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
스물 여섯, 잘생긴 미남이라는 말보다 개성넘치고 변화무쌍한 얼굴 표정을 가진 배우 류승범이라는 말이 제격이다.
영화를 찍을 때는 항상 사회속에서 ''패배자''(루저)의 다양한 직업군의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늘 구질구질하고 헐거운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평소 시상식이나 인터뷰, 방송 출연 할때 보면 패션니스트중에서도 앞줄에 놓일 만큼 감각이 뛰어나다.
이번에는 그래도 흡족한 모양이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마약 중간상 이상도 역을 맡아서 역시 어두운 뒷골목 인생을 보여주지만 영화속에서는 ''벤처사업가''라고 주장하듯 촬영동안 8000만원에 상당하는 명품 의상과 소품으로 치장했다. 하지만 언제 류승범이 외양으로 승부걸던 배우던가? 이번에도 소름끼치듯 부산사투리에 몰입했고 배신에 배신을 더한 인간사 가장 역겨운 ''시추에이션''에서 승천하려던 불쌍한 이카루스의 날개짓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누가 갑자기 500억원을 덥썩 주는 것도 좋겠지만 배우로서 혼신의 힘을 들여 만든 자기 영화를 많은 사람이 봐주고 나중에 그 배우 그 작품을 기억해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쟁이적 기질을 내비쳤다. 스물 여섯의 배우가 욕심내는 얘기를 듣으면서 묻어나는 진지함은 상대방을 다시 한번 놀래킨다.
루저(Loser)가 좋아요류승범은 루저연기에 이골이 났다. 아니 소시민적 약자, 뭔가 완전하지 못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주먹이 운다의 ''상환''이처럼 ''사생결단''의 상도는 더할 수 없이 어두운 그늘 속에 있다. 전작들에서 그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일상속에서 관객의 모습과도 닮은 구석이 있는 아주 개연성 높은 인물이다.
"루저가 좋아요. 어느 면에서건. 책에서도 그렇고 다른 드라마나 만화 같은 장르에서도 루저들에게서 느끼는 뭐랄까 동질감, 동병상련의 그런 느낌은 관객에게 위로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워낙 귀공자 같고 황태자 같은 캐릭터들이 쏟아지니까 저 정도면 반대로 패배자의 역할을 해보는 것도 다양성 차원에서 좋지 않을까요."
류승범은 하지만 언제까지 루저를 고집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여전히 미지수란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난 뒤 멍함이 똑같이 왔던''사생결단
사생결단
이상한 일이다. 분명 언론 배급 시사회에 언론관계자들이 몰려들었지만 일반시사회에서 또다시 여러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영화는 일단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번 독해하고싶은 매력을 안겨줬다는 평이다. 그것이 일반 관객들에게도 소구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자신의 작품을 보고 난 소감을 묻는 우매함을 밀어붙였더니 류승범은 "멍했다"고 한다. "예전에 ''살인의 추억''을 보고난 뒤에 느낀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웃기다 슬프다, 세다 를 분명히 표현하기가 제 스스로도 어렵더라구요. "
실제 영화는 시종일관 관객에게 생각할 틈도 주지않고 2시간여 가까이 휘몰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듯 몰아간다. 근래들어 관객에게 가장 긴장감을 끌어올려주고 내려갈 틈을 주지 않는 롤러코스터 같다는 영화평을 얻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감독님과 황정민 선배와 현장에서 항상 대화를 했어요. 인물에 입체적인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촬영만큼이나 대화를 많이 했죠. 순간순간 가장 좋은 순간을 포착해내려고 치열하게 싸웠던 것 같아요. 감독님은 배우에게도 감독이 못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이었어요."
영화 홍보? 서로 정도를 지키면 된다영화를 찍은 배우들은 거의 어김없이 촬영종료후 홍보맨, 홍보걸로 변신한다. 방송 토크 프로그램에서부터 예능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매체와 채널을 통해 영화 세일즈를 한다. 때로는 비협조적인 배우로 인해 제작진이 맘고생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일처럼 자발적으로 120% 홍보 전선에 나서 감격하기도 한다.
류승범은 이에 대해 "배우나 제작진이나 배우를 너무 힘들게 하거나 배우가 영화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정도를 지키면 된다"는 말로 정리했다. 류승범은 "상품이 좋은데 포장이 너무 허술하면 나서서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영화 홍보"라며 "하지만 상품이 나쁘면 스스로에게도 책임은 있지만 나서기가 참 곤란할 때도 있다"고 했다.
류승범
''사생결단''은 경우는 어떨까? "왜 저라고 흥행배우에 대한 욕심이 없겠어요. 그런데요. 배우는 1000만 흥행이 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제가 공들여 정말 혼신에 힘을 다해 찍은 영화, 황정민 형이 말한 것처럼 맛있게 저희가 차려논 밥상을 오셔서 맛있게 많은 분들이 드셔주시면 그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어요. "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길 원해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내지르고 밖으로 폭발 시키는 연기에 있어 탁월하다는 평가에 대해 류승범은 "만일 그렇게 느낀다면 제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대답했다. "이상도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전 이 녀석의 감춰진, 속을 안보이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했어요. 자신의 분노와 세상에 대한 야수같은 욕심을 표출하면서 한번도 가족에 대한 아프고 불편한 속내를 시종일관 꺼내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안으로 곰삭이는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는 데도 욕심을 냈지만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다면 아쉽다는 말도 덧붙인다.
"알파치노나 로버트 드니로 같은 배우는 어떤 연기를 어떤 캐릭터를 하던 간에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줘요. 그들이 가진 풍부한 내면연기와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는 소시민 역할을 해도 우러나오잖아요. 제가 그렇게 되려면 내공을 더 쌓아야죠."
류승범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변화를 얻은 사람이 있었으면 싶다고 했다. 류승범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감동이 기억되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관객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작지만 긴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배우가 되기를, 그는 ''사생결단''하듯 스스로와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