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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주소, 기득권에 발목 잡히다



생활경제

    새주소, 기득권에 발목 잡히다

    도로명주소 따라가보니…

    도로명주소 체계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쓰는 이들도 많지 않다. 과연 도로명주소는 애물단지일까. 하지만 도로명주소는 일반인들이 쓰기엔 의외로 간단하고 쉽다. 그런데도 불편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왜일까. 도로명주소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다.

    주소체계 변경으로 떠들썩하다. 일반 국민도, 우체국과 택배업체 직원도 헷갈린다는 게 새 주소체계에 대한 평가다. 오랫동안 써왔던 주소를 버리고 생소한 새 주소를 쓰라니 당연한 반응이다. 전화번호 국번과 지역번호가 변경됐을 때 자신의 집 전화번호마저 헷갈린 사람들이 많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중요한 점은 '도로명주소'가 '지번주소'에 비해 사용하기 편리하느냐는 거다. 그렇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도로명주소를 안착시킬 필요가 있다. 반대로 불편하다면 시간이 걸리기 전에 폐기하는 게 낫다. 어떨까. 서울시 중구청 직원의 도움을 받아 도로명주소를 직접 찾아다녀 봤다. 도로명주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교육이 필요했다. 도로명주소 표지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제대로 주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도로명주소는 도로와 건물을 기준으로 나뉜다.

    ◈ 도로명주소 알고 보면 쉬워

    도로를 기준으로 왼쪽은 홀수(①-개념도 참조), 오른쪽은 짝수(②)다. 번호의 시작은 현대의 모든 활자가 왼쪽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해 왼쪽부터 시작된다(③). 따라서 왼쪽부터 1번, 오른쪽이 2번, 다음 건물의 왼쪽이 3번, 오른쪽이 4번 이런 식으로 도로의 끝지점까지 번호가 연결돼 있다(④).

    (자료=더스쿠프 그래픽 제공)

     

    그 번호가 해당되는 자리에 건물이 없으면 다음 번호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4번이어야 할 자리에 건물이 없으면 6번이 된다(⑤). 이런 체계는 이점을 갖고 있다. 이전 시스템 하에선 새 건물이 들어서면 지번이 크게 바뀌는 것과 달리 도로명주소는 도로와 건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도로가 바뀌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

    도로명주소는 기본적으로 '세종로'나 '충무로'처럼 '로(路)'에 해당하는 도로는 20m 간격(⑥), '진달래길'이나 '달맞이길'과 같은 '길'은 10m 간격(⑦)으로 번호를 매겼다. '길'은 '로'에서 갈라진 길이어서 간격이 좁은 것이다. 물론 '길'이라도 지역에 따라 20m 간격인 곳도 있다. 낮은 번호일수록 도로의 출발지점과 가깝다는 의미고, 높은 번호일수록 도로의 끝지점과 가깝다는 의미다(⑧).

    종합하면 대부분의 '로'에서 왼쪽 첫번째 건물이 1번을 달고 있다면 20m를 더 가면 3번 건물이 나온다. 그리고 각 번호 중간에 위치한 건물은 '1-1' 혹은 '3-1'이 된다. 1번과 3번에도 해당되지 않는 중간에 위치해 있으면 출입문이 가까운 쪽을 기준으로 번호를 정한다.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할 경우에도 건물 출입문이 나 있는 쪽을 기준으로 도로명을 붙였다.

    이런 사전 정보를 습득한 상태에서 구도심인 충무로 지역을 도로명주소로 찾아가 봤다. 결과는 의외였다. 많은 언론이 비판하는 것과 달리 도로명주소 체계만 알면 아주 쉽게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가령 '퇴계로 49길 17-1'이라는 주소라면 퇴계로에 들어선 다음 홀수 도로명 표지판을 찾는다. 51길에 있다면 거슬러 가면 되고, 47길에 있다면 더 올라간다. 그렇게 49길에 들어선 후 왼쪽으로 붙어 대략 80m를 들어가면 해당 건물이 나온다. 주소를 알고 있어도 찾아가는 방법을 몰라 물어물어 가야 했던 지번 주소와는 달리 아주 쉽다.

    (자료=더스쿠프 그래픽 제공)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 생긴 생소한 도로명들이 너무 많다. 도로명 정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평행하는 골목과 골목 사이에 인접한 도로가 없는 집들은 어떤 도로명주소를 붙인 것인지 기준이 모호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개선하면 될 문제들이다.

    이처럼 이해하기 쉬운 도로명주소가 지금처럼 찬밥신세를 받는 이유는 뭘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일선 공무원들의 책임이 크다. 중구의 한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이렇게 귀띔했다. "기존의 공무원들은 지번 주소에 익숙해져 있어 새 주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공부해야 하니까 귀찮은 거다. 반면 신입 공무원들은 오히려 새 주소가 쉽다며 빨리 적응하는 편이다" 공무원도 제대로 쓰지 않는 도로명주소를 누가 쓰려 하겠냐는 얘기다. 홍보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도로명주소가 1996년 7월부터 무려 17년간 점차적으로 시행돼 왔음에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 안전행정부가 4000억원을 투자해 제작·배포한 도로명주소 검색 애플리케이션 '주소찾아'가 실패해 새 주소에 대한 거부감만 더 키웠다. 1000만명도 아니고 고작 5만명의 접속자가 몰렸을 뿐인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과정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 일선 공무원들 도로명주소 안 써

    도로명주소가 쉽게 정착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주소에 민감한 우체국이나 택배회사에서도 도로명주소를 외면하고 있어서다. 국내 모 택배회사 관계자는 "택배회사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바뀐 주소가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 고객의 물건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며 바뀐 주소에 적응할 틈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체국의 사정도 택배회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택배회사와 우체국의 주장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면적 중심'으로 물류량을 배정받아 배달하는 입장에선 '선 중심'의 도로명주소가 갑갑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충무로역 부근만 하더라도 이전엔 필동이라고 된 물류만 분류하면 됐지만, 도로명주소에 따르면 퇴계로·충무로·필동로·창경궁로 등에 붙은 숫자를 보며 일일이 분류해야 한다. 택배업계가 지번 주소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료=더스쿠프 그래픽 제공)

     

    문제는 도로명주소를 완전히 이해한 후 효용성을 따져도 늦지 않지만 대부분의 택배업체는 별도의 교육마저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도로명주소를 지번주소로 변경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도로명주소와 지번주소를 병기하는 게 전부다. 당연히 일선 택배기사는 도로명주소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지번주소만 보고 업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택배기사들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지번주소를 물어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택배회사 입장에선 도로명주소가 비용만 늘리는 정책인 셈이다.

    도로명주소에 얽힌 이해관계는 이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도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의 대치동, 청담동 등에선 도로명주소로 '이름 프리미엄'이 사라질 거라며 반발하는 기득권층도 적지 않다. 하지만 도로명주소가 기존 지번주소를 대체한다고 해서 지번주소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주소를 제외한 토지대장이나 건축물대장 등 건물이나 토지소재지를 나타내는 곳에는 지번을 쓴다. 대치동과 청담동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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