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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가장 영화답게 '사랑'과 '인연'을 말하는 '패스트 라이브즈'



영화

    [노컷 리뷰]가장 영화답게 '사랑'과 '인연'을 말하는 '패스트 라이브즈'

    핵심요약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감독 셀린 송)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 스포일러 주의
     
    감독의 과거 경험에서 시작된 인연에 관한 회고는 오프닝을 통해 가장 영화적인 순간으로 재현됐다. 그렇게 자전적인 이야기가 가장 영화적인 순간으로 재탄생해 문을 여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는 '인연'과 '사랑'에 관한 가장 애틋하고도 소중한 순간들로 관객을 이끈다.
     
    12살의 어느 날, 해성(유태오)의 인생에서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이 이민과 함께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12년 후,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다 SNS를 통해 우연히 어린 시절 첫사랑 해성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한 번의 12년 후, 인연의 끈을 붙잡기 위해 용기 내어 뉴욕을 찾은 해성은 수많은 '만약'의 순간이 스치며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감정들이 다시 교차하게 된다.
     
    잘 알려졌다시피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탄생한 영화다. 남편과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뉴욕의 한 바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기이한 경험은 '인연'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이때의 경험, 인연에 대한 감각이 '패스트 라이브즈'로 이어졌다.
     
    감독의 경험은 곧 영화 그 자체이자, 오프닝으로 재탄생했다. 셀린 송 감독은 인연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위해 해성과 나영의 인연을 구축했다. 그리고 영화에 영감을 준 뉴욕 바에서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타자의 시점으로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한다. 셀린 송 감독의 이야기인 동시에 영화라는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는, 그야말로 '영화적'인 순간이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의 소재인 '인연'이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뜻하는 단어로, 그 안에는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 인연이라는 뜻 외에도 하늘이 베푼 인연, 부부가 되는 인연 등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감독은 이를 불교에서 말하는 무한한 시간의 의미를 담은 '겁'(劫·일정한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의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불교에서 겁의 시간이 쌓여 '인연'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7천 겁에 이르러야 부부가 될 수 있고, 8천 겁은 부모 자식의 인연, 9천 겁은 형제자매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에 담긴 인연은 결코 가벼운 단어가 아니다. 스치듯 짧은 현재의 시간 이전 전생의 무한한 시간이 만들어낸 관계다.
     
    인연은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개념이다. 인연을 말할 때 언급되는 감정 중 하나가 사랑이고, '사랑'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감정적인 연결이 담겨 있다. 셀린 송 감독은 나영과 해성의 첫사랑,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회고와 그리움을 '인연'이란 말로 풀어낸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는 24년 전, 12년 전, 그리고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재의 나영과 해성의 인연을 보여준다. 어릴 적 첫사랑의 감정을 간직한 둘은 나영의 이민으로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잇게 된다. 각자 다른 장소, 다른 문화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과거의 인연은 12년 만에 다시 이어지지만, 여전히 미숙하고 속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둘의 인연은 다시 12년의 공백을 갖게 된다.
     
    다시 한번 끊어진 인연이 다시금 이어지는 건 12년 후다. 미국 뉴욕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또다시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인연을 맺은 이후다. 떠나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삶과 인연의 공식은 둘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보고 싶었던 이유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해성이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었던 사랑과 그리움을 떨리는 눈빛과 다정한 말투로만 슬그머니 드러내 왔다. 그런 해성은 회전목마 앞에서 자신의 오래된 안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마음의 조각을 나영에게 건넨다. 그러나 12년 전 그랬던 것처럼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전하진 못한 채 또다시 맴맴 돌 뿐이다. 마치 그들 뒤에 서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말이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해성이 자신 안에 소중하게 담아놨던 나영을 향한 그리움의 배경, 나영과의 인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나영과 나영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와 함께한 자리에서다. 미묘한 세 명의 인연이 한자리에 모이고 나서야 해성은 조심스럽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과거 인연에게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해성은 나영을 현재이자 과거의 인연으로 남긴 채 나영에게 미래의 인연으로 재회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둘 사이 인연은 끊어진 게 아니다. 헤어짐 조차도 모두 인연이란 이름으로 묶인다. 미래의 인연을 약속한 이상, 해성과 나영을 잇는 보이지 않는 연결은 끊임없이 '과거의 삶'(Past Lives)이 되어 미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인연'(因緣)이다.
     
    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하고 친숙한 단어가 '인연'이지만, 어떤 하나의 명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을 뿐 인연이 가진 의미는 옷깃을 스치고, 그 옷깃을 붙잡아 관계를 맺는 모두에게 통용되는 단어다. 아서 역시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마음으로 느낀 감정들이 '인연'이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음을 나영을 통해 알게 된 것뿐이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제공관객들 역시 영화를 통해 자신이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모든 순간이 '인연'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감독이 남긴 울림으로 인해 인연이란 단어를 알았던 사람도, 몰랐던 사람도, 자신의 지난 인연과 현재의 인연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는 많은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전달하며 극찬을 받는 것일 테다. 이러한 점에서 '패스트 라이브즈'라는 영화와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 '패스트 라이브즈'의 진정한 시작은 어쩌면 무수한 인연과 관계의 연결을 곱씹게 되는, 영화관 밖을 나서는 순간인지 모른다.
     
    유태오와 그레타 리는 설레고 가슴 두근거리고 애틋하고 미묘한 감정을 눈빛과 작은 움직임, 말투 하나하나에 담아내 섬세하게 그려냈다. 왜 수많은 시상식에서 두 배우를 주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열연으로 인해 '패스트 라이브즈'의 메시지는 명확하게 전달된다.
     
    여기에 셀린 송 감독은 모든 사랑과 인연의 순간, 즉 보이지 않는 것을 세심하면서도 정교하게 포착해 필름 방식으로 스크린에 구현했다. 필름 특유의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성은 인연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왜 그가 첫 장편 영화로 수많은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고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또 오스카 후보로 지명됐는지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밖에 없다.
     
    106분 상영, 3월 6일 개봉, 12세 관람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메인 포스터. CJ ENM 제공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메인 포스터.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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