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빠진 종전협상…韓 배제된 北美 '빅딜' 예고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운전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 '열차'는 정작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태우지 않은 채 출발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조수석에 모신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맹비난했다.   임기 한 달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두고도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에서 '패싱'당한 경험이 있다. 트럼프의 '대서양 패싱'에서 느끼는 기시감…커지는 '서울 패싱' 우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키스 켈로그 미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와의 회동을 앞두고 "미래는 푸틴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평화와 함께 한다"면서 "푸틴과 함께할 것인지, 평화와 함께할 것인지 전세계 모두가, 또한 권력자(트럼프 대통령)가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사실상 배제한 것도 모자라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 '그저 그런 성공을 거둔 코미디언'으로 칭하며 비난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미국, 유럽과 함께하면 평화는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이것이 우리 목표"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종전 협상에서 밀려난 유럽 국가들도 두 차례 정상회의를 한 데 이어 미국을 직접 찾기로 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내주 초 워싱턴DC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종전과 관세 문제 등 현안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할 예정이다. 미국의 가장 전통적인 동맹국이 미국과 러시아의 밀착을 경계하며 압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오후 유럽 각국과 캐나다 등 19개 나라 정상과 화상 회의를 연 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 있으며 유럽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대서양에서 펼쳐지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신경전은 태평양을 둘러싼 우리에게도 묘한 기시감과 함께 우려를 안겨 준다. 전직 주한 미국대사는 마침 이날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종전협상을 벌인 것을 한국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냐는 질문에 "한국에서는 '서울 패싱'에 대한 불안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대사는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 석좌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이같이 전망하며 "'서울 패싱' 여부는 아시아 정책을 담당하는 미 행정부에 누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1기 때처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직접 협상을 통한 '비핵화' 실현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김 위원장을 언급하며 다시 접촉할 의사가 있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는가 하면 "김정은과 매우 친했다.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를 좋아했다"며 우호적인 관계를 자랑하듯 떠벌리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당시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를 기조로 북핵 문제에 대응했다. 임기 초반에는 대북 제재 등 '최대 압박'에 집중했고 임기 후반엔 '최대관여' 기조로 전환해 싱가포르·베트남·판문점 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북한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할수록 '한국 패싱'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대서양에서 안보 위협의 당사국인 우크라이나가 당했던 것처럼 태평양의 우리도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韓, 북-미 관계 소외되지 않으려면 "美 '니즈' 파악해 먼저 제시해야" 전문가들은 향후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서 '패싱'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미국의 '필요(니즈)'를 먼저 파악해 제안하는 등 협상 타결의 '키맨'을 자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과거 북미 협상이 진전되는 경우를 보면 우리 측이 아이디어를 미국에 제공하고 그게 미국 측의 이익에 부합했을 때 협상이 시작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며 "협상에서 미국이 원하는 '니즈'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틈을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를 두고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게 되면 결국 북한은 대북제재 해제 등 경제적 자유를 요구할 것이고 거기엔 막대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거래적 접근을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에 직접 비용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협상 과정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틈은 경제적 지원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 우호적인 러시아가 중재국으로 떠오를 가능성에 대해서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국제적 제재로 큰 재정적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의 협상을 지원할 경제적 역량이 크지 않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미국과 우리나라가 긴 동맹관계를 이어왔고, 경제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한 점 등을 근거로 우크라이나와 같은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 북한과의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는 등 우리나라가 비핵화 협상에서 내세울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과거 문재인 정부가 쌓아놓은 대북 정책이 무너진 이후에 그렇다 할 노선이 보이지 않는 데다, 북한이 우리나라를 신뢰하지도 않는 상황"이라며 "미국과 북한이 회담한다고 하는데 '한국은 들어오지 마'라고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상황이다. 협상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분명한 전략을 짜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2025.02.21 0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