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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6시30분 ''코리안좀비 종합격투기 체육관''의 MMA(종합격투기) 수업시간. 40명이 넘는 관원들은 ''코리안좀비'' 정찬성(26, 코리안좀비MMA)의 구령에 맞춰 열심히 몸을 구르고 있었다. 정찬성이 암바 기술 시범을 보일 때는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경청했다.
정찬성은 지난 1일 서울에 자신의 별칭을 딴 종합격투기 체육관을 차렸다. 체육관 운영은 동업하는 친구가 도맡지만 그는 선수로 뛰면서 관원 및 선수 지도까지 하고 있다. 한국 UFC 파이터 맏형 김동현(32, 부산팀매드)은 지난해 6월 대전에 ''UFC 김동현 피트니스''를 오픈했다. 시합날짜가 정해지면 1~2달은 훈련에만 집중하지만 평상시에는 선수, 지도, 운영 1인 3역을 하느라 분주하다.
두 선수는 UFC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 김동현은 UFC에서 8승(2패 1무효)을 거뒀다. 오는 7월 7일(한국시간) 리카르도 라마스(31, 미국)와 UFC 복귀전을 갖는 정찬성은 UFC 3연승을 구가 중이다.
그래서일까. ''파이터로서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할 시기에 선수생활과 체육관 경영을 병행하면 경기력에 지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김동현은 ''겸업'' 이후 2승1패를 거두는 등 오히려 경기력이 좋아졌다. 복귀전을 3개월 앞둔 정찬성도 경기력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
김동현과 정찬성은 체육관을 오픈한 이유에 대해 "은퇴 이후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 목소리다. 종합격투기는 체력적인 부분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이 대체로 짧다. 더구나 UFC 파이터는 1년에 많아야 세 번 정도 경기를 치를 수 있다. 2008년 UFC에 데뷔한 김동현은 1년에 두 번 꼴로 경기를 했다. 정찬성은 어깨수술 여파로 지난해 단 한 경기만 가졌다. 수입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체육관을 운영하면 고정수입이 생긴다. 김동현은 "(저는) 파이트머니를 많이 받는 편이지만 그만큼 쓰는 돈도 많다. 부상이라는 돌발변수도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런데 피트니스 센터를 차린 후 수입이 안정적이라서 좋다"고 했다.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정찬성도 "(체육관 오픈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했다.
미리 지도자 수업을 한다는 의미도 있다. 김동현은 "우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재미있고, 두 가지를 같이 하는 것은 은퇴 이후 체육관 경영이 본업이 됐을 때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김동현은 "파이트머니에만 의존하면 부상을 당하거나 선수생활을 그만뒀을 때 안절부절할 것 같다. 하지만 매달 일정한 수입이 나오니까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했다. UFC는 이겼을 경우 별도의 승리수당을 받는다. 따라서 병행하지 않았을 때는 경기 전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과 패배 후 좌절감이 더 컸을 것이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도 크다. "선수로만 활동할 때보다 바쁘지만 제가 노력해서 돈을 번다는 보람이 있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인간관계의 폭도 넓어졌어요."(김동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 벌고, 유명해지고, 알아봐주시는 게 행복해요."(정찬성) 편안한 마음, 만족감, 행복감 같은 긍정적 심리경험을 하면 선수는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찰나의 순간 승패가 엇갈리는 UFC에서 집중력은 성적과 직결된다. [BestNocut_R]
두 선수는 또 "남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면서 정신적으로 더 강해졌다"고 말한다. 김동현은 "사람들을 가르치면 내 실력도 는다. 누군가를 지도하려면 기술에 대한 포인트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계속 연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기량도 좋아진다"고 했다. 이어 그는 "누군가의 스승이 된 후로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고, 마인드도 강해졌다"고 했다. 정찬성도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에 서게 된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많다"고 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은퇴 이후 삶을 준비하는 ''똑똑한'' 파이터 김동현과 정찬성의 다음 경기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