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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수 이안의 ''정체성을 일깨운'' 일본 공연

  • 2004-07-09 15:15

 


일본 후쿠오카에서 공연의뢰가 들어왔다. ^^ 일 때문에 가는 거지만 낯선 땅을 밟고 낯선 공기 마시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2002년 음악여행 이후 첫 해외나들이라 공연보다는 세상구경에 더 관심이 쏠렸다).

행사 중간에 <미인> <아리요> 2곡만 부르고나면 자유시간, 그 달콤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고 재미나게 놀까가 내 가장 큰 관심사였다.

''서문탁 언니가 일본라면 맛있다는데 꼭 먹어봐야지...''

''스케줄에 온천장도 간다고 써있네.. 혼탕은 아니겠지ㅡㅡ;;?''

''음반가게 가서 하루 종일 구경하고 음악 들어야지...''

''공연, 한번만하면 되는 거네!! 어디어디 갈까?''

방 한켠에 미리 챙겨놓은 짐 꾸러미를 보며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행사장으로 향했다. ''리멤버 스피릿'' 플랜카드가 예사롭지 않았다. ''정신을 되살리자... 정신을 기억하자... 어떤... 어떤 정신이길래?''

이어지는 영상자료를 보며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1945년 해방 후 재일 한인들의 생활상과 민족교육의 역사가 담긴 귀한 자료였다. 때묻은 다큐영상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잊혀진 그들의 외로운 싸움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몇편의 생생한 영상자료와 4시간동안 진행됐던 우리민족포럼을 보며, 또 행사 내내 흘러나오는 노래를 통해서 1945년 해방 후 재일 한인들의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기적을 일궈낸 사람들... 그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아이들아 이곳이 우리 학교란다.
조국을 떠나 수만리 일본에서 나서 자라
너희들에게 조국을 배우게 하는
아이들아 이곳이 우리 학교란다...''

다소 단순한 듯한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또 상상의 나래를 편다. 내가 본 단편적 영상들과 인터뷰를 조합해서...

일제시대 때 징용되었던 나는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선착장으로 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파 때문에 배를 구하지 못하고 일본땅에 눌러앉아 고향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가난은 대물림되고 학교교육은 꿈도 꿀 수 없던 시대... 민족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말 우리글을 배우는 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십시일반 모아 값싼 산을 샀다. 누구도 그 높은 산에 학교가 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고집으로 산을 옮겼고 의지로 학교를 세웠다. 공간부족 자재부족 교재부족 교사 부족 등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어 학교라는 의미 자체가 너무나도 각별하고 소중했다.

그렇게 노래에는 당시상황과 시대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조선 가무단이 부르는 노래 ''이곳이 우리 우리학교란다''는 그들에겐 아리랑처럼 정신적인 노래로 불리는듯했다.

규슈 조선 중 고급학교 학생들의 <희망은 가방속에> 무용과 토론이 끝난 후에 무대에 선 나는 <미인>과 <아리요>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재일교포작곡가 윤영란(26)씨는 우리민요인 아리랑과 쾌지나 칭칭나네를 재구성해 만든 <아리요>는 "너무 구성진 대다가 신명난 악기의 리듬이 울리는 순간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이어서 팔에 닭살이 돋았다"고 말했다.

교포 재즈가수 김향(26)씨도 "어떻게 저리도 아리랑을 파도 타듯 힘 있고 편안하게 부를 수 있냐, 거기다가 가사 내용도 1% 가능성에 인생역전이 시작 된다는 대목이 제일교포들에게 와 닿는 노래라면서 노래로 우리는 이미 하나 되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의 눈에도 눈물이 뜨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앵콜 요청에 다시 무대에 선 난 "진심으로 제가 존경하는 분들은 대통령도 그 누구도 아니라 마치 아스팔트위에 핀 민들레처럼 타향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여러분들 입니다"라고 말해 강당을 메운 천여 명의 재일교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청상회 회장과 임원들은 1만 명을 객석에 채워주겠다며 동경공연을 초청하면 수락해 줄 수 있겠냐고 했고, 재일교포 연출가인 김지석씨도 오사카에 대규모 이안 공연을 추진하면 와줄 수 있겠느냐고 몇 번이나 확인 질문했다. 그분들의 성원에 몸둘 바를 찾느라 혼났다. ^^

마지막으로 뮤지컬이 끝나고 뒷풀이로 이어진 자리에서 <반갑습니다> <아침이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게 됐는데 <뱃노래>로 화답한 나는 한꺼번에 30여명이 몰리는 핸드폰카메라 공세에 웃는 표정 짓느라 얼굴 근육이 마비된 듯 했다.

이분들이 좋아하시는데 몇시간이고 못 웃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노래로 정신으로 충분히 하나가 된 느낌을 받으면서 나는 가슴 속 깊이 복 받쳐 오르는 그 무엇인가가 역시 나는 한민족의 딸이라는 걸 새삼 되새기게 하였다.

즐거운 상상만 하고 가볍게 떠나온 여행... 아니 공연... 그러나 일본에서의 공연 일정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처음의 생각과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역시 이번 공연은 나에게도 의미 있는 또 하나의 여행이 된 셈이다.

앞으로 나 이안은 가수로서 하나의 사명을 안고 가게 된 것이다. 지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번 일본 후쿠오카 공연은 가수 이안의 정체성을 아주 많이 깨우쳐준 의미있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떠나기 전 어렸던 생각과 불과 며칠사이 달라진 나를 비교 하면서 미소 짓는 즐거움.... 이것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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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가수 이 안은 2004년 상반기 최고의 인기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 일명 ''오나라송''을 불렀고 올해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갓 졸업한 풋풋한 사회 초년생으로 국악과 다른 분위기의 새로운 노래를 안고 우리 곁에 슬며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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