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낮, 업무차 방문한 중국 마카오의 베네시안 리조트 호텔 안 극장은 무척 붐비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마카오를 찾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이날 열린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터보' 시사회에 몰려든 탓이다.
시사회가 끝난 뒤 기념품을 나눠줄 때의 극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손에 쥔 사람들은 그 안에 든, 달팽이 눈이 달린 플라스틱 머리띠를 꺼내 아들 딸, 또는 연인에게 씌워 주고 대형 캐릭터 패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다양한 민족이 똑같은 머리띠를 한 채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는 묘한 동료애마저 느껴졌다.
'드림웍스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팔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상업적인 이윤 추구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날 밤까지 호텔 곳곳에서 그 기념품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면서 든 생각이다.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자동차 레이스로 전 세계 레이서들이 꿈의 무대로 꼽는 '인디500' 경주장, 수십 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섭게 질주하는 F1 머신들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는 작은 물체가 보인다. 그것은 느림보의 대명사 격인 달팽이로 이름은 테오.
영화 '록키'의 주제가로 유명한 '아이 오브 더 타이거(Eye of the Tiger)'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머신들을 한 대 한 대 제치는 테오를 볼 때는 카타르시스마저 밀려온다.
드림웍스가 여름방학을 겨냥해 내놓은 애니메이션 터보는 레이서를 꿈꾸는 달팽이 테오가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웃음을 견뎌내고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슈렉' '쿵푸팬더' '장화 신은 고양이' 등 드림웍스의 전작들은 초록 괴물, 비만 팬더, 허세 고양이처럼 소위 '루저'로 불릴 법한 존재들을 영웅으로 변신시켜 왔다. 터보 역시 드림웍스의 이러한 애니메이션 철학을 품고 있다.
"작다고 꿈까지 작지는 않다"는 희망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체념 사이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던 테오는 우연히 자동차 만큼 빠른 속도를 얻게 되자, 레이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된다.
그렇게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달려가던 테오에게 형이 묻는다. "내일 아침 갑자기 초능력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할래?" 고민하던 테오가 답한다. "오늘 하루를 알차게 즐겨야겠지."
터보의 이러한 메시지는 느림보 달팽이 테오와 동일시되는, 그의 조력자로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라틴 아메리카계 하층민인 티토를 통해 인간세계로까지 확장된다.
레이싱은 3D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소재임이 분명하다. 시속 300㎞로 달리는 달팽이가 F1 머신들과 자웅을 겨룬다는 무척이나 황당한 내용에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만큼 극중 펼쳐지는 레이싱 장면들은 실사 영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터보 제작진은 완벽한 레이싱을 재현하기 위해 시속 300㎞ 이상으로 달리는 머신을 직접 타 봤다고 한다.
이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데이빗 소렌 감독은 "우리의 이야기가 현실적인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신빙성 있고 현실적인 표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드림웍스의 3D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이다. 극중 캐릭터들이야 특징을 극대화함으로써 현실감을 떨어뜨렸다 쳐도, 배경이 되는 도심 등 일상 속 사물이나 빛의 움직임 등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다. 극중 개릭터들의 입모양도 실제 대사들과 한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다.
캐릭터를 단순화한 대신 선명한 질감과 배경의 사실성에 주력한 셈인데, 드림웍스가 지금까지 자사 작품에 쏟아부은 노력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디즈니와 마찬가지로 드림웍스가 만들어낸 애니메이션들은 그 작품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장난감 인형은 물론 열쇠고리, 티셔츠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마카오에서의 일화는 드림웍스가 전 세계에서 벌이고 있는 문화 사업의 극히 일부일 터다. 코카콜라, 미키마우스로 대표되는 미국의 문화가 아직도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5일 개봉, 상영 시간 96분,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