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전력증강 러시아 탓으로 돌리면 그만인가[기자수첩]
미사일은 일반적으로 발사대와 표적의 고정 여부에 따라 기술적 난이도가 올라간다. 지대지, 지대함, 지대공, 함대지, 함대함, 함대공, 공대지, 공대함, 공대공의 순이다.
우리 군도 대략 이런 경로를 거쳐 현재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연구개발 단계에 와있다. 세계 최대 탄두중량의 '현무-5' 지대지 탄도미사일까지 자체개발한 나라지만 공대공은 아직 미완의 영역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이 신형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선보였으니 비상한 관심과 우려가 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기술 이전·지원설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군사전문기자 출신인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군도 개발 초기인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 체계통합에 실사격까지 공개"한 점 등을 들어 이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다수 언론들도 외형적 유사성 등을 근거로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증거로서 부족하고 오히려 반례도 존재한다. 북한 신형 공대공 미사일은 마찬가지로 러시아 기술의 영향을 받은 중국 PL-12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미국 AIM-120 암람과도 닮았다.
북한 무인공격기도 미국 무인기 글로벌호크나 리퍼와 형상이 매우 비슷하다. 외형적 유사성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북한에 기술 지원했다는 우스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미사일이 2021년 북한 국방발전전람회에서 처음 공개된 사실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예상도 하기 힘든 때였다. 당연히 북한군 파병과 이를 대가로 한 군사기술 지원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북한이 그해 1월 천명한 국방발전 5개년 계획을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술핵, 초대형 핵탄두, 극초음속미사일, 핵잠수함, 군사정찰위성, 무인정찰기 등 8대 과업이 담겼다.
북한은 이 가운데 상당 부분에서 비록 조악한 수준이나마 성과를 내고 있다. 군사력만큼은 온 국력을 갈아넣는 북한의 자력갱생을 얕잡아보면 안 된다.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조차 도와주지 않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핵과 ICBM을 완성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북한이 지난달 공개한 북한판 이지스함 최현함과 거기에 배치된 초음속 순항미사일 역시 외형적 유사성으로 인해 러시아 기술 지원설이 제기됐다. 그런 식이라면 북한이 앞으로 어떤 무기를 개발하더라도 그것은 러시아 책임으로 돌려지기 십상일 것이다.
러시아는 과연 그리 관대한 나라인가? 군사기술은 동맹인 미국조차 우리에게 이전을 꺼리고 심지어 제동을 거는 극히 민감한 분야다. 북러관계가 혈맹 수준으로 발전했다고는 하나, 러시아가 자신의 강대국 지위를 떠받치는 핵심인 군사기술을 쉽게 내줄 거라 보기는 어렵다.
합참은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 지원 가능성에 대해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도 구체적 근거는 분석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가 러시아의 북한 지원을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를 적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목적이 있다. 러시아가 금지선을 넘지 않도록 경고하는 것은 좋지만 확실한 근거 없이 러시아 탓만 하는 것은 역효과를 키울 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을 규탄하는 것은 국제규범에 맞는 타당한 조치였지만 러시아를 필요 이상 자극해 북러 밀착의 빌미를 제공한 점은 되짚어볼 때다.
무기체계 권위자인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북러 기술협력이 (핵·ICBM 등) 전략무기로까지 갈 것으로 본다"며 "이제는 국가안보전략 차원에서 근원적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게 러시아 탓이라는 안이한 결론은 적(북한)을 과소평가하고 또 다른 적을 만들며 스스로 오판을 키우는 최하책일 수밖에 없다.
2025.05.2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