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노조가 죄입니까" 삭발·단식한 채 설 보낸 병원 치료사들



사건/사고

    "노조가 죄입니까" 삭발·단식한 채 설 보낸 병원 치료사들

    "7년간 오른 임금이라곤 기본급 월 8천 원 뿐"…선배 임금이 신입 초봉보다 낮기도
    노조는 물론 지노위도 임금체계 정상화·성실교섭 이행 요구하는데
    병원 "만성 재정적자로 임금 인상 못해…노조 갈등이 운영 악화 원인" 주장

    설날인 10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금천수요양병원지부가 병원 앞에서 23일째 농성투쟁도 진행하고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설날인 10일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금천수요양병원지부가 병원 앞에서 23일째 농성투쟁도 진행하고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
    설날 연휴, 서울 낮 기온도 5도 안팎으로 떨어져 목도리·패딩 등으로 중무장한 시민들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가운데,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 채 길거리에 앉아 '단식 농성'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거센 겨울 추위 속 서울 금천구 독산동 금천수요양병원 앞에 지어진 한 평 남짓한 크기의 흰 천막 농성장에는 15년 차 작업치료사인 임미선 보건의료노조 지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농성장 안에 바람막이 용도로 얇은 스티로폼을 세웠지만 바깥에서 새어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금천수요양병원지부는 지난 6일부터 임금체계 정상화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은 농성장은 밤이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바로 앞 10차선 대로를 지나는 차량 소음으로 잠을 청하기도 어렵지만, 임 지부장은 농성장을 24시간 지키고 있었다.

    "저임금·고강도 노동 시달리는데…병원은 중증병상 유치 몰두"

    설날인 10일 오후 2시쯤 서울 금천구 독산동 금천수요양병원 앞 한 평 남짓한 크기의 흰 천막 농성장에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임미선 지부장이 5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설날인 10일 오후 2시쯤 서울 금천구 독산동 금천수요양병원 앞 한 평 남짓한 크기의 흰 천막 농성장에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임미선 지부장이 5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나채영 수습기자
    임 지부장은 이번 설 연휴에 본가인 충남 홍성에 갈 수 없는 신세다. 임 지부장은 "고향 내려가서 가족과 시간 보냈으면 좋겠지만, 병원이 직원들한테 이번 명절에 선물세트 하나 안 줬다. 명절 수당 5만 원도 거부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달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삭발해 0.5cm 가량 짧은 머리가 아직 거뭇거뭇한 임씨. 최근 교섭이 결렬되자 돌입한 단식 농성을 5일째 이어온 그는 "직원들은 명절에도 고생한다"며 "병원을 향해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들이 이처럼 삭발·단식 농성까지 나선 까닭은 만성적인 저임금 구조와 비정상적 임금구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금천수요양병원은 2020년 임금 인상 이후 4년째 임금이 동결돼 10년을 근속한 직원의 임금도 최저임금을 겨우 따라가는 만성적 저임금 구조에 놓여있다.

    게다가 열악한 노동 환경과 직원 처우 탓에 퇴사율이 높고, 남은 인력에는 일감이 몰려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병원에 병상은 240여 개, 평균 환자 수는 190~210명 사이를 오가는데, 간호사·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 등 직원을 모두 합쳐도 총 120여 명에 불과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임 지부장은 "간호부 같은 경우 인력이 부족해 휴일을 반납하며 하루 16시간 근무하는 '더블근무'를 하는 상황"이라며 "최근 2년 동안 매년 간호부 퇴사율이 100%를 넘었다. 직원 1명당 많게는 70~80명까지도 환자를 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직원들이 고강도 노동에 내몰리는데도 병원이 노동환경을 개선할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중증 환자를 유치하는 등 병상 수를 늘리는 데만 몰두한다고 노조는 주장한다. 더 나아가 열악한 노동환경의 폐해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도 전가돼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말 안 듣는 노조 내쫓으려 교섭 지연?…'교섭 창구 단일화' 악용 의혹


    같은 병원의 15년차 작업치료사인 금천수요양병원지부 우시은 사무장은 다음 달 출산예정일을 앞둔 만삭의 몸으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우 사무장은 "관리자가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일부 치료사한테 비급여 치료를 몰아줬다"며 "비급여 치료는 30분에 최소 8만 원 정도 하고, 치료사가 30% 정도 가져간다. 비급여 치료를 하지 못하면 한 달 급여가 20만~50만 원까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금천수요양병원지부는 16시간 연속 근무와 근속연수·경력 등이 무시되는 임금체계 등을 개선하려 2015년 결성됐다.

    이후 노조가 열악한 노동 상황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홍보물을 시민에게 나눠주자, 병원은 노조를 상대로 명예훼손·손해배상 소송 등을 걸기도 했다.

    어렵게 노조를 세웠지만, 임금과 노동조건 차별은 계속됐다. 노조에 가입된 기존 직원은 10여 년 경력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심지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신입직원보다 임금이 100만~200만 원씩 낮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임 지부장은 "한 직원은 7년 동안 겨우 월 8천 원의 기본급만 올랐다"며 "장기 재직한 직원의 임금은 수년 동안 제자리인데, 신규 직원 임금을 더 높게 책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난 5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조정회의에서 사측이 조정안을 거부해 조정이 결렬되기도 했다.

    서울지노위는 "근속연수, 경력, 생산성 등 여러 요소를 고려,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 간에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임금체계를 마련하라"는 조정안을 내놨지만, 사측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임 지부장은 "지부는 17개 요구안 중 14개를 철회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교섭 타결의 의지를 보였으나 사측은 '임금동결 및 삭감, 구조조정, 폐업' 입장만 고수하며 조정안까지 거부했다"고 했다.

    병원 측 "만성 재정적자로 명절수당 못 줘…직원·환자 이탈은 노조 탓"

    연합뉴스연합뉴스
    반면 병원 측은 '만성적 재정적자'를 이유로 들며 '비상경영 상황'이라면서, 직원·환자들의 이탈도 노사 간·노조 간 갈등에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병원 측 관계자는 "노조 측이 2018년부터 5년간 누계 기준 약 4억 7천여만 원의 매출이 증가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코로나 비상사태 당시 일시적인 현상이고 당시 지출 비용을 고려하면 재정 악화는 더욱 심화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병원이 어려운 상황이라 명절 상여금도 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장기간 노사 간, 노조 간 갈등이 심화돼 신규 직원들이 적응하지 못해 이직하는 사태가 이어지고, 환자들이 병원에서의 요양을 포기하고 퇴원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입 직원과 경력 직원의 임금 역전 현상과 관련해 병원 관계자는 "병원 필수인력의 결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추가로 부득이하게 채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근속연수와 경력 등을 고려한 합리적 임금체계를 마련하라는 서울지노위의 조정안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연봉제 임금체계를 운영하고 있고, 교섭에서 논의하기 어렵다"며 "별도의 테스크포스를 만들어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교섭 장기화 사태는 직원과 환자 모두가 병원 운영에서 배제되는 것"이라며 "모든 결정 권한을 가진 병원장의 전향적인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