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개봉 3주만에 400만 관객고지를 넘어서면서 연초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왕의 남자''와 동반 인기 상승으로 예매율 1위를 기록중인 원작 연극''''이''(爾)에는 두 작품 모두 출연중인 배우가 있다.
연극에서는 영화에서 감우성이 연기한 장생역할을 맡고 있고 영화에서는 팔복이로 등장하는 이승훈(38)이다. 이러한 더블 캐스팅에는 영화의 칠득, 연극의 내관으로 나온 정석용도 있지만 이승훈은 연극 ''이''가 초연된 2000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줄곧 변함없이 장생역할을 맡아 공연중이다.
한몸에서 나온 자식같은 작품 ''왕의 남자''로 오히려 어머니로 일컬어지는 연극 ''이''의 스태프는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실감하고 있다. 13일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용극장''에서 연습에 한창인 이승훈을 만났다.
''왕의 남자'' 공길 오디션때 본 이준기, "참 고왔다"이승훈은 이준익 감독이 작품 구상을 위해 한참 이런저런 연극을 보러다니다가 캐스팅한 경우다. 연극 ''이'' 뿐만아니라 봉산탈춤 정기공연, 미롱 등의 작품을 볼때마다 "가는데마다 자네가 있더라"며 결국 영화속 남사당패의 팔복이로 낙점됐다. 이 감독은 이승훈에게 한가지 중요한 부탁을 했다. 연극이나 영화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중성적 이미지 ''공길''에 대한 오디션할때 장생으로서 지원자들의 상대역을 맡아 달라는 것.
이승훈은 여기서 이준기를 만났다. 수백대1의 경쟁률속에 결국 최종에 오른 다섯명. 이승훈은 "하나같이 다 고운 얼굴에 하얀 고운 피부를 가진 꽃미남들이었다"면서 "이준기도 참 고왔던 것이 생각난다"고 떠올렸다. 이승훈은 이준기와 함께 대사와 몸짓연습을 맞춰보고 오디션을 도왔는데 다른 지원자보다 택견, 아크로바틱 등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떨면서도 대사와 동작까지 준비해온 것을 풀어놓는 것을 보고 함께 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무대에 나서는 첫 장면에서 봉돌리기 시작하면 객석이 소곤소곤 "확실히 달라진 관객 반응을 느껴요. 역시 영화라는 것이 파급력이 세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지요. 제가 무대에 처음으로 나서는 장면은 봉돌리기인데 무대로 나서면 객석에서 벌써 ''저 사람이 영화에 나온 그사람이야''하고 소곤대는 모습과 소리가 들립니다. 그럼 저도 슬쩍 웃음이 나오기도 해요."
이승훈
사실 연극 ''이''는 연극계에서도 작품성과 내용면에서 최고수준의 평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동안 연우무대나 정동극장에서 공연할때도 객석 점유율이 높았고 박수도 많이 받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로 인해 이렇게 열띤 호응을 얻어내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생각해보세요. 연극 벌써 20여년 해왔지만 800여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는 일은 그리 흔한일이 아니거든요." 2003년에 정동극장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고 커튼 콜을 할때 객석에서 한꺼번에 종이학을 날려준 이후 이런 짜릿한 기분은 처음이라고 한다.
광대에게는 광대의 길이 있는 있는거야!일반대중에게는 영화가 연극보다 훨씬 더 친숙한 장르지만 연극이 주는 꽉차는 느낌과 매력은 또 다른 울림이 있다. 그리고 그 울림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연극을 먼저 본 사람들은 연산과 공길, 장생, 녹수 이 네명의 각기다른 캐릭터가 치열하게 싸우고 주고받는 극적 긴장감에 몰입된다. 영화에서는 연극무대가 줄수 없는 시 공간을 넘나드는 표현력과 볼거리가 압권이다.
"영화에서는 웃지 않는 연산의 웃음보를 터뜨린 ''윗입으로 줄까 아랫입으로 줄까''같은 대사를 많이들 기억하시는 것 같은데 연극에서는 장생이 공길에게 연산과 야합하는데 대해 일침을 놓는 ''광대에게는 광대의 길이 있는거야''같은 대사를 많이 얘기하시곤 합니다." 관객들은 자신의 정도를 지켜나가는 것이 삶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자 우리에게 장인정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 말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승훈은 연극의 장생이 에너지가 넘치고 광대로서의 자부심이 충만한 남성적 이미지라면 감우성이 연기한 영화의 장생은 좀더 인간적이고 섬세한 면이 많다고 촌평한다. "감우성 씨는 대단한 배우라는 걸 실감했어요. 연기에 대한 몰입과 욕심이 굉장했어요. 제게 종종 자문을 구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영화속에서의 장생을 스스로 창조해내고 설정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제가 도울 필요도 없더군요, 그리고 조용히 혼자 하는 걸 좋아해서 스태프들과 모두 낚시대를 사서 촬영이 없을 때는 낚시를 하러 가곤 했었죠"
연극에서는 당당한 주연급이었지만 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것에 섭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영화와 연극이 다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 해보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즐겁게 일했다"고 말했다.
2010년에 10주년 공연
2000년 초연때부터 줄곧 장생을 연기해온 이승훈도 스스로에 화를 낼때가 있다고. "어제(12일)였어요. 매번 똑같이 옷 소매를 걷고 연기하는데 어제는 자꾸 흘러내리는 거에요. 5년여간을 한결같이 걷고 잘 해왔는데 어제 같이 작지만 어쩌구니 없는 제 실수에 스스로 화가 막 나더라구요."
이승훈
이제는 제법 공연 끝나고 싸인 해달라는 팬들이 부쩍늘었다는 이승훈은 13번 연극을 봤다는 한 관객이 가장 인상적이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연극 ''이''와 ''왕의 남자''는 부부같다고 생각해요. 아버지 같은 영화가 밖에 나가서 왕성하게 활동해줌으로써 연극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요. 혹자는 연극이 아버지요 영화가 아들이라고 하시기도 하구요."
이제는 지방에서도 공연해달라는 반응이 쇄도해 30일 연장공연까지 마치면 지방대도시 순회공연도 계획중이란다. "우리끼리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하고 10주년이 되는 2010년에 이멤버 그대로 다시 한번 공연하는 것도 의미있겠다고 얘기한적있어요. 지금의 뜨거운 열기가 그때는 또 어떻게 반응할지 참 궁금하네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