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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위기> 빚탕감은 EU규약 위반?…우회로 있다



국제일반

    <그리스위기> 빚탕감은 EU규약 위반?…우회로 있다

    • 2015-07-10 22:27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9일 그리스 채무와 관련해 종전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발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나로서는 '고전적' 헤어컷(부채탕감)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해 '고전적'인 아닌 다른 방식의 탕감은 가능함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부채 규모를 줄여주지 않으면 그리스가 빚을 갚으며 경제를 되살리는 일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이 타당하다고 처음 시인했다.

    물론 메르켈은 "입장이 달라진게 없다"고 강조했고, 쇼이블레는 "빚 탕감은 유럽연합(EU) 법규 위반이어서 불가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독일이 '타협의 뒷문'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IMF 견해엔 유로존 정상들도 내심 공감하는데다, 그리스를 EU 내에 살려두라는 미국 등의 국제적 압력도 가중되고 있다. 독일로서도 어떤 식으로든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탕감은 EU 법규에 위배된다'는 부분도 우회할 수 있는 '법적 여지'가 있다. 전례도 있다. 결국 독일 정부를 비롯한 EU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이 관건이다.

    쇼이블레가 언급한 문제의 법규는 EU의 헌법에 해당하는 리스본조약의 125조다. 이 조항은 "(유럽)연합은 중앙정부들의 책무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다른 회원국의 부채를 떠맡는 일을 불법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구제 금지 조항(no bailout clause)'으로 불린다.

    그러나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유럽정책센터(EPC)의 한스 마르텐스 소장은 2010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조항은 특정 회원국이 EU의 경제 법규들을 지키지 않을 경우 EU가 구제해주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구제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안해줘도 되는 '구제 면책 조항'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0년 그리스발 유로존 금융위기 이후 EU는 결국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해줬고, 그리스가 약속을 못지켰어도 계속 도와줬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 중 하나가 조약 122조다. 이 조항은 "회원국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자연재해 또는 자신의 통제력을 벗어난 예외적 사건들로 인해 발생한, 심한 어려움으로 심각하게 위협받는 경우 카운슬(EU 회원국 정부회의체)은 집행위의 제안에 따라 특정 조건 하에 해당 회원국에 금융지원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조항에서 '통제력을 벗어난 예외적 사건들'이 무엇이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 수 있다.

    하지만 EU와 유로존의 존립, 지속가능한 재정안정 같은 더 큰 목표 앞에서 이런 논란은 얼마든지 무시될 수 있다.

    게다가 EU나 회원국이 그리스에 직접 구제금융을 주지 않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제공하면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

    회원국이 출자한 구제금융기구인 유럽재정안전기금(EFSF)과 이를 승계한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 등이 '우회적 기구'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선 ESM 등이 EU 조약과 독일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위헌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독일 헌재는 그러나 ESM이 합법적이라고 결정했다. 독일 헌재는 또 유럽중앙은행(ECB)의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OMT)과 관련해서도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끝에 합헌으로 판정했다.

    현재 그리스는 IMF, ECB, EFSF, ESM 등 법적 위치가 각기 다른 수많은 채권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 가운데 중앙은행인 ECB가 가진 180억유로 규모의 그리스 국채 헤어컷 등은 실행하기 어렵다. 법규 상 중앙은행이 직접 파이낸싱 해줄 수 없어서다.

    그러나 ESM의 경우는 다르다.

    프랑크푸르트 소재 법무법인 앨런&오버리의 파트너 카이 샤펠후버는 로이터통신에 "ESM이 보유한 그리스 채무를 면제해주는 것에 법적 제한은 없다"고 밝혔다. ESM은 리스본 조약에 언급된 '(유럽)연합'이 아닌 별도 국제기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ESM이 지금까지 빌려준 돈이 1천418억 유로에 달한다. ESM이 채무를 (일부) 탕감해줄 경우 그리스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들이 실제 탕감을 해주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거나 다른 채무국들도 같은 요청을 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 만은 아니다. 자국 유권자들의 반대 여론을 극복하기 쉽지 않아서다.

    독일 헌재는 2014년 ESM조약을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독일 의회가 비준 거부권과 충분한 감독권을 갖고 있고, 독일 납세자들이 질 부담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9일 IMF 견해가 맞다면서도 "우리의 재량권이 매우 작다"고 덧붙인 것도 이런 점들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구제금융 협상 과정들을 살펴 보면 공식적으론 강경한 발언이나 '최후통첩' 등의 단어가 난무했어도 결국 타협점을 찾아 왔다.

    이번에도 독일 등은 일단 협상용의 강경발언을 하지만 '고전적' 탕감이 아니더라도 '사실상 탕감 효과를 낼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 정부가 기존 채무협상안보다 더 혹독한 개혁안을 채권단에 제출한 점도 독일 등의 타협 입지를 넓혀줬다.

    이에 따라 특정 조건을 붙여 일정액의 채무탕감을 해주거나 적어도 매우 먼 후일로 상환기일을 연장해주는 등의 채무재조정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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