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여성 20명이 잔혹하게 살해된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이 던진 충격과 전율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끔찍한 살인행각의 시작을 알린 사건은 지난 해 9월 23일에 발생했다. 범인 유영철이 7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달이었다.
유영철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주택에서 숙대 명예교수인 73살 이 모씨 부부를 둔기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보름 정도가 흐른 지난해 10월 9일 장소를 종로구 구기동으로 옮겨 81살 강모씨 등 일가족 3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어 일주일 뒤에는 강남구 삼성동 69살 유모씨를 그리고 한 달쯤 지나 다시 종로구 혜화동에서 87살 김모씨 등 2명을 살해했다.
7년형 마치고 출소하자마자 살인행각부유층 노인들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 사건으로 그때도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제기됐다.
경찰은 그러나 한 점 단서를 남기지 않는 범인의 치밀함으로 끝내 검거에 실패하고 해를 넘겼다.
실제로 범인 유영철은 신사동 사건 때 현장에 놓고 온 둔기를 되찾아 오는 대담함을 보였다.
결국 혜화동 사건 때 CCTV에 찍힌 뒷모습과 족적 몇 개가 범인이 남긴 단서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 15일 새벽 이미 여성 살인마로 변신해있던 유영철은 전화방 업주의 신고로 결국 검거됐다.
경찰은 시민의 제보를 받기 전까지 지난 10개월, 20명이 살해당하는 동안 수사에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못해 ''연쇄살인 책임론''마저 받고 있다.
하지만 조사하던 범인을 한 때 놓치기까지 하는 등 끝까지 허둥지둥하고 말았다.
치밀하고 대담, 단서 남기지 않고 현장 다시 찾기도범인이 노인들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경찰은 수감생활 도중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데다 출소 뒤 느낀 심한 소외감이 사회에 대한 분노로 결국 부자들에 대한 증오로 번졌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이같은 무자비한 부유층 살인행각이 지난해 말 갑자기 중단된 점에 대해 애인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출장 마사지사였던 애인에게 전과자, 간질환자라는 사실을 들키고 청혼을 거절당하자 여성과 사회에 회의를 느꼈고 다시 범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때가 여성상대 살인행각이 시작된 지난 3월이다.
범인은 이 때부터 최근까지 전화방과 출장마사지업소 직업여성들 11명을 자신의 원룸으로 불러 잔혹하게 살해한 뒤 신촌일대 야산에 암매장했다.
부자를 향한 증오가 여성에 대한 적개심으로유영철의 범행 대상은 부유층 노인이나 부인, 애인과 같은 직종의 여성들 뿐이 아니었다.
범인은 지난 4월 14일 밤 10시쯤 마포구 신수동에서 위조한 경찰신분증을 제시하며 불법CD 노점상을 승합차로 납치해 흉기로 살해한 뒤 인천 월미도에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로써 현재 피해자가 19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유영철은 경찰에 검거된 뒤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이 모두 26명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경찰은 이에 따라 부산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2건을 포함해 추가범행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상 가리지 않는 무차별 범행, 추가 범행 있을 듯경찰이 추가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그동안의 수사만 놓고 자면 헛점도 상당히 많았다. 시민반응에서도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시민들은 우선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 경찰에 잡혀서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유영철이 10달 동안 무려 20명을 살해한 것으로 밝혀지자 그동안 경찰은 무엇을 했느냐는 질타의 목소리도 높았다.
한 시민은 "이제라도 잡은 것에 대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조금만 더 빨리 잡았으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경찰수사에 헛점이 많았다. 우선 경찰은 시민제보로 유영철을 잡기 전까지 출장 안마 여성 11명이 숨졌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특히 이들 여성들이 살해당한 시기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경찰의 민생치안 100일계획과 여름휴가철 방범 비상령이 내려진 때였다.
4차례에 걸쳐 부유층 노인 8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은 4사건간의 동일성보다는 개별적인 원한관계에 수사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경찰은 또 시민제보로 잡은 유영철을 감시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놓쳤다가 12시간 만에 다시 붙잡는 큰 실수를 범했다.
만약 다시 잡지 못했다면 희대의 살인극이 현재까지 되풀이 될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시민 제보 없었다면?, 경찰 질타 목소리 높아한편 유영철에게 희생당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출장 안마 도우미 여성들이나 전화방 여성들이었다.
이들이 주요 범죄대상으로 떠오른 이유는 우선 저항능력이 약한 여성이라는 점과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이 불법적이다 보니 신고가 잘 안된다는 점 이 두가지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신종 성매매 여성들 대부분이 업주에게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거나 떠돌이 생활을 하는 바람에 실종신고가 잘 안되거나 되더라도 찾을 길이 막막한 실정이다.
서울경찰청 김용화 수사부장은 "직업자체가 불법이다보니 적극적인 신고는 없다"며 "여성들이 일하러 나갔다고 하고서 없어져도 실제로 2,3개월 있다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현재 2~30대 여성들의 실종신고 내역을 파악하면서 유영철에게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도 분석하고 있다.
신분노출, 신고 꺼리는 점 노려 직업여성들 선택또 유영철은 출장안마 도우미 여성들 대부분을 자신의 원룸에서 살해해 화장실에서 시신까지 훼손했다.
유영철이 범행장소로 원룸을 즐겨 이용한 이유는 원룸 특유의 은밀성 때문이었다.
원룸 대부분이 이웃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왕래가 전혀 없는 단절된 공간이어서 은밀성과 익명성이 보장된다.
게다가 자체 경비시설도 없어 출입자 관리도 허술하다.
당연히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고 이웃들의 관심도 다른 가옥구조에 비해 적은 편이다.
유영철이 살던 원룸 주민들도 사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범죄단서를 좀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처음에는 전동 칫솔 소린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훨씬 크고 자주 들려 항의의 뜻으로 벽을 두드리면 잠잠해지곤 했다"며 "여자 구두소리가 자주 났고 화장실에서 사람이 ''쿵''하고 쓰러지는 소리도 들렸다"고 밝혔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 ''원룸'' 범행 장소로 사용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를 놓고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소외감과 개인적인 복수심의 무게에 짓눌린 한 개인의 도발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범인 유영철은 실제로 7년이 넘는 수감생활 동안 부인으로부터 이혼당하고 출소 뒤에는 전과자, 간질환자라는 이유로 다시 한 번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로 인해 출장마사지업소처럼 부인이나 애인과 같은 직종의 여성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게 됐고, 이어 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가 부자들에 대한 살의로 번졌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살인이 반복되면서 범인의 죄의식은 점점 더 무뎌졌고 결국 사람이 물건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그 심리를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이 희대의 살인마로 변모한 점에 대해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경제난 속에 시대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좌절감을 공동체가 보듬어 줬어야 하며 이는 앞으로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사회병리연구소 백상창 소장은 "교육 등을 통해 자신의 고뇌를 승화할 수 있는 제도적인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확산일로의 물질주의와 사이버 문화로 급격하게 탈인간화돼가는 우리사회.
이번 사건을 진지한 참회의 계기로 삼지 않을 경우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맹목적인 공격은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 언제든지 재발 가능유영철에 대한 법정의 심판은 과거 지존파 사건 등 강력사건의 전례에 따라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3년 4월 부유층 등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지존파 6명은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사형이 확정돼 집행됐다.
또 94년 9월 서울 양재동에서 귀가 중인 20대 여성을 택시로 납치해 살해하는 등 부녀자 6명 가운데 2명을 숨지게 한 온보현에게도 사형이 선고됐다.
당시 대법원은 지존파에 대한 선고에서 "범죄 수법의 잔혹성과 대담성, 유족들과 온 국민에게 안겨준 아픔과 충격 등을 고려할 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은 적절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이런 판례에 따라 연쇄 살인범은 아니지만 지존파를 모방한 막가파와 영웅파 일당들 가운데 일부에게도 사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20명으로 나타나고 있는 유영철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살인과 사체 유기 등의 혐의가 인정되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씨가 정신 이상을 이유로 정상 참작을 요구할 수도 있어 최종 선고를 맡게될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CBS사회부 이기범/정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