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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국가폭력 피해자에 여전히 무죄구형 아끼는 검찰



법조

    [법정B컷]국가폭력 피해자에 여전히 무죄구형 아끼는 검찰

    남영동 대공분실서 불법구금·고문 피해
    "검찰·법원, 시혜적 '무죄' 아닌 반성 필요"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주]

    2020.8.14. 서울중앙지법 '서울대 무림사건' 재재심 결심공판 검찰 구형
    재판장 "변호인 측이나 검찰 더 (말씀) 하실 게 있습니까? … 검찰 의견 말씀하시죠."
    검사 "본 사건에 대한 의견은 서면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모습 (사진=연합뉴스)

     

    영문도 모르는 채 경찰에 체포돼 한 달이 넘게 고문을 당하고 3년간 수감생활까지 한 지 40년. 이번에도 국가는 피해자 앞에서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이관용 부장판사)는 1980년 '서울대 무림사건'의 피해자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박용훈(민청학련 민사재심추진위원)씨의 반공법 위반 재심 결심공판을 진행했습니다.

    '부림사건'은 영화 '변호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무림사건은 생소하실겁니다. '무림'은 서울대 학내운동 세력들의 연합을 칭하는 말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전두환 일당의 12·12 쿠데타 1년을 맞아 1980년 12월 11일 학내에서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이를 '외부 사주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고 학생들을 대거 불법연행·구금·고문하면서 무림사건이란 별칭이 붙었습니다.

    서울대 국문과 77학번이었던 김 교수는 당시 시위에서 5.18 광주 항쟁의 정신을 계승해 군부독재를 타도하자는 내용 등이 담긴 '반파쇼학우투쟁선언문'을 직접 썼습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73학번인 박씨는 앞서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제적됐다가 1980년 3월에 복학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다시 체포됐고 이들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2020.8.14. 서울중앙지법 '서울대 무림사건' 재재심 결심공판 최후진술
    김명인 "저는 오늘 유무죄를 다투는 피고인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를 제가 원고로서 피고인 대한민국 국가의 죄를 묻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40년 전 대한민국 국가는 한 국민을 상대로 불법연행과 고문, 그리고 3년간의 강제 인신구속 및 범죄자 낙인찍기 등 씻을 수 없는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제주 4.3사건, 한국전쟁기, 광주 5.18민주화운동에서의 끔찍한 집단적 양민학살들만이 국가폭력이 아니라 이 사건과 같이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자유를 압살하는 행위 역시 국가가 가해자로서 피해자들의 삶 전체를 유린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국가폭력입니다."

    김 교수가 체포된 날짜는 1980년 12월 16일이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1981년 1월 19일이었습니다. 35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으로부터 구타와 잠 안재우기, 물고문 등에 시달리며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던 것이죠. 박씨 역시 연행된 날짜는 1980년 12월 25일이었지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26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2020.8.14. '서울대 무림사건' 재재심 결심공판 후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김명인 "처음 시경에 끌려가서 밤낮없이 정말 죽도록 맞았죠. 이후에 치안본부로 갔더니 이근안이 처음 나를 맞이했는데 '이놈들 정말 무식하게 했구마' 그럴 정도였다고. …(중략)… 이근안이 나를 기소의견으로 넘긴 날 밤에 치킨을 사줬어요. 생전 처음으로 프라이드치킨을 먹어봤지. '이건(고문) 자기 일이니까 유감 갖지 마라. 개인적인 유감은 없다'고 하면서 사준거야. 내가 (검찰로) 나갈 때 두 가지를 말하더라고요. '너 내가 보면 10년 이상 (감옥에서) 살 것 같은데 그때까지 내가 아마 있을거다. 그때 날 찾아오면 여기 삼각지에 도가니탕 잘하는 집이 있으니 사주겠다'고. 자기가 관절꺾기를 하고 그랬으니 도가니가 관절에 좋다면서 하는 얘기였죠.(웃음) 또 하나는 장기수들을 위한 운동법이 있대요. 고문 회복에 좋다며 좁은 감옥 방에서 할 수 있는 운동법을 알려주더라고요."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교수는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각종의 다발성 면역질환과 대장암,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등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이날 최후변론에서도 "매년 5.18 기념일이나 4.16 세월호 사건 추모일 같은 국가범죄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날들이 오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고 호소했습니다.

    박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최후변론에서 박씨는 "처음엔 (구직) 서류를 넣을 수조차 없었다"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엔 이미 나이가 많아 정상적인 구직 활동이 불가능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두 번의 수감생활과 대학 제적·복학을 반복하며 박씨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특히 박씨는 "제가 수괴라는 소문까지 났는데 부끄럽게도 저는 이 무림사건에 나오는 사람 전체가 인정하듯 무림사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잡혀갔다"고 말합니다. 그가 체포된 근거는 겨울방학 중 전공과목 공부를 위해 집에 가져다 둔 '태평천국의 난' 등 서적과 이전 구속 이력이 전부였다는 겁니다.

    계엄법 위반과 반공법 위반(불온서적 소지) 혐의로 김 교수는 징역 3년·자격정지 3년, 박씨는 징역 1년 6월·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근안의 말대로 '징역 10년 이상'의 대규모 공안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됐지만 5.18 광주 항쟁의 여파가 커지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식 취임이 진행되면서 다소 급하게 사건이 마무리 된 것으로 보입니다.

    2020.8.14. 서울중앙지법 '서울대 무림사건' 재재심 결심공판 최후진술
    김명인 "대한민국 국가와 사법부가 저지른 잘못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이 전두환 일당의 국가변란 행위에 대한 민주시민들의 정당한 저항행위로 판명된 이후 1999년 본인 등이 청구한 재심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계엄법 위반죄에 관해서는 무죄를, 반공법 위반죄는 선고유예를 선고하고 대법원에서는 이를 확정했습니다. 여전히 국가폭력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평생의 고통을 남겨주는 잘못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번 재판은 김 교수와 박씨에게 벌써 두 번째 재심입니다. 이들은 1999년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상 특별재심을 청구해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불온서적 보유'는 5.18민주화운동이나 전두환 정권 저지·반대 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특별재심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반공법 위반에 대해선 유죄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은 과거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검사 직권으로 재심청구를 하고 '백지구형'이 아닌 '무죄구형'을 하겠다고 꾸준히 강조해왔습니다. 재판부에 유무죄 판단을 떠넘기며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보단, 과거 국가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하는 의미로 피해자의 무죄를 적극 주장하겠다는 취집니다.

    실제로 검찰은 '과거사 재심사건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무죄구형도 실천하고 있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의 멍든 가슴을 치유하기엔 한참 부족해 보입니다.

    이날 구형을 미룬 것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의 선고기일이 한 달 후로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수사부서와 구형에 대해 협의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피해자이지만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김 교수와 박씨는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해달라는 구형을 하지 않겠냐"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김 교수는 "오늘 이 자리가 저의 무죄가 마치 우는 아이 떡 하나 주듯이 마지못해 입증되는 소극적이고 시혜적인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야만적 폭력 행위를 적극적으로 증거하는 정의 회복의 자리이길 바란다"며 "그때 그 폭력을 행사 또는 방조한 모든 주체들이 어두운 과거를 올바로 성찰하고 반성함으로써 다시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최후진술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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