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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희생'…미국의 '민낯' [워싱턴 현장]



미국/중남미

    이민자의 '희생'…미국의 '민낯' [워싱턴 현장]

    미국 국회의사당. 최철 기자미국 국회의사당. 최철 기자'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뜻이다.
     
    미국을 '이민자의 나라'라고도 부르는데, 이 표현 역시 '아메리칸 드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미국은 유럽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였고, 이후 세계 곳곳에서 유입된 이민자들이 저마다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미국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성공을 향한 이민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미국을 부강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고, 문화적 다양성은 미국을 보다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출신 지역과 인종에 따라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위치와 계층이 나눠졌고, 갈등도 뒤따랐다. 
     
    올 가을 치러지는 미국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도 남부 국경 문제, 즉 남미계의 불법 이민과 관련이 있다. 
     
    연합뉴스연합뉴스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자의 피'가 미국을 더럽힌다"고 말했다. 이민자를 달가워하지 않는 보수 백인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을 학살하고 미국을 세웠지만, 아무도 대놓고 그들을 향해 '더러운 피'라고 부르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출신지역과 인종을 불문하고 존재한다. 그렇기에 '더러운 피'는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말인 것이다. 
     
    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 최철 기자도로 보수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 최철 기자워낙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어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미국은 곳곳에서 365일 내내 도로 보수 공사가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풍으로 떨어져 나간 신호등을 교체하고, 도로 곳곳의 포트홀(pot hole) 보수작업도 늘상 있는 일이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자칫 대형사고를 부를 수 있는 위험요소들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열에 아홉은 남미계이다. 
     
    무너진 '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 최철 기자무너진 '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 최철 기자지난 26일 새벽 무너진 '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 사고는 미 언론들이 연일 톱뉴스로 다룰만큼 미국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졌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어렸을 때 만들어졌던 다리가 갑자기 사라진 모습을 보니, 내 인생 자체가 없어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했다.
     
    새벽 시간에 일어난 사고였고, 문제의 화물선이 사전에 긴급 구조 신호를 보내 신속하게 도로 통제가 이뤄진 탓에 다리 위를 달리던 운전자들의 사망은 없었다.
     
    하루 3만5천대의 차량이 이 다리를 이용했다고하니, 이곳을 지나쳤던 수많은 운전자들도 가슴을 쓸어내렸을 법하다.
     
    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 최철 기자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 최철 기자하지만 다리위에서 도로 보수 작업을 하던 6명은 대피하지 못하고 강물로 떨어져 생사를 달리했다.
     
    도로 보수 업체 브라우너빌더스 소속 노동자들인 이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에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해 밤새도록 힘든 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브라우너빌더스의 프리츠커 부사장은 "그들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훌륭한 인격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숨진 사람 중 한명인 미구엘 루나씨는 세 아이의 아빠였고 19년동안 메릴랜드에서 살았다. 그는 엘살바도르 출신이었다. 
     
    온두라스 출신의 산도발씨는 18세의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이 있었다. 2명의 과테말라 출신과 2명의 멕시코 출신 노동자도 실종자 명단에 들어있었다. 
     
    이들은 모두 더 나은 삶을 위해 남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기반이 없기 때문에 종종 이민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원치 않는 힘든 일, 즉 최저 임금과 최악의 조건 아래에서 육체 노동을 한다. 
     
    일부는 자녀와 손자들이 미국땅에서 더 낳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있다. 이보다 훨씬 많은 이민자들은 번 돈을 고스란히 자신의 고향으로 보낸다. 
     
    실제로 멕시코 중앙은행에 따르면, 멕시코 이민자 노동자들은 2023년 한해에 600억달러(약 81조원) 이상의 돈을 자국으로 이체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연 이들에게도 '더러운 피'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무너진 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를 재건하는데 약 1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재건 사업에 동원되는 사람은 이민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정치인들은 득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싶으면 '갈라치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갈등 조정과 중재가 우선이라는 말이다. 손가락질 보다는 포용에 더 가까운 말이다. 
     
    미 대선이 가까워지고, 남부 국경 문제가 더 큰 이슈가 되더라도 '프란시스 스콧 키 브리지' 실종자들의 희생이 기억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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