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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규의 영어와 맞짱뜨기]

영어

 

경기도에 소재한 한 대학의 연못 앞에는 커다란 남근석이 서 있다. 해마다 발생하는 익사사고의 피해자가 남성들이라 음기가 넘치는 이 지역의 기를 막아보려고 대학당국이 벌인 고육지책이라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미국 워싱턴DC에도 이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거대한 남근석이 서 있다. 도시 중심에 우뚝 솟은 워싱턴 탑이 이것인데 사람에 따라서 남이 보지 못하는 면을 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친한 흑인친구는 이 탑을 보고 "미국이 백인남성에 의해 지배받는 나라라는 점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 흔한 여러 색을 내버려두고 도심의 스모그나 먼지 때문에 관리하기 어려운 하얀색으로 도배됐다는 것은 백인을 상징하고 그것도 남자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잘 하려면 이렇게 한 가지 표현을 두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게 말장난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배운 여러 단어 중에서 비교급이나 최상급을 만들 수 없다고 여겨진 말만 골라 다양한 표현을 익혀보자. 1958년 노벨문학상을 탄 소련의 시인 보리스 파스트라낙은 전쟁의 비극을 지적하며 "All the victims are equal. None of the victims are more equal than the others(모든 희생자는 똑같다. 어떤 희생자도 다른 사람보다 더 똑같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식이라면 이 ''equal''이라는 말은 비교급으로 등장할 수 없다. 평등을 상징하는 이 단어에 ''more''라는 말이 올 수 없지만 파스트라낙은 비교급으로 이 단어를 활용해 전쟁의 비극을 지적했다.

독일의 침략을 당해 소련인구의 10%가 희생됐고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은 곧 보복조치로 독일여성에 대한 무차별 성폭행을 자행하고 어린이들을 학살했다.

그러나 독일군에 살해된 소련인의 생명이 1945년 봄 베를린에 있던 독일인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볼 수 없지 않은가? 비슷한 표현은 얼마든지 있다.

최근 사랑하던 여성과 헤어진 한 미국인 친구는 나에게 "I am alone. I have never been more alone ever before(외로워요. 이렇게 외로웠던 적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고독을 나타내는 ''alone''에 비교급을 쓰면 생애에 가장 외로운 시기를 나타낸다. 남보다 풍부한 표현을 사용하려면 무슨 단어든 비교급, 최상급을 적절하게 이용해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혼자라면 단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나 혼자 있다는 말이 아니라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나 혼자 남을 수 있다는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하고 평등하다고 해도 소외받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제대로 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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