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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철(24·동국대 문예창작학과 3학년) 씨는 네 번의 사막과 한 번의 남극 마라톤을 완주했다. 2011년 10월 2일 사하라사막에서 시작된 여정은 2012년 12월 3일 남극에서 끝났다. 사하라사막(두 차례), 아타카마사막, 고비사막, 남극을 각각 250m씩 달렸다. 6박7일간 10kg에 달하는 장비(의류, 침낭, 음식)를 짊어지고 매번 모래(빙하)와 사투를 벌였다. 14개월 동안 달린 거리만 1250km. "포장된 느낌이 들어서 영 부담스럽지만" 의도치 않게 최연소(만21세) 세계 4대 마라톤 그랜드슬램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그는 "그랜드슬램 타이틀 보다 사막을 달리면서 스스로를 가두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사막에 가기 전…운동과 담 쌓았던 소년, 사막을 꿈꾸다
사막 마라톤은 언감생심이었다. 스스로 무모한 도전으로 여겼다. 윤 씨는 중2 때 사고로 왼쪽다리 정강이뼈가 부러져 성장판까지 다쳤다. 4개월간 병원신세를 졌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다보니 경도 비만이 됐다. 평발이라는 것도 이때 알았다. 회복은 됐지만 그 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데 대학 새내기였던 2008년 어느 날, 소설 소재를 찾던 중 운명처럼 사막과 조우했다. "제가 운동을 못하니까 소설 속 주인공은 모험을 좋아하는 천방지축 캐릭터를 원했죠. ''익스트림 스포츠''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사막을 달리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어요. 순간 ''아, 이거다'' 싶었죠. ''언젠가 가야 겠다''고 결심했어요."
다음날부터 사막 마라톤 준비에 들어갔다. 매일 아침 남산을 걸으며 체력을 키웠고, 급기야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군대에서 구보를 하며 한층 자신감이 붙었다. 더 큰 문제는 수 천만원에 이르는 경비. 윤 씨는 후원자를 구하러 동분서주 했다. 1백 개가 넘는 기업체를 찾아다녔고, 고민 끝에 부모님 몰래 자취방을 뺐다.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장미꽃을 팔고, 학교 본관 앞에서 해외탐방 사진전도 열었다.
사막에 대한 그의 열정이 전해진 걸까. 자금 마련을 위해 개설한 소셜 펀딩 사이트에 글을 올리자 91명이 389만원을 보태주었다. ''남극의 물을 유리병에 담아주고, 사하라사막 한복판에 잊고 싶은 물건을 묻어주겠다''는 그의 공약이 통했던 것이다.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사막 마라톤 도전은 마침내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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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서…척박한 공간에서 인간 본 모습을 보다 윤 씨는 고독한 사막을 달리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깊게 고민하려 했다. 그러나 사막에서 사색에 잠겨보겠다는 꿈이 사치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뛰어보면 힘들어서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대신 맥주, 치킨, 삼겹살이 눈앞에 아른아른 거려서 혼났어요. 대회가 끝난 후 호텔 뷔페에 모인 참가자 모두 굶주린 늑대 형상이었죠."
사막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한참을 홀로 걷다보면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이 든다고. 그는 "한국인 동료들과 서로 의지하면서 적막의 시간을 견뎠다"고 했다. "같이 이야기 하면서 걸으니까 시간이 금방 갔어요." "늘 아들을 믿고 지지해준 부모님과 응원을 아끼지 않은 친구들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함께 하는 것의 소중함을 몸소 느낀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인이 사막 마라톤에서 완주하는 비율이 높다"고 귀띔한다. "외국인은 개인주의적인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은 힘들 때 가족처럼 챙겨주고, 서로 도우면서 단합이 잘 되거든요."
사막은 인간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 사람의 민낯이 드러나는 법. "무겁다고 자기 배낭 속 음식을 모두 버리고 구걸하거나 바람이 불어서 텐트가 날아가려 할 때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땡볕에 일부러 나와서 골인할 때 박수 쳐주고, 길을 잃었을 때 성심성의껏 도와준 친구도 있었죠."
윤 씨도 처음에는 자기 몸을 돌보는 데만 치중했다. 하지만 "자신이 힘든 순간에도 선뜻 손을 내밀어준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까''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깨달음은 선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도 한 번 사막을 달려보고 싶네요."
사막 마라톤에 임하는 윤 씨의 마음가짐도 점점 달라졌다. 아타가마 사막을 달릴 때까지만 해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완주와 기록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앞서가는 외국인 선수를 따라잡아야 직성이 풀렸고, "여자선수에게 지는 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새 경쟁심에 휘둘린 것이다. "사막에 가기 전에는 뛸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는데, 첫째 날 레이스를 마치고 나서부터 욕심이 생겼죠."
하지만 "사막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동료들과 정담을 나누며 대회를 즐기는 참가자들을 지켜보며" 윤 씨는 완주에 대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기록보다 중요한 것이 뭔지 알았기 때문이다. 고비사막 레이스가 끝난 후 열린 시상식에서는 ''Cable-French'' 상을 받았다. 경기 중 늘 웃고 남을 도와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이유였다. 윤 씨는 경기 내내 초보 사막 마라토너인 미국인 친구와 보조를 맞춰 180명 중 140등으로 골인했다.
◈ 사막을 다녀온 후…일상의 여유를 찾고 평생의 꿈을 얻다 사막 마라톤 경험은 윤 씨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대회 기간 내내 예정시간에 맞춰 들어온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예상시간이 빗나가면 속상했죠. 하지만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까 오버페이스 해서 더 큰 화를 초래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예상대로 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일상생활도 한층 여유로워졌다. "예전에는 성격이 급했어요. 학교에서 조별과제 마감이 밤 12시까지면 저녁 7시부터 팀원들을 들들 볶았어요. 한 달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도 못했죠. 결과가 바로 안 나오면 답답하니까요. 그런데 5년에 걸쳐 사막 마라톤에 매진하면서 속도 보다는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죠." 그는 또 "수강 신청 할 때 듣고 싶은 과목이 마감되면 발을 동동 구르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조급해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윤 씨는 틈나는 대로 강연을 하며 사막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사하라사막에 가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을 때 먼저 다녀오신 분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어요. 물집 빨리 제거하는 법, 사막에서 차가운 물 마시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웠죠. 사막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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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은 청춘들은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새기고 있다. "제 또래 한 여대생은 2016년에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지금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체력도 부족하고, 경제적인 부분도 넉넉지 않아서 망설였는데 제 얘기를 듣고 난 후 자신감을 얻었대요. 또 다른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수화 통역사로 활동하는 남학생인데요. 대학을 안 간 것에 대해 주변에서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해서 힘들었나 봐요. 그런데 저를 보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해요."
윤 씨는 사막 덕분에 또 다른 꿈이 생겼다. "현장에서 체험한 것을 글로 써서 탐험문학 장르를 개척하고 싶어요." 엄홍길 대장과의 안나푸르나 등정(2월), 경주~중국 시안 답사(4월), 7월 10일 출발하는 55일간의 실크로드 육로 횡단(중국 시안~키르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란~터키)은 모두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계발서나 강연은 ''배낭여행을 해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얘기하지만 배낭여행 갈 돈을 어디서 구할지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다"며 "탐험문학은 제가 평생 하고 싶은 꿈이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일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웃었다.[BestNocut_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