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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1.5조 시한폭탄…"'바지사장' 사기, 국가는 책임 없나"



사건/사고

    '전세사기' 1.5조 시한폭탄…"'바지사장' 사기, 국가는 책임 없나"

    핵심요약

    [전세사기 특별법 사각지대②]
    '깡통전세' 계약 유도해 보증금 편취…채무는 '바지사장'에 떠넘겨
    임대인 한 명이 보증보험 수천 건 발급 '위험신호'에도 관리·감독 없어
    "현행법으론 '바지사장' 못 막아…개정 필요"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전세사기 특별법 100일…여전히 울부짖는 사각지대 피해자들
    ②'전세사기' 1.5조 시한폭탄…"'바지사장' 사기, 국가는 책임 없나"
    (끝)


    "한 평범한 직장인이 서울과 경기 일대에 200채 넘는 집을 샀습니다. 이게 정말 개인 간 거래(문제)입니까. 허술한 법과 제도는 책임이 없습니까. 전국에서 계속 터지는 전세사기에 정말 사회는 책임이 없습니까"

    '전세사기 특별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숨진 빌라왕 정모씨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30대 박모씨는 아직도 특별법으로 지원하는 '주택 구입자금 대출'을 받지 못했다.

    박씨가 사는 오피스텔은 업무용 시설이라 '주택'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은행에서 거절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직도 '피해자 구제'를 우선하기보다는 대출 지원의 문턱만 잔뜩 높여둔 정부 대책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깡통전세' 계약 유도해 보증금 편취…명의는 '바지사장'에 넘겨


    박씨는 2021년 이사할 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를 찾아갔다. 중개사는 '이자를 지원해 주겠다'며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신축 오피스텔을 추천했다. 그는 "건축주가 임차인을 빨리 구하고 싶어서 '프로모션'으로 대출 이자 1천만 원을 지원해 주고, 보증보험도 들어주니 걱정할 것 없다"며 박씨를 이끌었다. 전형적인 '깡통전세' 사기 수법이었다.

    전세사기는 주로 브로커가 세입자에게 신축 빌라의 전세보증금을 시세보다 비싸게 받는 '깡통전세' 계약으로 차익을 챙긴 다음 주택 소유권은 이른바 '바지사장'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박씨는 임대차 계약 때 "제주도 살고 바빠서 못 온다"던 집주인이 제주도에서 숨진 채 발견된 40대 바지사장 정씨였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로 뒤늦게 알게 됐다.

    바지사장 정씨는 분양가 2억 7500만 원짜리 신축 오피스텔을 단돈 100만 원으로 샀다. 잔금은 세입자인 박씨가 임대차 계약 당일 낸 보증금 2억 7400만 원으로 대신했다. 정씨가 이렇게 세입자들의 전세금으로 매입한 주택이 알려진 것만 240여 채에 달했다. 애초에 자기 돈으로 주택을 매입하지 않았으니 세입자들에게 돌려줄 보증금도 없었다. 피해자들이 경매에 참여해도 그새 집값이 떨어져 전세금을 회수하기도 어렵다.

    업계에서는 브로커들이 바지사장에게 명의를 빌려주는 대가로 빌라 한 채당 통상 200~300만 원 내외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사기 일당은 무직자나 기초수급자 등에게 '명의를 잠시 제공해 주면 저리 대출을 해주겠다'는 식으로 유혹해 바지사장을 구하고는 한다.

    서울 양천구에서 별다른 직업 없이 지내던 정모(36)씨는 2021년 3월 인터넷 대출 광고를 통해 연락한 오모씨로부터 '달콤한 제안'을 들었다. "신용대출을 6.9% 이율로 해주겠다"며 대신 "신월동에 신축 중인 오피스텔 소유권을 세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만 맡아달라"는 것. 정씨는 대출금 200만 원을 받고, 1억 9천만 원짜리 오피스텔 소유권을 넘겨받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전세사기에 가담한 '바지사장'이 됐다.

    이듬해 8월 해당 오피스텔에 살던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정씨 대신 세입자에게 갚은 보증금 등 1억 9천만 원을 상환하라고 정씨에게 요구해 왔다. 정씨에게 '오피스텔 소유권을 잠시만 맡아달라'던 오씨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임대인 한 명이 보증보험 수천 건 발급 '위험신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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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주택을 '깡통전세'로 만들어 놓은 전세사기 일당이 이토록 활개를 칠 수 있었던 데는 HUG의 '전세보증보험제도'도 한몫했다. 한 임대인이 수백 채에 달하는 주택의 보증보험을 발급하는 동안, HUG는 이들이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는지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심지어 HUG는 보증사고를 낸 임대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는 다른 임차인에게도 이 사실을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알려주지 않았다. 임차인은 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HUG가 침묵하는 동안 임대인이 다른 임차인과의 계약에서 보증사고를 낸 사실을 모른 채 재계약했다가 피해를 당하는 일도 잦다.

    3억 1500만 원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서울 동작구의 빌라에 살던 김모씨는 지난해 7월 임대인과 재계약하면서 HUG 보증보험도 연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HUG는 '임대인 귀책 사유'로 이를 거절했다. '임대인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설명도 없었다.

    이쯤부터 임대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불안해진 김씨가 보증보험을 이행해달라고 HUG에 청구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HUG는 지난 4월 "보증보험 기간이 너무 오래 지났다"며 보증금을 대신 갚아줄 수 없다고 입을 닦았다. 바로 전달까지만 해도 HUG는 "임대인에게 중도 해지 합의서를 받아오면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한가한 설명만 늘어놓았지만, 연락도 안 받는 임대인에게 김씨가 합의서를 받아오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문도 모른 채 보증보험 연장도, 보증보험 이행 청구도 거절당했던 김씨는 3개월이 지나 수사기관의 전화를 받은 뒤에야 임대인 황모씨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황씨와 그 가족의 명의로 된 주택이 500여 채에 달하며, 이들이 전세사기를 벌이고 있으니 피해 진술서를 쓰라는 전화였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을 운용하는 HUG는 전세금을 3번 이상 대신 갚아준 집주인 중 연락이 끊기거나 최근 1년간 보증 채무를 한 푼도 갚지 않은 사람을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를 따로 명단에 올려 관리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이 HUG로부터 제출받은 '전세보증보험 대위변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악성 임대인은 올해 7월 말 기준 344명으로, 7개월 만에 111명이 늘었다.

    HUG가 악성 임대인 대신 갚아준 전세보증금은 1조 5769억 원에 달했다. 심지어 이들에겐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드러나지 않은 채무도 지난 4월 기준 1조 5005억 원이나 된다. 특히 악성 임대인 상위 10명 대신 갚아준 전세보증금만 5039억 원으로, 이들 10명에게 2574세대가 피해를 봤다.

    홍기원 의원은 "보증가입 시 발급수 또는 금액 제한을 통해 임대인의 가입 기준을 강화해 악성임대인 양산을 방지하고 임차인 보호를 위해 전세계약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보증보험가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달 29일부터 개정된 주택도시기금법이 시행되면 이들 악성 임대인의 이름이 공개된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고, 임대인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최종 결정도 거쳐야 하니 실제 명단이 공개돼 임차인들이 확인할 때는 올 연말쯤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현행법으론 '바지사장' 못 막아…개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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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책이라며 내놓은 특별법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근본 대책을 더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증금 반환 능력과 의사가 없는 '바지사장'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주택세입자 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운영위원장인 김태근 변호사는 "임차인 보호를 위해서 새로 바뀐 법에 소유자가 전세금 반환 채무가 있다면 새로 바뀐 소유자가 소유권을 승계한다는 규정이 들어가 있다"며 "이를 사기꾼들이 악용해 바뀐 소유자가 전세금 반환 책임을 승계하니까 바지사장을 내세워서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기존 채무자의 책임을 면하는 '면책적 채무' 승계 방안이 아니라 기존의 채무자와 나중에 승계한 제3자(바뀐 소유자)도 병존적·중첩적으로 같이 책임을 지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과 제도상 임대인이 '바지사장'으로 바뀌어도 세입자는 관련 정보를 통보조차 받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임대인이 바뀔 때 임차인에게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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