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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소치 레터]김연아의 여유와 율리아의 '축 처진 어깨'



스포츠일반

    [임종률의 소치 레터]김연아의 여유와 율리아의 '축 처진 어깨'

    • 2014-02-20 09:46
    '당당한 피겨 여제' 김연아가 20일(한국 시각)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소치=임종률 기자)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펼쳐진 20일(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이날은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74.92점, 올 시즌 쇼트프로그램 최고점으로 1위에 오르며 올림픽 2연패를 향한 시동을 걸었습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는 프리스케이팅 경기 출전 순서 추첨이 진행됐습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24위 안에 든 선수들은 다음 날(21일) 열리는 프리스케이팅 순서를 정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모였습니다. 이어 쇼트프로그램 1, 2, 3위 선수들의 인터뷰가 진행되기에 취재진도 함께 했습니다.

    저 역시 추첨 결과와 상위 3명 선수들의 인터뷰를 듣고 보기 위해 회견장으로 왔습니다. 제가 앉은 곳은 회견장 앞줄 세 번째 가운데 자리. 한 줄 건너 뛰어 맨 앞자리에는 김연아가 후배 김해진(과천고), 박소연(17, 신목고)와 함께 앉아 추첨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추첨이 시작될 즈음 회견장에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가 들어왔습니다. 마지막 5조에서 경기를 펼쳐 각종 인터뷰를 마치고 오느라 다소 늦은 것이었습니다. 이미 대부분이 자리가 꽉 차 리프니츠카야는 몇 번 두리번거리더니 바로 제 앞자리, 김연아의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당초 리프니츠카야에 대한 제 인상은 당돌함이었습니다. 최근 김연아에 대해 "아직 경기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만나보고 싶다"는 당찬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던 리프니츠카야였습니다. 올림픽 출전을 코앞에 두고도 소치가 아닌 모스크바에 머물며 훈련을 했던 리프니츠카야. 쇼트프로그램 출전 순서 추첨도 빠진 채 경기 불과 이틀 전에야 결전지에 입성할 정도로 여유를 보였습니다.

    쇼트프로그램 마친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사진=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이날 리프니츠카야의 어깨는 어딘지 모르게 축 처져 있었습니다. 바로 뒤에서 처음으로 본 리프니츠카야는 160cm가 채 돼 보이지 않은 작달막한 키에 역시 자그마한 몸집이었습니다. 날카로운 눈매는 여전했지만 예리함이 다소 무뎌진 듯한 눈빛.

    박소연, 김해진 등 양 옆의 후배들과 여유롭게 얘기를 나누는 김연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김연아는 조 추첨에서 가장 마지막 순서인 24번을 뽑은 뒤 "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옆에 있던 김해진은 동갑내기 박소연이 1번을 뽑자 김연아를 번갈아 쳐다 보면서 "대박!"이라며 둘을 짐짓 놀리기도 했습니다. 박소연은 가장 먼저, 김연아는 가장 늦게, 부담이 가는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서로 웃으면서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반면 리프니츠카야는 제 앞에 말없이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이날 리프니츠카야는 쇼트프로그램에서 65.23점을 얻어 5위에 머물렀습니다. 트리플 플립 점프를 뛰고 내려오다 넘어지면서 감점을 받았습니다.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 받은 72.90점에 크게 못 미치는 점수입니다. 실망이 적잖을 수밖에 없습니다.

    리프니츠카야는 일단 경기 뒤 인터뷰에서는 호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모른다"면서 리프니츠카야는 "긴장도 안 하고 준비도 잘 했으며 많은 관중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점수가 예상보다 낮지 않아 내일 메달을 위해 싸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추첨식 때는 그 호기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바로 앞에 앉은 여왕의 존재감에 위축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도 편안하게 즐기는 김연아의 모습이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도 났습니다.

    추첨식을 마치고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 1~3위 선수의 기자회견을 위해 단상으로 올라섰습니다. 반면 리프니츠카야는 3위에도 못 들어 추첨식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밖으로 향했습니다. 그 어깨는 더욱 작아보였습니다.

    올림픽 첫 무대의 중압감, 김연아도 그랬을 겁니다. 두 번째 출전인데도 김연아는 경기 전 긴장감으로 몸이 굳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김연아는 '훈련 때 그렇게 잘했는데 시합 때 못할 건 또 뭐 있냐. 내 자신을 믿고 몸에 맡기자'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74.9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어냈습니다.

    그러나 리프니츠카야는 트리플 플립 점프를 뛰면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16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무대. 결국 리프니츠카야는 회견 단상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조국 러시아의 기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작은 어깨였습니다.

    쇼트 프로그램 마친 아사다 마오. (사진=방송화면 캡처)

     

    p.s-리프니츠카야가 회견장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일본 아사다 마오도 입장했습니다. 아사다 역시 국내외 언론들의 질문을 받은 뒤 한참 만에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아사다 역시 힘이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이날 전체 16위에 머문 아사다 역시 "부진 원인을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사다 역시 두리번거리다 제 옆자리를 발견하고 앉으려 하다가 옆에 있던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자리를 비켜주자 그 곁에 앉았습니다. 아사다는 어두운 얼굴에 다소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추첨식 뒤 자리를 빠져나갔습니다. 이들이 나가는 동안 인터뷰 좌석에는 당당히 국내외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당당한 김연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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