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일본에서 잠시 거주할 때 일이다.
인근 공장지역에서 일하는 한국인 남성 두 명이 몸싸움을 벌였다는 말을 듣고 이유를 알아보니, 같은 여성을 좋아해 일어난 사랑싸움이어서 필자보다 어린 당사자들을 불러 혼을 낸 적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외국에 와서 고생하는 것은 알겠지만 너희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매매춘에 종사한다는 것을 알면 너희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쯤은 눈치를 챘어야지." 매매춘이라는 말을 하면서 일본어로 ''음매(淫賣)''라고 말하자 주변의 일본인들이 "어디서 그런 험한 말을 들었어요?"라며 놀란다.
매매춘이라는 것이 당연히 힘들고 고상한 직업은 아닌데 왜 이러나 생각해보니 단어에도 맛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淫賣''도 마찬가지로 전쟁 전 일본에서 몸을 파는 여성을 경멸하며 쓴 험한 욕설로 같은 직업이라지만 요즘은 매춘(賣春)이라고 말한다.
같은 의미이지만 욕설은 결코 아니다. 한국인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도 단어의 맛을 구별할 수 없어서일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resurrection''과 ''revival''은 사전상으로는 ''부활''로 설명되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전자가 기독교적인 사상이 함축돼 예수의 부활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누구나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돌아왔으면 부활이다.
기독교가 상대적으로 늦게 보급된 우리나라에서는 한 단어로 번역되지만 이 단어의 맛은 완전히 다르다.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강이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bridge''이지만 로마시대 설치돼 물을 공급하는 목적으로 쓰인 수도교는 그 어원조차 완전히 다른 ''aqueduct''라고 말한다. 로마인이 건축한 다리는 다리이기 이전에 물을 공급하는 목적이 더 컸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좋은 일도 영어로는 ''dedication''과 ''devotion''으로 나뉜다. 전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가며 육체적으로 애써 봉사하는 것이고 후자는 항상 타인을 생각하며 정신적으로 배려하는 행동이다.
우리말로는 ''만'' ''곶''으로 번역되는 ''gulf''와 ''bay''도 ''gulf''는 규모가 큰 바다에서 움푹 들어간 장소를 뜻하는데 비해 ''bay''는 강을 끼고 내륙으로 뻗어 있는 바다의 일부를 뜻한다.
단어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쓰이는 목적이나 상황에 따라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말을 배우려면 먼저 섬세한 포도주 감별사처럼 맛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