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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 60대 노인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까닭은?



법조

    '아내 살해' 60대 노인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까닭은?

    "주거 제한해 계속적 치료하는 게 헌법과 조화 이뤄"
    지난 2018년 11월 흉기로 아내 살인한 혐의로 기소
    2019년 4월 1심에서 징역 5년…양형부당으로 항소
    지난해 2심 재판부, '치료적 사법' 일환으로 보석조치
    변호인 "모두의 적극적 협조로 가능했던 전향적 판례"

    10일 오전 경기도 고양의 한 병원에서 휠체어를 탄 아내살해 치매노인이 병원에 마련된 항소심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아내살해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치매노인이 치료를 목적으로 항소심 선고공판을 법원 재판정이 아닌 병원에서 진행한 것은 '치료적 사법'의 첫 적용 사례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소재 한 병원 5층에서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통원치료 환자들이 머무는 4평 남짓한 공간에 법복을 입은 판사 3명과 검사가 등장하더니 이내 피고인과 가족, 변호인이 참석한 가운데 '형사재판'이 열린 것이다.

    특이하게도 형사재판이 병원에서 열린 이유는 피고인이 현재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날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68)씨의 항소심 선고를 진행했다.

    이씨는 검찰의 구형과 변호인의 최후변론이 이뤄진 뒤 마지막 발언기회가 주어지자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 ...법원 아닌가? 현실에 충실하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흰색 환자복 차림에 신종 코로나 유행 탓에 흰 마스크까지 착용한 이씨는 휠체어를 탄 채 줄곧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응시했다.

    이에 앞서 검사는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우리 형사제도라는 게 어떤 범행에 대해서 처벌하고 사회를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이기에 검사로서 개인적 감정보다도 어떤 국가의 기능과 국민 보호하기 위한 입장에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70세 (가량인) 피고인 나이상 정신적 인지기능, 판단능력은 고려해야 하지만 구체적인 운동능력에 있어 새로운 피해자를 발생시킬 수 없을 정도의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원심과 같은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오전 10시 38분경 시작된 선고공판은 약 20분간 이어진 뒤 재판장의 선고만을 남겨놓고 잠시 휴정했다.

    검사는 이씨의 옆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아들이 '괜찮으시냐'며 아버지의 동태를 살피자 그에게 다가가 "아버님이 언제부터 치매가 오셨나"라고 물었고 "7~8년 전부터 젊으셨을 때 (치매가) 오셨고 약주를 많이 하셔서 그걸로 좀 빨리 오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지난 2018년 11월 아들 집에서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아내 조모씨(당시 65세)를 수차례 구타하고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지난 2013년부터 이미 치매 증상을 보이던 A씨는 아내가 자신의 물건을 가져간다며 잘 때도 겉옷과 양말을 모두 착용하는 등 이상행동을 자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고 같은해 6월 항소심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부는 당시 구치소 수감 중이던 이씨가 면회를 온 딸에게 "왜 엄마(이씨의 아내)와 함께 오지 않았냐"고 묻는 등 치매 중증에 해당하는 증상을 보이자 '재판의 신속한 진행보다는 적절한 치료가 우선'이란 취지로 치매환자에 대한 국내 첫 보석을 직권으로 결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법원의 공판기일 출석 외 이씨의 외출을 일체 금지하는 한편 주거지를 치매전문병원으로 한정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또 이씨가 입원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는 재판부가 직접 병원을 방문해 이씨의 상태 등을 점검하는 동시에 해당병원으로부터 1주에 한 번씩 이씨의 현 상황을 기록한 보고서를 제출토록 조치했다.

    재판부는 선행된 보석 결정과 같은 맥락에서 이씨의 '범죄'보다 '치료'에 초점을 맞춰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기간인 5년간 '특별준수사항'으로 주거지를 병원 내로 제한한 보호관찰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결과가 중대해 엄한 처벌을 해야 마땅하나 피고인은 범행 당시 치매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가 범행 후 더욱 악화돼 중증의 알츠하이머 치매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한편 피고인의 자녀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자녀들은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사는 치매환자를 위한 감호시설이 없어 감호 청구가 어렵다고 답변한 바 있는데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절대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피고인에게 교정시설에서 징역을 집행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정당하단 평가를 받기 어렵다"며 "실형 선고보다 치료명령과 보호관찰을 붙인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피고인의 주거를 치매전문병원으로 제한해 계속적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진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오늘 판결 선고로 항소심 재판절차는 끝났지만 피고인과 가족에게는 오늘(로서) 모든 사법절차가 끝나는 게 아니라 치료를 위한 '치료적 사법' 절차가 계속됨을 명심해야 한다"며 "즉 5년간 수감 대신 치매전문병원에서 치료받는 생활을 해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집행유예가 취소돼 교도소에 다시 수감될 수 있다"고 이씨 가족들에게 각별히 당부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한편 이씨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변호사 김모씨는 판결 직후 "법원과 검찰, 피고인의 가족들 그리고 치료병원의 적극적 협조와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전향적 판례"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씨는 "치매에 대한 치료의 필요성은 1·2심 재판부 모두 인정했지만 1심은 징역형인 실형을 선고하면서 유리한 양형사유로만 치매를 참작해 선고받은 형기를 마쳐 형사적 책임을 다하고 치매에 관한 치료는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봤다"며 "항소심에서는 치유사법을 통해 치매에 관한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치료 경과를 관찰해서 양형에 반영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은 치매로 인한 심신장애상태 아래 범행한 것으로 재범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만큼이나 치료가 중요하고, 담당의사 소견으로는 (이씨가 입원 후) 치매에 의한 공격적 성향이 많이 감소됐다고 한다"며 "변호인으로서 초기에는 살인이라는 큰 죄를 저질렀는데 징역형 선고가 타당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재판부나 피고인 가족들의 적극적 노력에 같이 감동했고, 보다 밝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돼 보람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재판부가 강조한 '치료적 사법(Therapeutic Jurisprudence)'이란 피고인의 처벌보다 문제 해결(problem-solving court)에 방점을 찍은 사법체계 내지 사법부의 결정방식을 이른다.

    이는 정신장애적 특성을 가진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법처리 단계에서 치료적 조치 제공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와 무용한 형사처벌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 캐나다, 영국, 호주, 독일 등의 선진국에서는 '치료적 사법'이 확산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심 재판부였던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지난해 4월 이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이씨의 상태를 고려해 실형 선고여부 관련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재판부는 치료감호소로부터 이씨와 같은 치매환자의 경우는 치료감호를 통한 개선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은 뒤 "향후 정신 질환에 대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질병으로 장기간 수감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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