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사필귀정"…독재정권 특허권 강탈, 50년 만의 '진실규명'



경인

    "사필귀정"…독재정권 특허권 강탈, 50년 만의 '진실규명'

    14일 진화위 전체 회의서 결정
    국가 강압으로 개인 재산권 포기
    피해자는 폐업, 가족 생활고 직면
    재판 오염, 가혹한 인권침해까지
    특허 과정 관계자들로 피해 확산
    정부부처 등 사과·피해 회복 권고
    유족 "정부 개입 증명 '사필귀정'"

    1970년 제9회 수출의날 기념식에서 참석자와 악수를 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국가기록원 제공1970년 제9회 수출의날 기념식에서 참석자와 악수를 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국가기록원 제공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자행된 이른바 '기모노 특허권 강탈 사건'은 공권력의 강압과 인권침해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국가 조사 기구에 의해 규명됐다. 사건 발생 50여년 만이다.
     

    국가의 '특허권 강탈' 50년 만에 밝혀진 '진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전날 52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고(故) 신경식 소취하 강요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을 의결했다.
     
    이 사건은 사업가이던 신씨가 지난 1965년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의 고급 홀치기(특수문양제조기법) 제품을 만드는 신기술을 개발한 뒤, 경쟁사에 기술을 도용당하고도 군사정권의 외압에 의해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14일 2기 진실화해위원회(김광동 위원장)가 제52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고 신경식 소취하 강요사건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을 의결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14일 2기 진실화해위원회(김광동 위원장)가 제52차 전체위원회를 열고 고 신경식 소취하 강요사건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을 의결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당시 박 대통령은 수출 확대를 위해 신씨의 신기술에 대한 특허권 취소를 요구해온 다른 무역업체 등의 민원을 듣고 "홀치기 수출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 직후 신씨는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형사처벌을 받는가 하면, 기술 개발에 들인 투자금조차 회수하지 못해 폐업하고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1972년 신씨가 특허침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후 재산권 포기 과정에서의 외압 여부였다. 중정과 사정당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얼마나 가혹한 인권침해가 벌어졌느냐는 것이다.
     
    이에 현재 국정원에 보존됐을 것으로 추정돼온 보고서와 신씨를 문서위조범으로 공작한 검찰 내부 문건 등이 실체를 규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서로 지목돼왔다.
     
    이와 관련해 2021년 8월 진실화해위는 사건에 대해 진상 조사에 착수했고, 이후 국정원 내부 문건 등을 입수하면서 진실 규명 결정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정부가 수출 증대를 목표로 기업의 고충 처리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무시한 것은 물론, 불법적인 행위로 인권마저 침해한 사건으로 해석했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의류 수출품을 관람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의류 수출품을 관람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더욱이 중정이 특허권에 관한 수사 권한도 없이 불법수사를 벌여 신씨를 허위공문서이용 혐의로 유죄판결에 이르게 하는 등 재판까지 오염시켰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신씨는 사업가로서의 삶을 잃었고, 특허권 획득 과정에 연관된 특허심판원 공직자들이 비리 연루자로 몰려 인사조치를 받는 등 피해가 확산됐다는 게 진실화해위의 지적이다.
     
    이번 진실 규명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과거사정리법' 제34조에 의거, 정부의 소관 부처와 기관에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한 후속 조치 등을 권고할 방침이다.
     

    유족 "국가의 강탈 행위, 이제라도 증명돼"

    지난 1965년 5월 초순경 공장에서 여성들이 요꼬비기 기술을 익히고 있는 모습. 아래 사진은 해당 사진 뒷면에 적힌 고 신경식씨의 자필 메모다. 유족 측 제공지난 1965년 5월 초순경 공장에서 여성들이 요꼬비기 기술을 익히고 있는 모습. 아래 사진은 해당 사진 뒷면에 적힌 고 신경식씨의 자필 메모다. 유족 측 제공
    이처럼 반백 년 만에 고인의 억울함이 밝혀진 데 대해 유족은 "사필귀정"이라며 반겼다.
     
    유족 측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정부 방침에 맞춰 특허제품을 만들어 국가경제에 기여하려 했다"며 "그럼에도 국가는 특허권침해를 인정한 사법부 판결마저 부인하고 재산권을 빼앗아 26개 무역회사에게 넘겼다"고 사건 경위를 돌이켰다.
     
    이어 "국가가 부자의 돈을 거두어 가난한 백성을 위해 쓰면 몰라도, 가난한 기업인의 재산을 취해 대기업에 나눠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억울한 심정으로 한평생을 살다 간 특허권자(신씨)의 염원대로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다"라며 "진실화해위원회와 국정원 협조에 감사를, 또 고인의 사건으로 함께 고초를 겪은 특허국 관계자와 판사 등에게는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신씨는 1976년 9월 강압으로 인해 자신의 재산권을 잃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서울고등법원에 기일지정신청을 한 바 있다. 특허권 포기가 무효임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신씨는 당시 기일지정 신청서에 "소취하서는 신체의 자유를 잃은 상태에서 어떤 제3자에 의하여 소취하를 하도록 모진 폭행과 협박을 당하고서 날인해 작성된 것일 뿐"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법원은 신씨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소송종료를 선언했다.
     
    태극기가 걸린 공장에서 요꼬비기 신기술을 익히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유족 측 제공태극기가 걸린 공장에서 요꼬비기 신기술을 익히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유족 측 제공
    이후 이 사건은 지난 1기 진실화해위(2006~2010년 활동)에서 사건 조사 신청서가 접수됐지만 기각됐다. 당시는 특허권 관련 재심 제기 기간이 이미 지났고, 과거 중정의 역할을 객관적으로 증빙하기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번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개시가 있기까지, 신씨는 기다리지 못하고 지난 2015년 눈을 감았다.
     
    한편, 해당 사건의 경과와 진상 규명 현황 등은 CBS노컷뉴스를 통해 연속 보도된 바 있다.

    관련기사
    [단독]사라진 '기모노' 홀치기 특허권자
    [단독]'중정'은 왜 '홀치기 특허권자'를 잡아갔을까
    [단독]대통령 한 마디에, 빼앗긴 인생…진실은?
    독재정권 '특허권 강탈' 사건 등…진실화해위 763건 추가 조사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