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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커지는 인헌고…"정치교육 본질 고민하는 계기돼야"



사건/사고

    갈등 커지는 인헌고…"정치교육 본질 고민하는 계기돼야"

    학교 측 '정확한 사실관계'라며 홈페이지 통해 반박…학생들은 의견 갈려
    수호연합 "교사가 사상독재" vs 가온연합 "수호연합 측이 과장"
    갈등 깊어지자 불편함 호소하는 학생도
    서울교육청 "특별장학 진행, 곧 결과 나와"
    전문가 "학교에서 적극적인 정치 교육 고민할 시점"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열린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 소속 학생들의 기자회견에 많은 보수단체 회원 및 보수 유튜버들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인헌고 일부 교사가 '편향적 정치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해당 학교에서 사실관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교사들에게 사상 주입을 당했다'는 문제제기로 시작된 '인헌고 사태'가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또 다른 단체 결성으로 이어지면서 내부 갈등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학생들을 분열시킨 과열 논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건전한 정치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 수호연합 "교사가 사상 독재" 주장 vs 일부 학생 "왜곡됐다" 가온연합 결성

    지난 23일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수호연합)' 학생들은 서울 관악구 인헌고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사들은 학생을 정치적 노리개로 이용하지 말고, 학생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앞선 17일 경기도 과천에서 열린 학교 마라톤 행사에서 한 교사가 '일본의 경제침략 반대한다'고 외치고 학생들에게 따라하도록 한 점을 문제 삼았다.

    또 수업시간에 다른 교사가 학생에게 '너 일베니'라고 묻거나, 교사가 교실에 모여 있는 수호연합 학생들을 해산시킨 사례 등을 제기하며 '사상독재'라고 주장했다. 교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입을 틀어 막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마라톤의 경우 매년 주제를 선정해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올해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기 때문에 주제를 '나라사랑'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는 심정으로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구호나 그림을 기록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현 시국과 관련한 '반일 메시지'가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외칠 때 강요는 없었고 자유롭게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학교 측은 교사의 '너 일베니'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해당 교사가 수업 시간에 자주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고, 이후 해당 학생은 물론 교실 전체 학생들에게도 모두 사과를 했다고 밝혔다.

    '교사가 수호연합 모임을 해산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학년과 반이 다른 30여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모임을 하자 원래 해당 교실을 사용하는 학생이 교무실로 와 교사에게 이를 알렸고, 교사가 반으로 가서 '불편함을 느끼는 학생이 있다'고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학교 측과 수호연합 학생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헌고등학교 학생가온연합(가온연합)'이 결성됐다.

    이들은 "수호연합이 학생들의 의견을 지우고 언론에 거짓을 과장해서 보도한 점, 사실과 다른 왜곡된 부분들을 정정해 바로잡고자 한다"며 학생들에게 제보를 받아 페이스북을 통해 알리고 있다.

    학생들 간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으면서 일반 학생들은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교길에서 만난 한 인헌고 2학년 학생은 "(인터)넷 상에서 의견이 달라서 싸운다.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는 것 같다"며 공부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 전문가들 "고등학교 정치 무풍 아냐, 건강한 정치교육 방향 고민하는 계기 돼야"

    전문가들은 진실 공방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학교에서의 정치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우리는 고등학교가 정치 무풍지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일제강점기나 4.19를 돌아봐도 중고등학생들이 정치 참여를 해왔다"면서 "이번 사태는 학생들의 정치적 감수성이 커졌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최근 전체적으로 정치의식은 이전에 비해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고, 이는 진보·보수를 떠나 점점 더 커질 것"이라며 "이제 정치 교육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교사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과 이를 학생에게 강요하는 것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국외대 교육학과 김용련 교수는 "교사도 인간인데 (정치적) 견해를 갖지 못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며 "교사의 정치적 편향이 문제가 아니라, 교사가 (사고가) 닫힌 상태에서 권위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유럽은 교사들이 노조 파업을 할 때 이를 동조할지를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한다. 교사들이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조국 사태에 대해 본인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됐지만, 그에 대한 논쟁을 해보자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같은 모델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서독의 보수와 진보 학자들이 모여 정립한 교육지침으로 이념과 정권에 치우치지 않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

    좋은교사운동의 조창완 정책위원은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본래 정신은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정치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스스로 사회에 대한 인식과 덕목을 갖추도록 사회 쟁점에 대한 수업을 더욱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태가 확산하자 교육 당국은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2일부터 이틀 동안 총 22명의 장학사가 인헌고를 방문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문제를 제기한 학생을 면담하는 등 특별장학을 실시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조사를 토대로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조만간 결정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장학 결과 교육 과정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인헌고는 감사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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