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
''나비의 날개짓처럼 광채가 난다''는 이름의 가수 호란(27)은 요즘 나비보다 카멜레온에 가깝다. 매일 새 옷을 갈아입으며 일주일 내내 쉼 없이 끼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2시~4시) MBC 라디오 ''뮤직 스트리트''로 청취자와 만나는 호란은 목요일이면 EBS TV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밤 11시 55분)''로 토요일이면 KBS 1TV ''파워인터뷰(밤 11시)''로 시청자를 찾는다. 그의 분주한 행보를 보고 있으면 지난 3년간 일렉트로니카 밴드 클래지콰이의 보컬에만 머물렀던 이유가 되려 궁금해질 정도다.
독특한 책 소개로 마니아 시청자 양산 호란의 ''부업''은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로 시작됐다. "평소 독서를 좋아한다고 몸소 홍보하고 다닌 성과"라며 웃는 그는 지난 3개월간 방송된 책을 모두 읽었다.
호란의 책 소개 방식은 독특하다. 매회 책의 특징을 살려 일부분을 낭독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낭독 뒤 곧바로 카메라를 향해 분위기에 맞는 표정을 선보인다. 때론 섬뜩하고 때론 발랄하다. 이는 마니아 시청자들을 열광시키며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방송 3개월, 안정적으로 정착 중인 호란이지만 처음에는 "편협하게 소설만 읽는 편인데 MC로 얼마만큼의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방송사가 EBS인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캐주얼하게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덜컥 진행을 맡고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은 무사하다(웃음). 사실 보여지는 것 만큼 주도적으로 해나갈 능력은 없고 다만 ''척''하고 싶지 않아 내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제 독서 소감을 방송 원고에 반영할 정도가 된 호란은 "시청자들을 믿고 의지하게 됐고 내 페이스에 따라 억지 부릴 필요없다"는 진행법도 습득했다.
''파워인터뷰'' 패널 도전, "아주 많이 얼어있었다"''파워인터뷰'' 패널로도 활약 중이다. 자신만만해 보이는 호란이지만 이 프로그램에 나서는 일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고 "초반에는 아주 많이 얼어있었다"고 고백했다.
매회 바뀌는 게스트에게 던질 질문을 준비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음악인이라면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일겠지만 사회 각 분야 인사가 등장하는 까닭에 출연자가 결정되면 관련 뉴스를 꼼꼼히 살피며 정보를 모아야 한다.
두 방송사를 대표하는 교양 프로그램을 이끄는 일이 벅찰텐데 호란은 라디오 DJ까지 맡았다. 처음 일주일은 모든 노래를 직접 선곡했다. 매일 24여곡, 7일동안 150여곡을 골랐다. 지금은 일주일에 8곡을 선택해 들려주고 있다. 두말 할 것 없이 욕심이 대단하다.
호란
"요즘 고3 같은 생활한다"활동 반경이 갑자기 넓어진 호란은 쏟아지는 관심에 무덤덤하게도 "요즘은 고 3 같은 생활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겉으로 바쁘고 실제로도 바쁘지만 고 3이 노는 만큼 숨 쉴 구멍은 있다"고도 했다.
호란이 찾은 돌파구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일이 많을 수록 혼자의 시간이 절실해지는 그는 얼마 전 강원도 평창으로 홀로 여행을 다녀왔다. "평창에서 먹은 메밀 비빔밥이 일품이었다"며 환히 웃는 호란에게 바쁜 하루, 하루는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양면 같아 보였다.
무대에서 도발적이고 MC로 당당한 호란은 무슨 일이든 똑 부러지게 해결하고 생활은 한없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실 내면의 고민은 끝이 없다. 당당하고 자유로울 것 같은 이미지는 곧 대중의 고정관념으로 변해 깨야할 편견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교까지 긴 시간동안 정형화된 삶을 살았다. 20년간 십자 나사로 짜 맞춰 살아온 내가 진짜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를 깎아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툭 털어놓은 고민은 뜻밖이었지만 어긋남 없는 주어와 서술어 부합으로 이어지는 호란의 화법은 역시 그가 얼마나 영리한 가수인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인터뷰 말미, 서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연애는 안하냐"고 물었다.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연애가 뭐에요?"라고 묻는데 할 말이 없다.
황당한 마음에 눈을 맞추고 피식 웃었더니 "함께 살고 있는 페르시안 고양이 2마리와 연애하는 중"이라며 당장 연애에 뜻이 없음을 에둘러 전한다.
참, 클래지콰이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달 말 대만에서 2집이 출시되고, 내년초쯤 정규 3집을 발표할 것"이라며 "다음달 14~15일 클럽 악스에서 콘서트 ''핫 라이브 앤 쿨 파티''를 연다"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