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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발상지 한화 인천공장 역사 속으로

보은에서 화약의 새 역사를 이어가

인천화약공장 전경

 

6.25 전란 후 국가재건 및 한국경제발전과 함께 해온 우리나라 화약업계의 살아있는 역사인 한화 인천공장(인천광역시 남동구 고잔동 소재)이 20일 생산을 종료했다. 주식회사 한화(www.hanwhacorp.co.kr / 대표이사 南令鐥) 20일 인천공장의 생산을 중단하고 오는 9월까지 이전작업을 벌여 10월부터 본격적인 보은 생산시대를 개막할 예정이다라고 20일 밝혔다.

한화는 20일 오후 4시 인천공장 생산1부 앞에서 남영선 사장과 민병만 인천공장장 및 역대 공장장들을 비롯한 인천공장 전 사원과 협력업체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생산완료 기념식'''' 및 ''''생산완료 감사 및 순직종업원에 대한 위령제''''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남영선 대표이사는 ''''수많은 시련과 역경속에서도 인천공장이 그 소임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가게 되어 아쉽다''''는 말로 감사와 위로를 하면서, '''' 인천공장이 쌓아올린 명성과 영광을 새로운 사업장으로 계승하여 화약산업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강조했다.

김승연(金升淵) 그룹회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인천공장이 한국경제에 남긴 선명한 족적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 이라면서 ''''화약인의 혼과 한화인의 열정이 영원한 횃불로 타오르길 기원한다''''며 격려했다. 오늘 한화 인천공장의 생산 종료는 도시의 확산 방지, 수도권 과밀지역 해소 및 지방균형발전 등의 정부시책에 대한 호응과 대단위 부지의 유동화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과 신사업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당초 97년 공장 이전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구체화 됐던 것이다.

인천공장은 1956년 1월 최초로 초안폭약 생산을 시작으로 58년 다이나마이트의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우리 산업사에 화약을 등장시켰으며, 반세기 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생산된 화약은 폭약 124만톤, 뇌관 11억개, 도화선 7억 7천만미터로 국가재건과 산업화의 첨병으로 그 역할을 했다.

그동안 인천공장에서는 초안폭약을 비롯해 초유폭약과 젤라틴 다이나마이트, 슬러리 폭약, 에멀전 폭약, 부스타, 니트로글리세린, 니트로글리콜, 뇌홍, RDX, PETN, DDNP, 테트릴, 공업뇌관, 전기뇌관, 비전기뇌관, 도화선, 미진동 파쇄기, 흑색화약, 장난감 연화, 타상 및 장치 연화, 신호기, 성화봉, 썬더후레쉬 등을 생산해 왔다.

이가운데 보은공장으로 이전할 대상 품목들은 에멀전 폭약을 비롯 뇌관류, 질산, 연화류 등이다.

동시에 연화 및 신호기류 등 파이로 테크닉스의 기본이 되었던 흑색화약과 암석 발파의 근간이 되었던 다이나마이트는 이전과 동시에 생산을 종료하게 된다.

인천공장에 있던 질산공장은 이미 온산지역으로 설비 이전을 완료하고, 2005년 1월부터 가동 중이며 폭약류 및 뇌관류는 현재 보은 공장에 제조시설 공사를 완료했거나 거의 마무리 중에 있다.

보은공장에 이전되는 품목 중 대표적인 제품은 다이나마이트를 대체할 수 있는 고성능 에멀전 폭약인 MegaMEX로, 에멀전폭약에서 가능한 최대의 에너지를 발휘하도록 개발되어 향후 다이나마이트를 대체할 수 있는 폭약으로 각광 받을 것으로 예측 된다.

현재 부지 120만평에 건물 116동의 보은공장은 이전 후 추가로 154동의 건물이 증축되며, 매출규모는 620억원에서 총 2,000억원으로 증가하며 인원은 330명에서 700명으로 늘게 되고, 기존의 방산 제품뿐만 아니라 산업용 화약제품까지 생산해 명실상부한 종합 화약 공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한화는 인천공장부지 72만평에 2009년까지 미니신도시를 개발하는 것과 함께 한화기념관을 건설해 한화역사관과 화약전문박물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인천공장은 일제의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조선유지 인천화약공장이 건설되면서 화약 산업이 시작되었고, 선대 현암 김종희(金鍾喜) 회장이 52년 한화그룹을 창업하고, 인천공장을 인수하면서 해방이후 우리나라 화약산업의 역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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