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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영웅'도 "손떨리고 잠 못자"…이태원 트라우마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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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영웅'도 "손떨리고 잠 못자"…이태원 트라우마 어쩌나

    대검찰청 청경 김보선씨, 이태원 참사 현장서 심폐소생술
    참사 사흘 째 트라우마 계속…"생각하면 손 떨려"
    남편 "아내 밤새 뒤척여…현장있던 사람들 걱정돼"
    전문가 "누구의 잘못도 아냐…주변과 소통 방법"

    지난 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지난 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그날 밤을 생각하면 갑자기 손이 떨려요. 심폐소생술을 했던 감촉도 아직 남아 있고요. 실려간 여성분은 깨어났을까요. 제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31일 김보선(46)씨는 사흘째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는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구급대원들과 함께 구호활동을 한 '숨은 영웅'이다.

    그는 가족과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현장을 목격했다. 구급차 사이렌과 비명소리가 겹치는 상황에서 "도와달라"는 외침이 들렸고, 곧장 도로로 뛰어들었다. 현직 대검찰청 청원경찰이자 응급처치 강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김씨는 "몸이 축 늘어진 사람들이 갑자기 도로 위에 놓이고, 구급대원들이 '도와달라'고 소리쳤다"며 "희생자들은 늘어나는데 구급대원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무의식적으로 뛰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30여분간 세 명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이 중 여성 1명은 신음을 뱉으며 잠시 의식을 찾기도 했다.

    문제는 김씨였다. 예상치 못했던 참사 탓인지 김씨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남편 장철희(46)씨는 "아홉살 아들이 옆에 있고, 인파도 계속 늘어나 얼른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질렀는데도 아내가 쳐다보지 않고 CPR만 해서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장씨가 완력으로 끌어낸 뒤에야 김씨는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부터가 더 걱정이다. 김씨가 평소 안 마시던 술을 마신다거나, 밤잠을 설치는 등 트라우마를 겪는 것 같아서다. 이태원 참사 뉴스를 보며 "너무 많이 죽었다"고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안타깝다고 한다.

    장씨는 "그 자리에 있던 아들에게도 영향이 있을까봐 TV는 아예 시청하지 못하게 코드를 빼놨다"며 "아내뿐 아니라 현장에 있던 경찰과 소방관, 거리로 나온 시민들 모두가 정신건강을 잘 관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스스로가 낯설고 죄책감도 든다면서도 극복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그날 내가 심폐소생술을 더 잘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솔직히 아직도 힘들고 잠도 안 오지만, 이겨낼 거고 다른 분들도 모두 이겨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전문가 "누구의 잘못도 아냐…주변과 소통도 필요"

    지난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류영주진 기자지난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애도하고 있다. 류영주진 기자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죄책감을 내려놓고, 주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고 조언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당시 현장을 목격한 사람뿐 아니라 영상으로 시청한 이들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며 "특히 소방이나 경찰 등 희생자들과 직접 접촉한 이들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지켜주지 못했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이번 사고는 결코 자신들의 탓이 아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분명 힘든 시간이 이어지겠지만 주변 사람과 자주 만나고 소통하는 게 방법"이라고 했다.

    임 교수는 '참사 영상' 시청을 자제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도 했다. 그는 "PTSD에 대한 전통적 치료법 중 하나가 '노출' 이후 '탈감작', 즉 상황에 부딪치고 극복하는 것"이라며 "이태원에 있었던 시민들이나 현장에서 애썼던 공무원 어느 누구도 자신의 탓을 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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