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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특수'로 몸집 키운 지방의대…지역의료 강화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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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증원 특수'로 몸집 키운 지방의대…지역의료 강화로 이어질까

    핵심요약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공언대로, 앞으로 늘어날 의대정원 2천 명은 82%(1639명)가 비수도권의 몫이 됐습니다. 표면상 명분은 충족했지만 '디테일'을 들여다보면 연결고리가 많이 헐겁다는 비판입니다. 지방의 장기근속을 유도할 지역인재 선발과 지역필수의사제 모두 '강제성'이 없고, 증원 특수를 누린 상당수 대학이 '인재 블랙홀'인 수도권에 수련병원을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정원 증원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정원 증원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지난 20일, 내년도 전국 의과대학 정원 '2천 증원'을 확정한 정부는 비수도권에 무려 82%(1639명)를 배정했다. 나머지 18%(361명)도 경인지역 '미니의대'(정원 50명 이하)의 몸집을 키우는 데 배분됐다. 지역 환자들의 상경진료가 일상화된 서울은 '0명'이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라는 명분을 일정 충족한 것이다. 
    지역 필수의료의 중추로 삼겠다며 강원대·제주대를 제외한 거점 국립의대 7곳의 정원도 총 200명까지 늘렸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역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을 높여 의료약자뿐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 살든 국민 누구나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배정 원칙을 설명했다. 조규홍 복지장관도 입시 단계부터 전문의 배출에 이르기까지 전(全) 주기에 걸친 지역의사 확보대책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의대 확대를 전폭 지지했던 시민사회계에서조차 정부 정책이 "무늬만 지역·필수의료 의사 확대"라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정부가 의과대학별 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하고, 교수들과 의사회 등은 사직서 제출 결의 등 집단 대응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21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대한의사협회가 만든 의대정원 증원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의과대학별 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하고, 교수들과 의사회 등은 사직서 제출 결의 등 집단 대응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21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대한의사협회가 만든 의대정원 증원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우선 지방 의대를 나왔다고 고스란히 그 지역의 의사로 남진 않는다는 함정이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2023년 지방의대 졸업생 1만 9408명 중 거의 절반 가까이(46.7%·9067명)가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소재 수련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마친 것으로 파악됐다.
     
    의사면허 취득 후 전문의가 되기 원하는 비수도권 의대 졸업생들은 그만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 유출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경북은 해당 기간 관내 의대 졸업생의 9할(448명 중 403명)이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 대부분(97.5%·9158명 중 8926명)이 수도권 소재 병원에서 인턴을 한 것과는 선명히 대조된다.
     
    지방에서 길러낸 의사들도 '빅5' 등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배경엔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지역병원의 수련 TO(정원)와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 열악한 정주여건이 있다.
     
    때문에 지역 의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입학생을 뽑을 때부터 해당지역 출신 학생을 의무 선발하는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도 지방의대 신입생의 40%를 지역 인재로 채우게 한 현행법상 기준을 '60%'까지 상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배정안을 발표하며 대한의사협회의 관련 연구('의사 지역근무 현황 및 유인·유지 방안')를 근거로 인용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비수도권 의대를 나온 의사들은 지방에 근무할 가능성이 2배 이상 올라갔다.
     
    다만 정부는 이를 법령으로 강제하기보다는 '권고'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 배분 발표를 한 지난 20일 대구 한 대학병원 수술실 앞에서 시민들이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대 증원 배분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정부가 의대 증원 배분 발표를 한 지난 20일 대구 한 대학병원 수술실 앞에서 시민들이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대 증원 배분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부총리는 "최근 교육현장에선 (지역인재 선발비율을) 60% 수준까지 올리는 추세가 분명히 있고 그 이상 올려서 적용하는 대학들이 나오고 있다"며 "지역의 교육생태계를 살리고자 하는 열망으로, 지역인재 선발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적 수단이라 보는 합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같은 선발을 정부 차원에서 규제나 지시를 통해 '톱다운'(하향식)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상향식 방식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결정은 대학별 재량에 맡겨져, 증원분(分)이 지역인재 선발 제고로 직결된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의사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내세우는 대책은 충분한 수입 보장과 정주 지원으로 잔류를 유도하는 '지역필수의사제'인데, 이 역시 강제성이 없는 '계약형'이다. 앞서 야당이 발의한 지역의사 양성 법안(지역의사제)과 가장 구별되는 대목이다.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담긴 정부안은 학생이 대학·지자체 등과 계약을 맺고 장학금·수련비용 지원, 교수 채용 할당 등을 약속받는 대신 졸업 후 일정기간 지역 필수의료기관에 근무하는 방식이다. 아예 정부가 정한 병원에서 '10년간' 복무를 의무화한 야당안과는 큰 차이가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필수의료 분야에 건강보험 재정을 집중 투입하고, 저출산으로 수요가 급감한 분만·소아진료 등은 '공공정책수가' 도입으로 보상 강화를 병행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더 매력적인 근무조건 등 시장 논리에 따른 변심과 이탈을 막기엔 너무 약하다는 게 중론이다. 애당초 의료계가 증원을 필사적으로 반대한 이유 중 하나도 '늘어난 의사들이 지역·필수의료로 유입될 수 있다'는 낙수효과에 대한 엇갈린 시각 때문이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의사들의 진료거부 중단을 촉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건의료노조가 의사들의 진료거부 중단을 촉구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을 '적극 찬성'해온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지난 21일 입장문을 내고 "비수도권 대학·국립대 중심의 증원 배정만으로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붕괴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도권 대형병원을 교육병원으로 둔 비수도권 의대 출신 의사들이 지역의료에 종사하지 않고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폭 증원이 의도한 효과를 보려면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 특히 그 중에서도 공공의료에 헌신할 수 있도록 지방 의료기관 근무를 못 박은 지역의사제와 필수의료 보상체계 강화 등이 강력히 추진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참여연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이 모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또한 논평을 통해 "국가 책임 공공병원 확충, 공공의사 양성 없는 지역·필수의사 수 확대는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2천'이란 숫자만 있지, 이를 뒷받침할 배치 정책은 빈약하단 취지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게다가 정부가 늘린 비수도권 의대 중 상당수는 수도권 소재 병원과 그 인근에서 교육·실습을 하는 '무늬만 비수도권 의대들'"이라며 울산대 의대(서울아산병원)·성균관대 의대(삼성서울병원 등)·순천향대 의대(순천향대 서울·부천병원)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의료취약지에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 자체가 없다. 지역이라 해도 피부·미용·성형 등 비급여로 돈벌이를 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며 "맹목적 시장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공공병원을 지역 곳곳에 확충하고 이곳에서 일할 의사를 책임지고 양성하지 않는다면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시장 지향 사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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