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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사과' 부른 이상기후…'물가 안정'으로는 해결 안돼



사건/사고

    '금값 사과' 부른 이상기후…'물가 안정'으로는 해결 안돼

    "사과 값 떨어질 땐 놔두더니 올랐다고 가격 잡으면 우리는 어쩌나" 답답한 농민들
    정부, 재원 투입-수입 확대하며 '물가 안정' 나섰지만…내년, 내후년에는?
    갈수록 심각해질 '기후 변화', 유난히 취약한 우리 농가 구조 해결 못하면 반복될 문제
    기후 변화 속 안정적 생산·유통 위한 중장기 대책도 함께 내놓아야

    서울시내 대형마트에서 채소, 과일 등을 구매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황진환 기자서울시내 대형마트에서 채소, 과일 등을 구매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황진환 기자
    "사과 가격이 올라도 어차피 물량이 없으니 소득이 안 따라줍니다. 언론과 다른 부분이 많아서 분통을 터뜨린 농가들이 많아요"

    "40년째 사과의 길에 들어간다"고 기자에게 자신을 소개한 사과생산자협회 이병욱 경북도지부장은 경북 봉화에서 사과를 키우고 있다. 9천 평 넘게 사과밭을 일궜던 이 지부장은 5년 전부터 농장 규모를 줄이기 시작해 과수원을 3분의 2 수준으로 줄였다.

    최근 '사과값이 금값'이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사마다 아우성이다. 사과 도매가격이 1년 만에 2배 넘게 뛰어올라 처음으로 10kg당 9만 원대를 기록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물가 안정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과 농부인 이 지부장에게는 남의 얘기처럼 들린다. 아니, 오히려 분통이 터지는 얘기다.

    "다른 물가들도 다 올랐잖아요. 커피만 봐도 한 잔에 4천 원, 5천 원씩 하는데, 이게 올라도 언론에 잘 나오지도 않는데 사과 가격이 오르니까 고물가의 주범이다, 이렇게 보도하는 것은 불공평하죠"

    이 지부장은 "전해에는 사과 가격이 좋지 않아서 사과 한 상자에 3만 원 안팎으로 가던 해도 있었는데, 이럴 때는 정부도, 언론도, 업계도 관심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모든 상품 가격이 오르기 마련인데, 유독 농수산물만은 가격이 오르기만 하면 억누르려 하니 속이 탄다는 것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아무리 땅에서 키우는 사과 농사라고 '땅 파서 장사'하랴. 농약도, 농기구도, 인건비도 모두 오르는데 사과 값만 잠잠할 리 만무하다. 이 지부장은 "6500평 사과 농사하려면 인건비에, 농약에 해마다 약 3천만 원씩 든다. 해가 다르게 인력도 부족하고, 인건비는 많이 오르면 5천 원에서 1만 원씩도 오른다"고 전했다.

    물론 이처럼 '금값 사과'로 가중된 소비자 부담을 정부가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늦봄으로 접어들어 다른 과일이 시중에 풀리는 5월 전후까지라도 치솟은 과일값을 잡기 위해 정부는 할인쿠폰 지원, 할당관세 품목 확대 등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과일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하는 일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반복될 '상수'라는 점이다. 바로 '기후 변화'가 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집계한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42만 5400톤으로 2022년 대비 25%가량 감소했는데, 지난해 여름 생육기 기상 악화와 병 발생으로 생산이 부진했다는 분석이다.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김한호 교수는 "지난해 기상 이변이 크게 왔다. 이런 이상 기후 현상 빈도가 잦아지니 이번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며 "지난해에는 개화기에 배 같으면 냉해, 사과 같으면 병해충 문제가 심각해서 생산량의 3분의 1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 과일 농업은 해외에 비해 유난히 기후 변화에 취약한 편이다. 최근 문제가 된 사과, 배만 해도 명절 제수용품처럼 특정 시기에 수요가 몰린다. 전국 농부들이 편향된 시장만 노리고 같은 품종을 재배하니, 기후가 급격히 변해서 냉해나 병충해가 휩쓸고 지나가면 단번에 생산량이 뚝 떨어진다.

    더구나 해외에 비해 농장 규모도 영세한 편이어서 가격이 급락하거나 생산량이 크게 줄면 견디지 못하고 과수원을 폐원하는 사례도 잦다. 당장 올해 사과 가격 급등현상의 배경에 2022년 전국 3만 4603㏊에 달했던 사과 재배면적이 지난해 3만 3911㏊로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가뜩이나 농업 인구가 감소하는 마당에 '기후 변화'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대책, 소비자와 농민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 없이 당장의 '물가 잡기'에만 골몰한다면 위와 같은 문제를 오히려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환경연합 최진우 생태도시전문위원은 "지금 정부 지원 정책의 상당수 예산은 관행적인 농법 기계화 또는 스마트 농업 쪽으로 치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 변화 속에 농가 현장에서 요구하는 해법에는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전문위원은 "자연에 덜 해를 끼치면서 변해가는 기후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친환경 농업 정책에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지부장은 "예를 들어 서리가 오면 선풍기 같은 방상팬이나, 안개 같은 물이 나오는 미세 살수가 도포되면 온도가 낮아지고 꽃 내부가 얼지 않아 (냉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농가도 큰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정된 생산량 속에서 적절한 가격이 형성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유통 과정에서 비용을 완화할 대책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과생산자협회 조장래 총장은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5배 정도 나는 상황이라 정상적이지 않다"며 "유통을 개인 기업에 맡기다 보니 가격이 비싸진다. 기업이 영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비쌀수록 이익이 남는데, 여기에 인센티브로 접근하는 방식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울러 "차라리 국가가 농협을 통해서 농민들로부터 직접 매집하는 형태가 된다면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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