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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무서운 이야기2'' 정범식 감독 "열린영화 호러는 내 운명"

[인터뷰]''무서운 이야기2'' 정범식 감독 "열린영화 호러는 내 운명"

공포와 코믹 절묘하게 버무린 ''탈출'' 편으로 관객과 호흡…"독창성은 가장 대중적인 무기"

정범식

 

천상 영화감독. 4일 서울 삼청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정범식(43)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든 생각이다. 

뒤로 질끈 동여맨 머리와 거친 수염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 달리, 영화 이야기를 하는 정 감독의 표정과 몸짓은 신이 난 아이를 닮아 있었다. 

그가 소명의식을 갖고 작품에 임하는 직업 감독이기에 앞서, 영화를 만들어 관객과 만나는 일 자체를 즐기는 ''꾼''으로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인터뷰 이튿날 개봉한 옴니버스 형식의 공포영화 ''무서운 이야기2''에서 다시 한 번 ''정범식표'' 영화 감성이 밴 작품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감독 스스로 ''개병맛 코믹호러판타지'' 장르라고 규정한, 공포와 코미디가 공존하는 에피소드 ''탈출'' 편을 통해서다. 

정 감독은 "탈출이 공포와 코미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영화라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앞서 만든 작품들과 다르게 꽤 긴장하고 있다"면서도 "시사회 등에서 관객 반응을 본 뒤 다양한 세대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확신과 기대를 갖게 됐다"고 전했다.

-폭소와 공포라는 상반된 감정을 한 영화에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다. 

"데뷔작 ''기담''(2007년)을 만들 때는 아름다움과 슬픔이라는 정서를, ''무서운 이야기''(2012년) 속 ''해와 달'' 편에서는 어린 시절 기억을 담으려 했다. 그 연장선에서 내 안에 있는 장난기를 공포와 결합시킨 결과물이 탈출이다. ''관객들이 두 극단의 감정을 하나로 받아들일까''라는 걱정도 했지만 가능하다고 봤다. 어릴 때 할머니댁에서 또래 사촌들이 모이면 모두 12명이었는데 내가 장손이어서 항상 놀이를 정했다. 당시 무서운 놀이를 하다가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 되면 웃게 만드는 것을 참 잘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거나 공포를 느끼는 지점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탈출도 내가 노는 방식인 셈이다."

-비뚤어진 교육·가족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로도 읽히는데.

"전작 해와 달에서는 내 경험과 진심을 토해내듯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썼는데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 관객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오히려 코미디 장르라면 사회적인 메시지를 직접적이지 않고 놀이처럼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힘을 빼는 만큼 관객들이 상징성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지점이 더 넓어진다고 할까. 탈출은 관객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긴 작품이다."

-영화 속 봉투를 쓴 기괴한 가족의 모습도 독특하다. 

"봉투가 아니고 돼지 껍데기다. 그러한 설정 하나 하나가 호러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의 자존심이고 자부심이다. 전작 해와 달에서는 얼굴에 낚시줄을 감은 기괴한 캐릭터가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후 세계의 가족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얼굴을 직접 보이는 것보다는 감춰진 것이 상상력을 자극하겠다고 생각했고, 고기를 먹다가 서비스로 나오는 돼지 껍데기를 보고 ''이거다'' 싶어 결정했다. 처음에는 스텝들이 ''저건 또 뭐지'' 의아해 하더라. 상상력을 자극해 기괴할 수 있다고 설득했고, 결국 인조 돼지 껍데기를 만들어 활용했다."

-만들어 온 작품들을 보면 한국의 정서가 짙게 밴 듯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이 산낙지를 먹는 장면을 보자.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 사람들이 볼 때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탈출에서 주인공 병신이 수많은 번데기를 토해내는 장면도 그렇다. 극중 사후 세계의 아버지 역을 농구선수였던 한기범 씨가 맡았는데, 그는 촬영장에서 번데기를 날로 먹었을 만큼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이 장면을 접하면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공포영화 감독으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상관 없다. 어떻게 불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영화 흥미롭네'' ''재밌다''는 말이면 충분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된다. 첫 영화 기담은 스스로 생각할 때 많이 부족했지만 닮은 영화가 없었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도 창작자로서 작품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관객과 만나는 것에 만족한다. 우리나라에서야 공포영화가 여름철 특수를 노린 기획물로 다뤄지지만, 해외에 나가면 팀 버튼, 피터 잭슨 등 B급 호러 영화 출신 감독들에게서도 알 수 있듯이 공포영화 감독에 대한 예우가 남다르다.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아 나가 보면 공포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게도 명예다."

-공포영화를 주로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공포영화를 본의 아니게 하게 되면서 본의가 됐다. (웃음) 정통 호러를 만들 생각은 없다. 내 작품은 모두 변형된 호러다. 한국에서 장르영화, 상업영화를 하려면 따라야 할 일정한 규칙이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큰 사건으로 영화를 시작하라는 식이다. 반면 공포영화는 긴장감을 조여가는 데 필요한 시간이 있다. 관객들은 액션 영화에서 액션신이 안 나오면 지루해 하지만, 공포영화에서 무서운 것이 나오기 전까지 숨죽이고 응시하게 된다. 호흡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이 시간 동안 상업영화에서는 쉽게 못하는 장르적 실험이 가능해진다. 공포영화는 우리 영화 시스템 안에서 가장 열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왜 한국에서는 공포영화가 대중적이지 못하다고 보나. 

"일본이나 유럽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가면 엄청나게 잔혹한 장면이 나오는 공포영화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환호를 지르고 휘파람까지 분다. 말 그대로 축제다. 이런 지역에 가면 항상 그곳의 범죄율을 확인하게 되는데 현저하게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답답한 현실 탓에 억눌린 감정을 공포영화를 보면서 푸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정범식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서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공포영화를 수없이 봐 왔지만 무서운 적은 없다. 그런데 이야기로 듣거나 읽으면서 상상하면 무섭다. 이유는 모른다.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무섭게 만든다. 나는 무서울 때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데 책을 읽다가도 눈물이 나오면 한숨 돌리고 볼 수밖에 없다."

-영화 철학이 있다면. 

"대답을 하기 전에 전제가 필요하다. 감히 영화 철학을 논할 만큼 깜냥이 안된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잔혹한 폭력이든, 재미있는 로맨스든, 맹맹하고 심심한 드라마든 가장 솔직한 덩어리가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그런 것들이다. 학교 다닐 때 감각적으로 좋아지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자기 모습에 솔직한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공포영화를 만드는 환경은 어떤가. 

"이번 작품의 경우 하루 19시간 동안 120컷 이상을 찍은 날도 있다. 해병대 캠프만큼이나 힘든 현장이었다. (웃음) 갈수록 공포영화를 만드는 기술은 좋아지는 반면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영화 시장이 100억 원대 대작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20억 원대 중간급 규모의 영화들이 많이 줄었다. 공포영화도 중간급에 속하거나 더 적은 예산으로 기획되는데, 끌어모을 수 있는 관객 수에 한계가 있다고 여겨져 여름 기획물이 아니면 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무서운 이야기2가 가을, 겨울에도 공포영화를 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

-이제 관객과 만나게 되는데.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는데, 아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함께 여러 영화를 봐 와서 그쪽에 촉이 발달해 있다. 탈출의 시나리오, 편집본 등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면서 내 놀이가 어떻게 다가갈까 끊임없이 검증했다. 아들이 집안에서도 영화 대사를 되뇌일 만큼 재밌어 하더라. 올해 95세이신 할머니도 시사회에 모셨는데 관계자가 ''어떤 백발 할머니가 깔깔대고 웃으셨다''고 알려 줬다.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 3편에도 참여하나. 

"미지수다. 현재 제작사에서 기획 단계에 있다. 이 시리즈가 공포영화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감독들한테서 ''해 보고 싶다''는 연락이 먼저 온다고 한다. 나도 한 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우선 이번 영화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녀가 커서 영화를 하겠다면.

"아무 말도 안 할 거다. 외부의 영향은 반대 급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니까. (웃음) 아이들을 종종 작업실에 데려가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들에게 편집에 대해 설명도 해 주고 의견도 묻는데 즐기는 모습이다. 우리 집 풍경이 그렇다. 집에서 아침에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떻게 편집할까'' 고민하다가 학교 가려고 이닦는 아이들을 불러 의견을 받는다. 배우이자 성우인 아내도 이번 영화에서 엘리베이터 귀신, 병신이 엄마 목소리로 참여했다. 가족은 나의 가장 큰 조력자다."

-정 감독에게 영화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즐거운 작업이다. 감독이란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너무 큰 행운이다. 현실 속에서 나의 즐거움과 대중의 기호, 이윤창출이라는 균형을 맞추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항상 독창성에 무게를 두고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그러다 보니 영화를 자주 못 만들게 되더라. 최근 들어 나의 독창성이 가장 대중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의도한 곳에서 관객들이 웃고 놀라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힘든 때는 한 순간이다. 완성된 영화로 관객과 소통할 것을 생각하면 행복하다. 현재 장르 구분 없이 연출 제의가 여럿 들어오고 있는데, 빨리 결정해서 올해 안에 촬영에 들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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