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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로운 연기와 역할에 목말라 하는 배우에게, 단 한 가지 이미지, 그것도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가 십수년동안 덧씌워져 있었다면... 그 답답함이 오죽했을까?
80년대 이후, 우리에게 ''''마님!''''을 부르는 변강쇠의 이미지로만 강하게 각인이 되어 있었던 이대근, CBS <뉴스매거진 오늘>(표준FM 98.1MHz, 진행; 정범구 박사)이 그를 만났다. 영화 촬영 분량이 하루 정도 남았다는 이대근, 깨끗한 흰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예순이 넘었지만 아직도 근육질인 배우 이대근에게선 액션배우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김두한 시리즈와 시라소니로 한 시대를 풍미한 액션스타, 하지만 남아있는 이미지는 왜 ''''김두한''''이 아니라 ''''마님!''''을 부르는 ''''변강쇠''''일까?
''''사실 지금도 나이가 쉰이상 된 분들은 나를 액션배우로 생각한다. 김두한, 시라소니, 거지왕 김춘삼처럼 뒷골목에서 힘 있는 역할들을 많이 했고, TV물에서는 정주영 회장같은 역할도 맡다보니 캐릭터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그땐 내 앞에서 일부러 까부는 젊은애들도 많았다. 하지만 <변강쇠>을 통해서 ''''마님!'''' 이란 대사가 널리 알려진 후 이미지가 바뀌었다. 변강쇠전은 사실 에로물이 아니라 춘향전 다음으로 해학이 뛰어난 유명한 작품이다. 남편이 결혼당일에 죽어도 평생 수절해야 하는 당시의 유교적 분위기에 반기를 든 주인공이 바로 변강쇠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변강쇠>를 해학물이 아니라 에로물로 해석하고 평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아쉽다. 그리고 사실 변강쇠는 1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감독이 에로티시즘 영화로 바꿔서 2편을 한번 더 찍자더라. 개런티를 따블(2배)로 주자고 했는데, 난 그냥 싫다고 했다. 그래서 2편은 다른 배우가 찍었는데, 사람들은 다 내가 찍었다고 생각하더라. 지금까지 영화 300편을 찍었는데, 히트작만 부각되고 나머지는 잊혀져서 그런지 이미지가 고정돼 버렸다.''''
이대근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온 탓인지 섭섭함이 커서인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강한 어조였다. 사실 이대근은 ''''마님''''이란 대사 때문에 배우 주현 씨와 더불어 코미디언들이 가장 자주 성대모사를 하는 배우 상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그런 코미디언들과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고 한다.
''''나를 흉내내는 코미디언들이랑 코미디영화를 한번 찍은 적이 있다. 코미디언들이 처음엔 코미디 영화니까 자기들이 자신있다고, 속된말로 나를 좀 죽여보자고 그랬다더라. 하지만 영화끝나고 말하길, 카메라 앞에 서다보니까 대본대로 되지도 않고 이대근 선생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더라.''''
ㅍㅍ
무려 300여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바쁠 때는 한 해 17-18편의 영화도 찍었던 이대근, 그의 연기를 우습게 봤다가 큰 코 다쳤다는 얘기다. 정통 연극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던 배우 이대근, 이렇게 바쁘게 보낸 삶에 대한 회한은 없을까?
''''지금 영화 2편을 찍고 있는데(''''이대근 이 댁은'''', ''''무림 여대생''''), 전북과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하려니까 너무 힘들더라. 옛날엔 잠도 안자면서 어떻게 그렇게 찍었나 모르겠다. 역시 일은 젊었을 때 해야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때 열심히 했던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하나 섭섭한건 딸들한테 소홀했다는 것. 영화가 뭐길래 딸들 한번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고 시집보낸 것 같아서, 결혼식장에 팔짱끼고 들어가는데 마음이 너무 미안하더라. 그래서 딸들한테는 새 가족인 남편이랑 시댁에 잘하라고 했다.''''
딸 셋의 아버지인 이대근은 탤런트들 사이에서 원조 기러기아빠로 통한다. 처음 딸을 미국에 보냈을 때는, 5-6년동안 매스컴에서 조국을 배신했느니 하는 얘기까지 나와 속도 많이 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딸들이 장성해, 큰 딸과 작은 딸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14급까지 진급했고, 막내 딸은 어엿한 교사로 일하고 있어 가슴이 뿌듯하다고. 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내가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소변을 받아드린 적이 있는데, 냄새가 하도 고약해서 어머니한테 왜 이렇게 냄새가 독하냐고 여쭤봤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껄껄 웃으시면서 , 나는 니 기저귀 갈 때 냄새가 하도 구수해서 항상 기저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어머니께 무릎꿇고 잘못했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된 마음이 다 그런 것 같다.''''
이번 영화 ''''이대근 이 댁은''''에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쓸쓸한 노인역할을 맡은 그에겐, 이런 가족경험들이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대근은 처음에 영화제목을 듣고 감독에게 ''''너 장난하는거냐''''라고 되묻기도 했지만 다시 대본을 읽어보고 작품이 워낙 좋아 캐스팅에 응했다며,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번 영화를 기다려달란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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