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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만 하면 감형?…대법원장 후보의 '낡은' 젠더관 논란



법조

    반성만 하면 감형?…대법원장 후보의 '낡은' 젠더관 논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성범죄 줄감형…젠더의식 현실과 괴리
    여성계는 "문제적 판결 내린 후보"…한목소리 비판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류영주 기자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류영주 기자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과거 성폭력 사건에서 합의와 반성 등을 이유로 잇따라 형을 낮춰준 것으로 드러나 '젠더 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자질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법관들만 잇따라 임명하면서 사법부가 정통 엘리트 법관으로만 채워지고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면 향후 성 관련 판결에 있어서도 급격하게 보수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관대한 판사님…성범죄 감형 이유는 "반성해서"

    8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 후보자는 2020년 8월~2021년 2월 총 26건의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 중 13건에 대해 피고인의 형량을 줄였다(출처: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실)

    이 후보자의 '줄감형'은 성범죄 몇 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성폭력 전담부인 서울고법 형사8부 재판장 재직 시절 1심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의 상당 부분을 줄여왔다.

    예컨대 또래 피해자의 성기에 신체 일부를 넣는 행위를 하며 이를 촬영해 유포하고 또다른 피해자의 옷을 강제로 벗겨 추행한 미성년자인 A군에 대해서는 징역형 집행 유예를 선고했다. 징역 장기 2년에 단기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대폭 감형한 것이다.

    가정폭력을 일삼다 아내의 배를 발로 밟아 사망하게 한 남편에 대해서는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여성에게 향정신성 알약을 탄 음료를 먹인 뒤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피고인도 감형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이 피고인은 동종범죄 전력도 있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감형 이유 역시 "범행 당시 14세에 불과한 중학교 3학년의 정신적·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소년으로서 잘못된 성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범행을 저지르게 됐고,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다", "남편이 아내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모르고 평소처럼 폭력을 썼다고 볼 여지가 있다", "알코올 사용 장애 등 건강상의 이유가 있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 등이었다.

    감형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범죄 전반에 있어 이 후보자는 전근대적인 인식을 견지해 왔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 재직 시절 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는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사건 당시 경찰은 범죄 현장으로 출동해 놓고도 '범죄 정황이 없고,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해 현장 진입을 하지 않았다. 피해 여성은 숨진 상태였다.

    이 후보자는 "범죄 정황을 확인하지 못하자 현장을 떠난 것이 최선의 조치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범죄가 저질러진 주거에 강제로 진입해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그 뒤 항소심 재판부는 이같은 이 후보자의 판결을 깨고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2009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젠더 갈등은 고조되는데…성폭력 본질 이해 못하는 대법원장 후보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연합뉴스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연합뉴스
    이 후보자의 이같은 인식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잇따르고 등산로 성범죄 살인 사건 등 흉악범죄까지 다시 등장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성범죄 관련 법제도들이 정비됐지만 이에 따른 반발(백래시)도 거세지면서 젠더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 상태다.

    이 후보자를 지명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무고죄를 신설하겠다고 하는 등 피해자를 외면하는 듯한 공약을 내놨고, 취임 후에도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듯한 정책을 잇따라 내놓아 성평등을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범죄에 유독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온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 취임한다면 사법부마저 이같은 정부 기조에 편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부부 간 성범죄 판결 등 대법원은 성범죄와 관련해 상식적인 판결을 제시해 왔다"면서 "이런 분위기에서 성범죄 사건 관련 문제적 판결을 했던 사람이 대법원장이 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계에서는 이 후보자가 내세운 감형 이유가 더 큰 문제라는 인식도 크다. 남성의 성욕이나 충동이 성폭력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가해자 위주의 인식이라는 것.

    최나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이 후보자가 미성년 소년의 성적 충동을 감형 사유로 밝힌 것에 대해 "남성의 성적 충동은 참을 수 없는 것이고 충족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를 지속시키는 원인인데, 이 원인을 근거로 오히려 감형을 했다는 것은 성폭력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 후보자의 이같은 '낡은' 젠더 인식이 대법원장으로서의 자질 부족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중앙대학교 이인호 헌법학과 교수는 "특정 사안에서 어떤 양형 요소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는 외부에서는 알 수 없고, 양형은 그야말로 법관의 재량"이라며 "법관이 나름대로 실체를 파악해 결정한 것과 대법원장으로서의 자질을 엮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대법원장이 바뀐다고 해서 대법원 판결 경향이 일시에 뒤집힌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3개로 나뉜 소부 판결은 물론, 전원합의체에서도 대법원장이 나머지 12명 대법관들을 찍어누르듯 의견을 내지는 못한다. 이 교수는 "대법원장이라 해도 판결에서는 '13명 중에 1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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