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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시스템 조악한 실체 들춰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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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시스템 조악한 실체 들춰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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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축소판 기차 억압받는 계급 반란 긴박하게 그려…"우리가 기차에 사는 생존자일지도"

    사진=이명진 기자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73년부터 기원전 71년까지 노예 계급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 반란군의 우두머리로서 노예제에 반대해 계급 투쟁을 벌여 한때 로마 남부 전역을 장악하기도 했지만, 결국 진압돼 처참하게 처형 당한 그의 삶이 주는 여운은 강렬하다.
     
    당시 "너희 가운데 스파르타쿠스가 누구냐"는 로마 장군 크라수스의 물음에 진압된 반란군이 "내가 스파르타쿠스요"라며 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일화는, 그 존재가 이미 개인을 넘어 억압받는 계급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그만큼 그가 살던 때와 지금의 시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43) 감독은 자신의 다섯 번째 장편 영화 '설국열차'도 스파르타쿠스 전설의 변주곡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기차 속 스파르타쿠스의 집단 반란이라는 역동성을 살린 것"이다.
     
    "프랑스 작가가 그린 원작 만화의 구성은 영화에는 맞지 않았어요. 남자 주인공 한 명이 기차의 뒤에서부터 앞으로 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일들을 잔잔하게 알려 주는 식인데 사색적인 철학자가 말하는 듯해요. 영화로 만들려면 긴박한 구성이 필요했죠. 반란군이 앞으로 치고 나갈 때의 격렬한 쾌감 같은 것이 중요했어요. 이야기는 제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죠. (웃음)"
     
    새로운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기다란 열차에 타 있고, 그 안에서 계급별로 나뉜 사람들이 서로 싸운다는 원작 만화의 설정에 대해 봉 감독은 "위대한 발상"이라고 치켜세웠다.
     
    "만화 영화 '은하철도 999'를 보고 자란 세대는 어릴 적부터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에 대한 로망들이 있잖아요. 기차를 다룬 영화도 흔하지 않고요. 설국열차의 원작 만화를 접했을 때 그래서 더 관심이 갔죠. 책을 펼치니 간단한 내용이 아니예요. 노아의 방주처럼 하나의 거대한 사회가 된 기차 안에 생존자들이 타 있는데 서로 싸워요. 기차 밖에는 눈이 내리고 가차 안은 바글바글……. 처음 몇 페이지를 보는데 설정이 무척 강렬했죠."
     
    그는 자신이 홍대 앞 만화 가게에서 설국열차를 발견해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했다.
     
    "설국열차의 영어 제목은 열차가 송곳처럼 눈을 뚫고 나간다는 뜻의 '스노우 피어서(Snow piercer)'입니다. 원래 프랑스어 제목은 '눈꽃을 뚫고서'라는 시적인 뜻이라고 들었어요. 영어 사전에는 없는 단어여서 한국 출판사에서 스노우 피어서라고 지었답니다. 공교롭게도 만화 설국열차가 프랑스와 우리나라에서는 출간됐는데, 영어권에서는 안 나왔데요. 만약 영어로 된 만화가 있었다면 이미 할리우드에서 달려들어 '캐리비안의 해적' 풍의 블록버스터로 만들었을 테니 저한테는 행운이죠, 하하."

    -왜 기차인가.

    "기차는 다양한 상징성을 지녔다. 예전 영화들을 보면 남성의 성기로도 표현되지 않나. 기차가 터널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남녀의 섹스를 나타냈듯이 말이다. 기차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기차 자체가 터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앞으로 돌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격정적인 느낌을 그리고 싶었다. 기차는 거대한 관이다. 우회로가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기차의 핸디캡이자 매력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마치 복도에서 영화를 찍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복도하고 다르게 움직이잖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실제로 촬영이 진행된 체코의 바란도프 스튜디오에는 100m 길이의 복도가 있었는데, 세트가 만들어지기 전에 거기서 사람들과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했다. (웃음)"

    사진=이명진 기자

     

    -이어 붙이면 500m짜리 기차 세트가 압권이다.

    "극 초반 반란군이 꼬리칸에서 감옥칸까지 한번에 통과하는 장면을 찍으려면 최소 4칸은 연결해야 했다. 제작비 4000만 달러(약 450억 원)를 들였는데 예산 대비 만족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제작비가 1, 2억 달러였으면 기차 칸도 더 많았을 것이다. 타이트하게 준비한 대로 정확하게 찍었다. 예산 절감을 위해 칸을 더 줄이라는 압박도 있었지만 더 늘리고 싶은 마음에서 받아들일 수 없지 않나. 감독이 예산 탓하면 안된다. (웃음) 극중 수족관 칸은 유리, 물고기 모두 컴퓨터그래픽이다."

    -기차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조명은 어땠나.

    "세트 촬영이 많았던 만큼 조명도 거의 다 통제된 것이다. 실제로 기차를 타 보면 칸에 들어오는 빛이 묘하게 움직이지 않나. 영화 속에서도 조명기를 움직여 이를 극대화한 장면이 있다. 횃불 전투신에서는 변화무쌍한 빛의 움직임을 보여 주기 위해 실제로 횃불을 밝히고 찍었다. 인위적인 조명을 비추면 신을 망칠 것 같았다. '레디'라고 외치면 불을 붙였다. 부상 위험도 있었는데 무사히 마쳤다."

    -설국열차 제작자로 나선 박찬욱 감독과의 관계는.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다. 설국열차와 선배님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 촬영기간이 겹친 탓에 나는 체코, 그분은 미국 뉴멕시코에서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찡얼거리기라도 할라 치면 '내가 더 힘들다'고 하더라. 할리우드 시스템에서는 감독이 힘을 못 쓰지 않나. 촬영 막바지에야 체코로 찾아왔었다. 선배가 캐스팅 아이디어도 많이 제안했다. 열차의 절대자 윌포드 역의 에드 해리스가 그렇다. 원래 이 역은 더스틴 호프만을 염두에 뒀었지만 그가 '다른 일정과 겹쳐 체코까지 갈 수 없다'고 해 무산됐다. 박찬욱 선배가 10명의 윌포드 후보를 줬는데 그중 에드 해리스가 있어서 '아! 이사람이야' 했다."

    -설국열차를 돌직구 같은 영화라고 했는데.
     
    "스토리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했다.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였다. 인간 사회의 모습을 단순화하고 극단화시켜 보여 주는 SF 장르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차 안의 생존자다. 그 틀 안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물론 상징을 읽어내자면 끝이 없을 수도 있다. 구구절절 생각하기 보다는 역동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극중 신격화된 엔진이 인상적이다.
     
    "엔진은 기차를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 옛날 기차로 치자면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은 영국 산업혁명의 대명사 격으로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있게 한 핵심 요소다. 엔진 자체가 한 체제나 시스템을 상징하는 셈이다. 영구동력기관을 만들려는 인류의 시도는 상징적인 욕망이다. 엔진을 신격화한다는 것은 기차가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곧 자본주의가 영원했으면 하는 기득권의 바람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설국열차에서도 엔진의 실체가 드러난다. 일단 관객들에게 엔진의 신비한 느낌은 보여 줘야 했기에 아티스트들이 매달려 엔진칸 디자인만 수백 장을 했다."

    -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읽히는데. 

    "인간은 항상 새로운 체제, 시스템에 대한 갈구가 있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극중 반란의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꼬리칸에서 나와 기차라는 더 큰 시스템을 접하게 된다.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는 다른 차원에서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을 원한다. 그 시스템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도 담았다. 극 말미 윌포드가 커티스를 유혹하는 장면이 그러한데, 그 달콤한 유혹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랐다. 윌포드의 대사도 철저하게 그의 입장에서 쓰려고 했고, 촬영 당시 에드 해리스에게도 '최선을 다해서 관객들에게 윌포드의 논리를 설득시켜 달라'고 주문했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사회학과를 졸업했는데, 학교 다닐 때 영화 동아리에만 매달려서 사회학은 잘 모른다. (웃음) 설국열차는 장르가 SF인 만큼 사회학이나 정치학 개념을 담고 있다. 우리 영화는 직설적이다.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 끼어 와서는 내릴 때 비즈니스 석에 넓게 펼쳐져 있는 신문을 보면서 드는 일상의 기분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압축해서 기차라는 독특한 공간에 녹여낸 것이다."

    -열차가 곧 세상인 시나리오를 쓸 때 어려움은.

    "2010년 1월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두 가지 문제에 부딪히더라. 먼저 영어 이름이었다. 한국 영화할 때는 이름을 지으면서 인물에 정을 붙이고 시작했는데 영어권 이름은 그게 잘 안 되더라. 원작 만화에서 가져온 이름은 하나도 없다. 예전에 봤던 외국 소설, 영화, 드라마를 뒤지며 며칠을 고민했다. 또 다른 어려움은 극중 인종 배분이었다. 결국 너무 고민하지 말고 쉽게 가자고 생각했다. 굳이 인종 배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사는 자와 죽는 자의 운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연스레 갈리더라.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결말도 마음에 든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극중 아이들의 인상이 강렬하다.

    "두 번째 장편 '살인의 추억'(2003년)을 준비하면서 실제 9차 사건의 피해자인 김미정 양의 사진을 갖고 다녔다. 만약 살아 있다면 지금쯤 직장인이 됐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순화됐지만 그 아이는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조사를 위해 사건 현장을 돌아보면서 분노가 끓어 올랐다. 연쇄살인범 문제를 떠나 1980년대라는 시대가 그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에 말이다. 세 번째 사건에서 범인을 체포했다면 네다섯 번째 피해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그 아이를 지켜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 체험이 영화적 패턴이 된 것 같다. 체제나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사회적 약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 정점에는 아이들이 있다."

    -전작 '괴물'(2006년)에 이어 또 다시 송강호 고아성을 내세웠다.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성격이다. 무엇보다 비빌 언덕이 있었으면 했다. 시나리오 완성되기 전에 두 사람을 캐스팅했는데 효과가 컸다. 짧은 영어로 체코의 촬영 현장에서 씨름하다가 저 멀리서 두 사람의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리면 이번 영화도 한국에서 찍었던 전작들의 연장선이라는 편안함이 생기더라. 송강호 선배는 내가 존경하는 세계적인 배우다. 선배가 외국의 명배우들과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내 생각을 확인하고, 외국 배우들에게도 충격을 주고 싶었다."

    -할리우드의 러브콜은.
     
    "제2의 이안 감독이 될 생각도, 설국열차를 발판으로 삼을 마음도 없다. 차기작은 '옥자'라는 한국 영화다. 괴물을 내놓은 뒤 할리우드에서도 시나리오를 받고 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어떠냐는 것이다. 나를 매혹시키고 흥분하게 만드는 이야기 말이다. 창작자로서 연출자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발라드가 대세라고 랩하던 가수가 발라드를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자신의 영화 속편을 만들 생각은 없나.
     
    "나이가 들다 보니 '이 속도로 영화를 찍으면 몇 편이나 만들까?' '제작자와 투자자가 나를 언제까지 원할까?'라는 계산을 하게 되더라. 새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괴물2가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설국열차도 속편이 나왔으면 한다. 하지만 감독은 내가 아닐 것이다. 속편이나 리메이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른 하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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