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민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던 지강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홀리데이(감독 양윤호)''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강헌은 ''88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감흥에 빠져있던 사회에 탈주와 인질극으로 파문을 던진 인물.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된다"는 외침으로 긴 울림을 남겼고 20여년이 흐른 뒤 영화로도 제작됐다.
극 중 지강헌을 그리는 지강혁 역을 이성재가, 악랄한 경찰관 김안석은 최민수가 맡았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사건의 빌미까지 제공하는 인물 이주환은 신예 설성민(23)이 차지했다.
아직 영화팬에게 설성민이란 이름은 낯설다. 하지만 연극계에서는 제법 익숙하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 1998년 뮤지컬 ''명성황후'' 오디션에 응모해 세자 역할로 뽑힌 후 지금까지 연극 20여편에 출연해 왔다. 중·고등학생 연극배우가 드문 대학로에서 희소성과 실력을 함께 인정받으며 성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첫 스크린 도전에 나선 것.
◈고교 재학 중 20여편의 연극 출연한 실력파이주환은 지강혁을 친형처럼 따르는 빈민촌 생활을 그린 극 초반 주로 등장한다. 지경혁과 나누는 뜨거운 우애에도 불구하고 빈민촌을 철거하기 위해 나타난 김안석이 쏜 총에 결국 죽음을 맞는 비운의 인물이다.
설성민의 표현에 의하면 "사회에 찌들지 않는 사람"인데다 "순수하고 정의감 있는 역할"이라고.
첫 영화 출연에서 이주환은 소아마비 역할을 소화했다. 이를 위해 설성민은 양윤호 감독과 한 달 가까이 재활병동을 찾았다.
"보조기를 차면 저도 모르게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분들의 걸음걸이가 나와요. 카메라 앞에서는 앞 발 뒷 발 계산해서 걸었는데 실제 장애인들을 관찰해 보니 보조기를 찬 다리가 비대해 지더라구요. 움직이지 않아 그런 것 같아요."
관찰을 실천에 옮기며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설성민은 오른쪽 다리에 몇 겹의 가죽을 덧댔다. 그 사이에 솜까지 넣었다. 결국 빗속에서 일주일간 촬영한 뒤 그는 심각한 피부 염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설성민
◈데뷔작에서 이성재, 최민수와 호흡 맞춘 행운아 영화 데뷔작에서 연기파 배우 이성재, 최민수와 호흡을 맞춘 설성민은 행운아다.
"제가 죽는 장면이 이성재, 최민수 선배가 대치하는 장면이에요. 비가 내리고 인질극을 벌이는데 제가 최민수 선배가 쏜 총에 이마를 맞고 죽어요. ''홀리데이''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해요."
예고편을 통해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이 장면은 굳이 그의 설명이 없더라도 무척 인상적이다. 막다름에 눈물 짖는 설성민의 표정은 이 영화가 얼마나 인간애에 의존하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지강헌은 일면 미화돼 왔다. 이는 시대를 날카롭게 꼬집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 때문. 하지만 지강헌은 탈주와 인질극을 벌인 범죄자임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인질범이 된 지강헌이 아닌, 인질범이 되기까지의 지강헌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당연히 ''미화'' 논쟁이 벌어질만 하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보는 지강헌은 어떤 인물일까.
"촬영 전 지강헌에 대한 뉴스 기사를 많이 찾아보면서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영화니까 어쩔 수 없이 극화된 부분이 있죠. 마음 속 정의감이 되려 악으로 표현되는 인물이죠."
설성민은 "영화인 까닭에 인간적인 면이 그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형제애''에서 범행의 동기를 찾는 영화의 출발 역시 ''홀리데이''의 색깔을 규정짓는다. 하지만 실존인물을 미화했든 그래서 극이 휴머니즘을 표방하든 설성민에게 중요한 것은 굵직한 영화에서 눈에 띄는 역할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