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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흔적 담긴 '네거티브 문화재', 철거가 일제 청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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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정책

    일제 흔적 담긴 '네거티브 문화재', 철거가 일제 청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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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재발견] ‘조선총독부’와 ‘구 서울시청’을 통해 본 “네거티브 문화재” 논란과 의미

    조선총독부(사진=서울시 제공)

     

    일제 흔적 담긴 네거티브 문화재, 철거가 일제 청산일까?
    [서울의 재발견] ‘조선총독부’와 ‘구 서울시청’을 통해 본 “네거티브 문화재” 논란과 의미

    우리 문화재에는 일제강점의 흔적이 담긴 역사 유산들이 적지 있다. 아픈 역사의 흔적, 바로 “네거티브 문화재”다. 우리나라 20세기 전반의 근대 문화재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일제의 유산 즉 “네거티브 문화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픈 역사도 역사이니만큼, 부정하고 지우려하기보다 기억하고 교훈 삼는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는 입장과 ‘치욕스러운 일제의 흔적들을 없애는 것이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현실이다.

    광복절과 국치일이 있는 8월, “네거티브 문화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토론과 합의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에 “네거티브 문화재” 철거와 보존 논쟁이 촉발된 계기 그리고 이 논쟁의 중요 전환점이 된 사건을 차례로 짚어보자.

    조선총독부 건물 잔재(사진=독립기념관 제공)

     

    ■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논란 – 철거 대세론을 향해

    ‘네거티브 문화재’ 논란의 본격적인 시작은 1995년 광복절,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일환으로 이뤄진 조선총독부 건물 폭파 철거였다.

    당시 여론은,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을 훼손하고 들어선 일제 침략의 최고 기관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반대 여론도 없지 않았다. 반대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지닌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는 주장이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일제 유산이기는 하지만 당대에는 세계적인 걸작 건축물로 문화유산에 속할 뿐 아니라 총독부보다 더 긴 세월 동안 한국의 중앙청 건물로 사용된 역사적인 건물이라는 것이었다. 둘째는, 아픈 역사를 외면하지 말고 남겨서 잊어서는 안 될 후대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셋째는, 김영삼 정부의 조선총독부 폭파가 진정한 친일청산이라는 근본 작업은 외면한 채 이미지와 이벤트로 민족감정만 배설시키는 국면전환용 정치적 쇼라는 비판이었다. 그밖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서둘러 폭파하기보다 박물관을 새로 지어 안전하게 문화재 유물들을 옮긴 후에 철거를 진행하자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갖고 있는 일제 침략의 대표적 상징성뿐 아니라 총독부 건축으로 인해 훼손된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복원이라는 명분은 당시 사회 여론을 압도했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폭파 철거 모습이 전 국민 앞에 생중계된 것은 18년전 오늘 광복절이었다.

    경복궁을 복원하려면 조선총독부의 철거는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면에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는 단순한 네거티브 문화재의 철거를 넘어, 포지티브 문화재의 대표격인 조선의 법궁 복원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단순한 네거티브 문화재의 흔적 지우기식 철거와는 다른, 좀 더 적극적 문화유산 복원의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단, 조선총독부를 폭파 해체하기보다 이전 보존해야 하지 않았나 그리고 총독부 철거가 상징적 이벤트를 넘어서는 실제적인 친일 청산 작업으로 이어졌나 하는 반성과 비판은 총독부 철거와 경복궁 복원의 당위성과 별개로 꼭 짚어져야 할 부분이었다.

    총독부 철거 후 국면은 네거티브 문화재 전반에 대한 부정으로 전개됐다. 일제강점기 유산으로서의 네거티브 문화재들이 대부분 철거나 파괴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청산’을 이유로 의도적으로 네거티브 문화재를 훼손하는 민간 부문 사례들도 급증했을 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일제 잔재라는 이유 혹은 핑계로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행렬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일제 군국주의 문화의 잔재를 청산하는 근본적인 작업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철거된 구 서울시청(사진=서울시 제공)

     

    ■ 구 서울시청(일제강점기 경성부청) 건물 철거 논란 – 보존 여론의 형성

    네거티브 문화재 논란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구 서울시청 건물 철거 과정이었다.

    구 서울시청 본관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경성부청로 개청된 이래 2008년 신청사 건립 과정에서 서소문 청사로 이전하기까지 82년간 서울 행정의 중심이었다. 일제 잔재이기에 철거해야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됐었지만, 서울 근현대사를 지켜본 역사적 산 증인으로서 2003년 근대건축유산 문화재로 등록된 건물이었다.

    이 건물의 철거를 두고 신청사 건축을 추진하는 서울시와 구 서울시청의 완전 철거를 반대하는 문화재청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문화재청 입장은 서울시청 건물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분만 보존하면서 신축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자는 것이었고, 서울시는 문화재로서의 가치 미흡, 안전도 문제, 일제의 잔재 등을 이유로 전면 철거를 강행하려 했다. 서울시가 구 서울시청의 기습 철거를 단행했다가 여론의 반발로 인해 전면 철거를 멈추고 문화재청에 유감을 표한 것도 이 때였다.

    이런 논란 속에서 그해 말인 2008년 1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일제잔재 건축물 서울시청, 존속해야 하는가”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과 김을동 의원, 김승일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연구원과 신용하 교수 등은 이 건물이 일제의 잔재로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면서 철거 및 등록문화재 지정취소를 주장했고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건축사적 의미를 감안해 보존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 토론회를 주최한 김을동 의원은 “식민행정을 맡았던 건물을 대한민국 수도 중심지에 두고 보존하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크다”먼서 “서울시청사를 철거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정신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위원은 "지난 60년간 서울시청에서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보존하자는 것이고 조선총독부 건물과 달리 식민지를 상징하거나 위압적인 건물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서울시의 강행 방침과 국회 일부 여당 의원들의 강력한 주장 속에서도, 여론은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줬다. 근본적 친일청산에 대한 진정성 없는 상징적인 구호보다는 아픈 역사를 직면하고 진지하게 반성하는 자세가 우리 역사에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시민들이 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등록문화재인 서울시청 옛 본관 건물에 건설기계를 동원해서 훼손한 것에 대해 문화재청에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시는 또 철거를 주장했던 옛 시청 건물의 외벽을 원형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역의 새 驛舍를 만들면서 일제가 만든 경성역 즉 서울역 舊역사는 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비슷한 시기, 일제강점기 일본인 부산철도청장의 관사로 쓰이던 일제 네거티브 유산인 부산 동구의 ‘정란각’도 건물의 역사성과 독특한 건축 양식을 인정받아 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의 배경이 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 그 유산의 문화재적 가치는 나쁜 역사이든 좋은 역사이든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원형 복구 작업을 거쳐 ‘개항기 수탈사 전시관’ 등으로 활용되는 이 네거티브 문화재 역시, 나쁜 역사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고 교훈으로 인식하며 유산으로 남기려는 새로운 사회 여론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 네거티브 문화재 수용을 위한 사회적 조건 – 최근 논란이 된 ‘백선엽 군복’의 교훈

    파시즘의 폐해를 경험한 유럽은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유대인 강제 수용소나 정치범 수용소 등을 보존해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억을 잃으면 역사의 잘못이 반복될 수 있다는 교훈 때문이다.

    물론 상황은 다르다. 독일은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고 평화를 지키자는 의미에서 역사적 범죄를 기억하는 장소를 곳곳에 만들었다. 인간의 존엄을 해친 모든 비윤리적이고 반문화적 행위에 대한 기억을 교훈으로 남김으로써, 시민들이 일상에서 성찰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독일과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독일과 같은 성숙한 역사적 반성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일제의 식민지 피해를 경험한 우리와 독일 나치의 폐해를 겪은 유럽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렇다고 광복 70주년을 향해 가는 지금에까지 근대건물유산이라는 표면적이고 외면적인 흔적을 지우면서 이것을 일제 청산이라고 여기려는 시도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린 미숙아의 그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것은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거세해 그 역사에 책임 있는 이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 행위이자 역사왜곡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네거티브 문화재의 사회적 수용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네거티브 문화재가 수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 네거티브 문화재가 갖는 부정적 잔재로서의 성격, 그리고 그것이 품은 역사적 사실과 의미 그리고 교훈이 시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지는 것이다. 그것이 핵심 전제다. 네거티브 문화재가 마치 네거티브가 아닌 포지티브 문화재인양 선전된다면, 반성과 교훈이 아닌 칭송과 모범의 의미로 둔갑한다면, 그래서 그 문화재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네거티브 문화재는 결코 수용될 수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백선엽 군복’의 문화재 등록 문제도 마찬가지다. 백선엽은 6.25 당시 전과를 세우고 1952년 육군참모총장에까지 올랐지만, 1943년부터 해방 때까지 만주국군 산하 간도특설대의 장교로 복무하며 항일 투쟁을 벌이던 조선인과 중국 팔로군을 토벌했던 전력이 밝혀져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오른 인물이다.

    문화재청이 최근 그의 군복을 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예고하면서 논란은 거세졌다. 문화재청은 그의 군복이 현대 군사복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여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일제로부터 남작 지위를 받아 식민통치에 협력한 민철훈의 대례복과 윤웅렬 일가의 유물, 항일 독립운동가 재판에 참여한 민복기 전 대법원장의 법복도 새로 지정되는 문화재 등록 예고에 포함시켰다. ‘순수하게 유물로서 그 가치를 본 것’이라는 문화재청의 주장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독립투사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친일 인사의 유물이라고 문화재에 등록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국방부가 ‘백선엽 한미동맹상’ 제정을 강행하는 등 현 정부 들어 백선엽을 전쟁 영웅으로 기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데에 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있는 인물을 정부가 정치적으로 칭송하며 기념하는 상황이라면, ‘백선엽 군복’이라는 문화재가 속한 역사적 사실과 맥락 나악 그 의미도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없다. 강한 반발 속에 문화재청은 백선엽 군복의 근대문화재 등록을 일단 보류했다. 우리 사회에서 네거티브 문화재 수용이 힘든 이유는 바로 이런 데에 있다.

    거기에 더해, 일부 시민들의 과거와 같은 시각도 네거티브 문화재 수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아파트 10단지 내 근린공원에 있는 일본식 단층 목조 건물 2개동. 1930년대 일본군 경성사단이 위관급 장교를 위해 지은 관사(숙소)다. 문화재청은 2006년에 “이 관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SH공사는 예산 11억 원을 들여 2010년 9월 복원 공사를 완료했고, 올 초 이 건물을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했다. 일본군의 대륙 침략을 보여주는 전시실과 주민 편의시설 등으로 활용할 계획도 함께 제시됐다.

    그러나 일본군 관사 복원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역 주민들 사이에 반발 여론이 생겨났다. 자랑스럽지 않은 역사의 흔적을 문화재로 등록해 관리 보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2010년 10월 일본군 관사 맞은편에 문을 연 일본인 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한 우월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급기야 문화재청은 지자체가 문화재 신청을 하지 않는다며 아예 등록 절차를 포기했다. 지금은 사람들도 잘 모르는 비밀스런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우리 근대사의 트라우마가 남긴 ‘부끄러운 역사 부정하기’의 힘이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일부러 남겨놓는 유대인들과 우리와 아직 이렇게 거리가 멀다.

    물론, 자랑스러운 문화유산뿐 아니라 치욕스러운 역사유산도 역사적 교훈을 주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시민의 인식의 전환도 이제 일어나고 있다.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는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서대문형무소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등이 대표적인 예다.

    ‘네거티브 문화재’의 수용 정도는 아픈 역사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거기서 가치와 교훈을 얻어내는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지만, 이제는 거기에 머물거나 부정하기보다, 직면해서 날선 교훈과 경고로 삼아 극복의 길로 나아갈 때다. 지금도 서울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숨어있거나 헐려가는 ‘네거티브 문화재’들에 눈을 돌려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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