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백미(白眉)는 그 탁월한 경제성입니다'''' 영문법론을 전공하는 한 친구가 한 말이다.
학창시절부터 영어깨나 한다고 자부한 나이지만 이 말이 가지는 진짜 이유는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라틴어를 공부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좋은 친구, 똑똑한 친구를 두어서 기쁘기는 하지만 친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해 씁쓸한 마음마저 든다.
그 친구는 영문법 하나만을 공부하고 터득한 사실인데 나는 언어를 무려 다섯개나 배우고 나서야 어렴풋하게 눈치챘으니 말이다.
영어의 경제성은 신체변화에서 찾으면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자기 몸뚱아리지만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현상을 외국어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배운 문장의 5형식, 즉 주어+동사, 주어+목적어+동사 식으로 공식을 머리에 갖고 있는 사람은 너무 어려운 것이 이런 신체변화를 다룬 문장이다.
영어는 다른 유럽언어보다 신체변화를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데 그 표현력이 대단하다.
영어의 강점은 단어와 단어가 쉽게 결합해 제 3의 뜻을 만든다. 물론 다른 유럽언어나 심지어 우리말에도 이런 복합어를 만드는 기능은 있지만 영어에서 복합어는 몇가지 특성이 있다.
우리말로 머리에 새집이 졌다는 말을 할 때 영어는 아주 간단하게 ''''I have bedhair''''이라고 말한다. 침대에서 막 자고 일어난 헤어스타일이라는 말이다. bed와 hair는 전혀 다른 단어이지만 결합하면 좋은 영작재료로 변신한다.
얼마전 미국 남부 애리조나주의 한 벽촌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숙소로 묵었던 모텔이 세상에 더러워도 그렇게 더러운 곳은 제 3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왔는데 자꾸 몸이 가려워 병원에 가니 ''''bedbug''''에게 물렸단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도 빈대가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침대에 기생하면서 사람에게 슬슬 달라붙어 피를 빠는 못된 벌레가 바로 빈대이다. 이런 영어의 마구잡이식 조어력은 차라리 한자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는 것 같다.
일 때문에 잦은 해외출장을 한 사람이라면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도 엄청난 고역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안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공항은 직원들의 불친절함과 고압적인 자세, 국제공항에 일단 도착한 뒤 짐을 다시 검사받는 등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최근 10여년간 하도 비행기를 많이 타다 보니 각 나라 공항은 물론 항공기의 서비스 변천사까지 줄줄 외울 지경에 이르렀는데 내 기억으로는 공항검사가 까다로워진 것은 이미 9.11 사태전부터 시작된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특히, 동남아 일대에서 사스와 조류독감, 구제역등이 창궐하면서 이런 이전에는 없던 검역절차가 늘어났다.
그런데, 이렇게 이전에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병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언론사 기자들 특히 국제부기자들의 번역솜씨가 크게 좌우한다.
나는 100점짜리 번역물이라면 단연 구제역(口蹄疫)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축의 입과 발굽에 염증이 생기면서 집단폐사까지 초래하는 이 질병은 현재 세계 각국이 가장 무서워하는 질병가운데 하나다.
영어로 구제역은 ''''foot and mouth disease''''라 하는데 가축의 입과 발굽에서 염증이 생기는 이 병의 증상 때문에 생긴 말이다. 독일어로도 ''''Fuß und Maul Krankheit''''라고 하는데 여기서 ''''Maul''''은 사람의 입(Mund)이 아니라 짐승의 입을 뜻한다.
우리말로 구제역이라면 한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들으면 ''''뭘 구제(救濟)한다는 거지?''''라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입 구자(口)에 발굽 제(蹄)자를 붙여 만든 신조어다. 더구나, 이 질병이 그냥 병(病)이 아니라 전염병을 의미하는 역(疫)자를 쓰니 병의 예방까지 강조한 지혜가 엿보인다.
이런 예는 엄청나게 많다. 우리가 중학교수준이면 배우는 두통(headache), 치통(toothache), 복통(stomachache)도 같은 부류다. 이런 말을 유럽 다른나라 말로 바꾸면 모두 ''''머리가 나를 아프게 한다'''', ''''이가 나를 아프게 한다''''로 변한다.
우리말이나 영어에서는 이나 머리나 배가 아픈 것이지만 유럽대륙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고 다만 몸의 어느 부분이 고장이 나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을 쓸 수 밖에 없는 원인으로 나는 유럽대륙 언어의 고지식함과 완고함을 지적하고 싶다. 유럽언어의 동사는 상당수가 바보이기 때문이다. 한번 타동사이면 죽을 때까지 타동사이고 한번 자동사이면 최후의 순간에도 목적어를 거부한다.
이런 구조이다보니 이 동사라는 망령이 단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일이 기입을 해 자유롭고 경제적인 짧고 명료한 뜻을 가진 말이 나오지 못한다.
※ 이서규 통신원은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