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지리책에서나 보던 '우기'…한국의 현실이 됐다[기후로운 경제생활]
◆ 홍종호> 한 장의 그래프로 오늘의 기후를 요약해 드리는 기후 한 장, 오늘은 극단적인 여름 날씨 이야기해보고 있습니다. 여름 날씨의 특징으로는 더위와 함께 폭우가 있죠. 장마 기간을 보통은 6월에 시작해서 6월 말이나 7월 초에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인 거죠?
◇ 윤신영> 맞습니다. 지금 장마에 관한 논쟁 중 가장 치열한 부분이 장마라는 표현을 계속 써야 하냐는 점입니다. 동북아시아 역사에 깊이 남아 있는 표현이잖아요. 표현만 다를 뿐, 각 나라에도 장마가 있었는데 이걸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 윤신영> 올해도 그런 경향이 있는데요. 과거처럼 비가 확 내리고 그치면서 쨍하고 습한 무더위가 찾아오는 여름, 이런 패턴이 무너졌어요. 왼쪽 그래프는 1907년부터 1979년까지, 오른쪽 그래프는 1980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의 강우량을 월별로 정리한 거예요. 장기 기상 기록이라고 할 수 있죠. 1980년 이전, 그러니까 왼쪽 그래프를 보시면요, 우리가 잘 아는 장마죠. 6월 말에서 7월 초중순까지 급격히 강수량이 증가하는 구간이 보이죠.
◆ 홍종호> 확실히 보이네요..
◇ 윤신영> 그러다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8월 말에서 9월 초쯤 다시 한번 강수량이 올라가는 구간이 있어요.
◆ 홍종호> 그때는 태풍의 영향도 있겠네요.
◇ 윤신영> 맞습니다. 그래서 보통 후기 장마라고 할까요? 한 번 더 비가 많이 오는 구간이 있고, 그 이후로 급격히 건조한 가을로 진입하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패턴이에요. 그런데 1980년 이후만 보면 굉장히 모호합니다.
◆ 홍종호> 그러네요. 패턴이 다르네요. 8월에 강수량이 확 올라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네요.
◇ 윤신영> 맞습니다. 두 그래프가 거의 붙어있죠. 장마가 끝났다 싶으면 며칠 있다가 비가 이어지고, 결국 여름 내내 비가 내리는 패턴으로 바뀌었어요. 그런데 이게 모든 날 비가 온다는 건 아니고요. 비가 오는 날들이 그만큼 퍼져있다는 겁니다.
작년 기억이 나실 거예요. 굉장히 무덥다가,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엄청난 비가 퍼붓고, 또 거짓말처럼 개고, 동남아시아에서나 볼 법한 모습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걸 여전히 장마라고 규정하는 게 맞느냐, 우기처럼 다른 용어로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쟁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홍종호> 이런 논쟁이 지금 학계나 기상청 내에 있습니까?
◇ 윤신영> 네. 실제로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 홍종호> 한국에 우기가 생긴다니, 말만 들어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예전에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나 우기, 건기로 나눠지는 나라를 배우곤 했는데요.
◇ 윤신영> 맞습니다. 말씀처럼 낯설게 느끼실 수밖에 없는 게, 문화적으로도 굉장히 거리가 먼 단어다 보니까요. 그러다 보니 결정을 못 하는 상황이기도 해요. 장마라는 용어는 지금도 쓰이고 있지만, 뚜렷한 기간을 발표하지 못하는 상황이고요.
◆ 홍종호> 통계는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현상을 보인다는 말씀이군요. 예측하기 어려운 폭우나 8월에도 비가 많이 오는 이런 상황들, 어떻게 대비해야 하고 지금 뭐가 부족한 상황입니까?
◇ 윤신영> 그래서 저는 강수량과 관련해 관점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과거에는 장마라고 해서 비가 집중적으로 오는 시기에 대비하는 게 중요했잖아요. 장마철 대비를 위해 인프라 점검도 하고 그랬는데요. 지금은 여름 내내 비가 퍼져 있어서, 관점을 비가 많이 오는 기간에서 비가 얼마나 집중적으로 내리는가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 홍종호> 국지적인 집중호우죠.
◇ 윤신영> 네, 맞습니다. 이런 현상이 최근에 늘어나고 있어요. 집중호우 기준이 모호하긴 한데요. 기상청 기준도 따로 있고요. 학계에서는 보통 시간당 30mm 정도의 비가 오면 집중호우라고 부릅니다. 어느 정도냐면 운전할 때 와이퍼가 지나가도 앞이 안 보일 정도입니다.
◆ 홍종호> 안 보이는 정도가 시간당 30mm 정도군요.
◇ 윤신영> 네.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양의 비입니다. 이보다 더 많아서 시간당 50mm를 넘어가면 무서울 정도로 시끄러운 비가 내리게 되는데요. 30mm 이상 내리는 비의 누적 강수량을 보면,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지금은 약 1.5배 늘어난 상황이에요. 비의 강도나, 횟수, 전체 누적량 모두 늘어났습니다.
◇ 윤신영> 저도 서울 기준으로 강수량의 규모별로 나누어 살펴봤는데요. 전반적으로 늘었지만, 특히 30mm에서 100mm 정도로 많은 비가 오는 날이 크게 늘어났어요. 이건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의견인데요. 집중호우가 늘고 있고, 그래서 여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주장이 커지고 있는 상태고요. 전국적으로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 홍종호> 그러니까 연간 강수량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비가 피해를 더 많이 일으킬 것 같긴 해요. 3년 전 포항에 태풍 힌남노가 왔을 때, 시간당 75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포항에 흐르는 냉천이 감당할 수 있는 강우량이 바로 시간당 75mm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초과하니까 물이 범람한 거죠. 그런데 기자님 말씀처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특정 지역에 쏟아지는 비가 예측도 쉽지 않다면, 관리하기가 너무 힘든 거 아닌가요?
◇ 윤신영> 맞습니다. 요새 '돌발홍수'라는 표현도 많이 쓰고 있어요.
◆ 홍종호> 맞아요. 최근 미국 텍사스에서 벌어진 일도 너무 비극적이었어요.
◇ 윤신영> 그런데 그런 일이 사실 전 세계 곳곳에서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에 어딘가에서 항상 이런 식의 돌발홍수가 발생하고 있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먼 얘기가 아닌 것 같고, 한국도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홍종호> 저도 텍사스 통계를 보고 경악스러웠는데요. 45분 만에 강 수위가 약 8m나 올랐더라고요. 이 정도 상황이면 과연 대응이나 대피가 가능할까 싶고요. 만약 이런 일이 대한민국 같은 국토도 좁고 인구 밀도도 높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면, 그 피해는 훨씬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발홍수라는 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그래도 통계적으로 봤을 때, 특히 국지성 폭우에 취약한 지역이 있다면 짚어주실 수 있을까요?
◇ 윤신영> 흥미롭게도 실제로 지역 차가 있더라고요. 제가 지도를 하나 그려봤는데요. 서울은 십자 표시가 되어있고, 전국에 있는 기상청 관측소 데이터를 반영해서 1970년대 이후 강수량을 더해본 거예요. 보시면 수도권에 굉장히 많은 비가 집중되어 있고요. 시간당 30mm 이상의 비가 제주 쪽에 많고, 거제를 중심으로 해서 남해안 지역에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 홍종호>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죠?
◇ 윤신영> 네. 그래서 보시면 수도권과 충남 북부, 남해안, 제주도 쪽이 많고요. 상대적으로 강원, 동해안 쪽은 비가 적은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지역적인 편차가 분명히 있고요. 집중호우가 많은 곳들에 인구가 많은 지역들이 포함돼 있어요.
◆ 홍종호> 맞아요. 부산 지역, 거제, 수도권도 그렇고요.
◇ 윤신영> 인구가 많은 지역에 집중호우가 자주 내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도 몇 번 경험했잖아요. 2~3년 전에 서울에서 시간당 140mm 집중호우가 쏟아졌는데, 아까 30mm도 굉장히 많다고 했는데 140mm면 어마어마한 양이거든요. 작년에도 군산이었나요? 시간당 146mm를 기록했었고요. 이렇게 과거에 보지 못했던 비들이 오고 있어요. 한국은 장마를 계속 겪어왔기 때문에 비 피해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편일 거예요. 미국 텍사스처럼 비가 조금만 와도 금방 돌발홍수로 큰 피해로 이어지는 나라들과는 다르긴 합니다만, 그래도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강수량이 늘어나고 있고요. 특히 서울 한복판이나 포항, 군산처럼 도심에서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는 대비책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홍종호> 공감합니다. 아까 50년 통계에서는 수도권, 부산, 제주처럼 돌발적인 집중호우가 자주 오는 지역이 있지만, 최근 경험을 보면 평상시에 비가 많이 안 오는 지역에서도 이런 비 피해가 생기고 있어요. 특히 2023년 경북 예천에서 비가 많이 와서 지역에 산사태까지 났잖아요. 역사적으로 비가 그렇게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닌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하는 거죠. 앞으로 행안부 같은 기관들이 홍수 관리에 더 어렵겠다 싶어요. 긴장을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 할 지역이 더 많이 늘어난 것 같고요.
◇ 윤신영> 맞습니다. 지역도 그렇지만 결국 피해를 증폭시키는 것은 인프라잖아요. 인프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요. 예를 들어 오송 지하차도 참사도 미호천 인근의 금강 지류가 넘치고 둑이 무너지면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때도 세종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호우 구간이 길게 형성됐었거든요. 어느 구간에서, 어느 국면에서 우리를 위협할지 모르기 때문에 과거 기준보다 더 엄격한 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 홍종호> 그렇죠. 예산도 더 많이 배정돼야 하겠고요. 왜냐하면 이게 결국 정부의 제1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는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관련 예산은 더 확대되고 우선순위도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주 기후 한 장, 여름 날씨의 큰 특징인 더위와 비의 변화 양상을 알아보았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급격하다는 걸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남은 여름 중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변화한 기후 패턴에 맞춰 생활과 행정 분야의 전반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윤신영 기자와 이야기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 윤신영> 감사합니다.
2025.07.2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