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여섯. 나에겐 꿈이 없다.
간혹 어른들이 묻는다.
"나중에 커서 뭐 되고 싶니?"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연예인도 좋은데 저는 얼굴도 몸매도 그저 그렇고 끼가 없어서 안 될 것 같고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도 좋은데 공부를 못해서 안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너도나도 다 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 같은 건 별로 하고 싶지 않고……. 작은 카페 같은 거 내면 어떨까 싶어요."
물론 대답은 그때그때 바뀐다. 임용 고시 봐서 교사를 하고 싶기도 하고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동물 사육사나 호텔 주방장도 좋겠다. 그날그날의 기분과 관심사에 따라 늘 바뀐다. 하지만 딱 이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성적 신경 쓰고 집에서는 빈둥거리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는 후딱 지나간다. 어떤 때는 단 한 번도 웃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때도 많다.
어른들은 말한다. 꿈 많은 청소년기라고. 그런가? 나는 꿈이 없는데? 다른 애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간혹 텔레비전에 어릴 때부터 발레나 피아노, 피겨 스케이팅 같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꿈을 키워 성공하는 애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거야 매우 특별한 경우라는 것쯤, 나도 알고 있다. 나처럼 평범한 애들은 그저 공부나 하는 게 최선일 거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학 간판이기 때문이다. 취직을 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단 하나의 기준만이 존재한다. 그러니 꿈 따위, 꾼들 무슨 소용인가. 애초에 달성하지 못할 거라면 조용히 시키는 대로 공부나 하는 게 낫다. 나는 꿈꾸는 법을 잊었다.
― 「나는 즐겁다」 중에서 (『나는 즐겁다』)
저의 어릴 적 꿈은 '위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위인전집을 사 주신 다음부터 말이에요. 에디슨 편을 읽고 나선 위대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파브르 편을 읽은 다음엔 곤충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나이팅게일 편을 읽으며 간호사의 꿈을 키우던 때 네 살 어린 제 남동생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고, 성당에 다니던 옆집 미정이의 꿈은 '요한바오로 3세'였어요. 그렇게 우리 모두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들으시면 너무 허황되다고 생각하실 그런 꿈을 말이죠.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서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을 알아맞히는 문제가 나오는 걸 유심히 보다 깜짝 놀랐어요. 순위가 발표되었을 때 저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는 바로 '공무원'이었어요. 저는 어린이들에게 묻고 싶었어요. 왜 공무원이 되고 싶은가요? 공무원이 되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물론 공무원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귀중한 직업이지만 어린이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꿈으로는 너무 현실적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우리들의 꿈 그릇은 엄청나게 클 거라고 생각해요. 공무원 대신 조금 더 황당한 꿈, 웃긴 꿈,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 허무맹랑한 꿈은 분명 아주 작은 씨앗이 되어 시간이 흘렀을 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찬란한 나무로 자라날 거니까요.
하지만 우리 어린이들이 그러한 현실적인 꿈을 꾸게 된 건 어쩌면 우리 어른들 탓인지도 몰라요. 넓고 높고 큰 포부 대신 현실을 살아 내기 위한 직업을 우리는 아이들의 꿈으로 강요했는지 모릅니다. 신 나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이제는, 좀 더 웃긴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이연 올림
<김이연>
1977년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공부보다는 밴드 활동과 각종 알바로 바쁘게 지냈다. 취미는 작사와 작곡, 특기는 클래식 음악에 맞추어 춤추기. 좌우명은 '근근하게 살자'이며, 언젠가는 365일 동안 세계 일주를 하는 게 꿈이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경쾌하게 풀어낸 『오후 3시 베이커리』로 제5회 건국대학교 창작동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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