 유황 염초 대신 대포를 쏘는 방식이었고, 거북 잔등판에도 무늬가 아니라 나무판에 칼 송곳을 꽂아놓은 모습"이었다고 소개했다.
귀선의 모태가 된 우리 고유의 배, 한선도 연구했던 이원식 박사는 "마포 서강에 살던 지씨 노인(한선 조선 목수)은 마늘 행상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인천 용현동에 살던 판씨 노인(한선 조선 도목수)은 노년을 하는 일 없이 소일하며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말한다. 한선의 맥이 끊기고 나서 조선 기술을 가졌던 이들은 대부분 "왜식 개량 선박 조선에 일당으로 취업하여 노후 생계를 유지"하는 걸 보며 가장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현충사에 전시된 귀선 복원에 참여하기도 했던 이원식 박사는 당시 "1795년 귀선을 모방하면서 원로 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거북 잔등에는 철갑을 씌우고 칼 송곳을 꽂았는데, 철갑선이라는 그간의 논문이나 저서의 내용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동아일보사에서 제작비를 헌납했는데, 모형선의 설명서에 "앞으로 새로운 고증 자료가 발견되거나 발굴될 때에는 연구에 따라 다시 제작을 하기로 한다"고 명시를 했는데 지금 그 설명문은 폐기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동아일보사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지금 이원식 박사는 1592년 귀선의 25 분의 1 크기로 조선공학적 축척 모형선을 만들고 있는데 완성되면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에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