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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구타, 노역, 성폭행… 그 때, 난 13살 소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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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인터뷰]"구타, 노역, 성폭행… 그 때, 난 13살 소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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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걷다 끌려가…3년간 노역 강제동원
    구타에 성폭행까지…한마디로 '지옥'
    탈출하다 사망한 친구 직접 묻기도
    부랑아 딱지에 여지껏 숨기고 살아
    13년전 첫 진정, 다음달 결과 나온다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안영화 (사건 피해자)

    여러분, 선감학원을 아십니까? 일제 말기였던 1942년, 일본이 부랑아 소년을 교화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선감도라는 섬에 만든 수용시설입니다. 말하자면 소년판 삼청교육대인 셈인데요. 지옥섬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놀랍게도 1982년까지 운영이 됐습니다. 40년간 4600여 명의 아이들이 수용돼서 강제 노역, 구타, 고문에 시달렸고 일부는 암매장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공식기록된 사망자는 24명인데 정말 그뿐이었을까요. 선감학원 설립 80년 만에 본격적인 유해 발굴작업이 시작 됐습니다. 지금부터 당시 이곳에 강제 수감되고 암매장 작업에도 동원됐던 분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피해자 안영화 씨 연결을 해 보죠. 안 선생님, 나와계십니까?

    ◆ 안영화> 네,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현정> 네, 안녕하세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안영화> 71입니다.


    ◇ 김현정> 71. 52년생?

    ◆ 안영화> 네, 52년생.

    ◇ 김현정> 그럼 이곳에는 선감학원에는 몇 살에 끌려가셨어요?

    ◆ 안영화> 65년도니까 제가 13살 정도 됐죠.

    ◇ 김현정> 13살에 끌려가서 몇 년 간 계셨습니까?

    ◆ 안영화> 한 3년 정도 있었어요.

    ◇ 김현정> 13살에 끌려가서 열여섯까지. 그 당시 국민학교 5, 6학년 그때쯤인데 무슨 일로 거기를 끌려가셨어요?

    ◆ 안영화> 아버님이 일하시는 곳이 지금의 그 동인천 쪽에서 일을 하셨어요. 그 날도 다름 없이 다른 때와 똑같이 아버지한테 가고 있었죠. 그런데 한 중간쯤 왔을까 지금 정장 차림에, 둘이서 양쪽 팔을 잡아요. 으쓱한 골목으로 데리고 들어가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나 아버지한테 가니까 이거 놔 달라고.

    ◇ 김현정> 다짜고짜? 다짜고짜 그냥 양팔 잡고 끌고가요?

    ◆ 안영화> 그렇죠. 제가 무슨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뭐 누굴 때린 것도 아니고.

    ◇ 김현정> 걸어가고 있는데?

    ◆ 안영화> 저는 가정도 있고 부모도 다 계셨어요.

    ◇ 김현정> 뭐라고 하면서 잡아갑니까? 뭐라고 말은 했을 거 아닙니까?

    ◆ 안영화> 아니, 그러니까 갈 데가 있으니까 가자는 거예요.

    ◇ 김현정> 갈 데가 있다.

    ◆ 안영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특별히 무슨 이유를 대지는 않아요.

    ◇ 김현정> 갈 데가 있다고 하고 차에 태우던가요?

    ◆ 안영화> 아니에요. 그 근처에 수용소처럼 생긴 데 보니까 중학교, 고등학교가 그 당시 그 근처에 있었거든요. 지금 보니까 강당 같았어요. 그 당시에. 그런데 창문에는 쇠창살이 있었어요.

    ◇ 김현정> 쇠창살이 있는 강당.

    ◆ 안영화> 그런데 가 보니까 제 또래 되는 애들이 한 열댓 명 벌써 있더라고요.

    ◇ 김현정> 잡혀와 있군요, 똑같이.

    ◆ 안영화> 그렇죠. 제 기억에는 한 일주일, 열흘 정도 있었나? 그러니까 또 애들이 자꾸 오니까 늘어나겠죠? 한 30명 이 정도 된 거로 기억을 하고 있어요. 그러더니 어느 날 큰 트럭이 한 대 오더라고요. 그러더니 태워서 지금의 월미도 있는 쪽, 그 입구. 그쪽에서 그 배가 출발을 했어요.

    ◇ 김현정> 그때 한 30명 되는 아이들을 트럭에 태워서 배에 태워서 인천 주변 선감도 까지 데리고 갔다는 건데 그러면 그게 선생님, 끌려가신 지 며칠만입니까?

    ◆ 안영화> 거기에서 보름 정도 됐던 거죠.

    ◇ 김현정> 보름을 강당에 있다가. 그러면 그때까지는 부모님한테 연락이 안 됐어요?


    ◆ 안영화> 소용이 없어요. 우리 부모한테 연락을 해 달라, 또 그때는 사실 무슨 핸드폰이나 이런 게 없었잖아요.

    ◇ 김현정> 없으니까요.

    ◆ 안영화> 삐삐 이런 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연락을 주선을 안 해 주면 전혀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 김현정> 세상에, 그러면 부모님한테 연락도 안 가고 그렇게 잡혀간 채 선감도로 보내지신 거예요?

    ◆ 안영화> 그렇죠. 그렇게 됐습니다.

    ◇ 김현정> 선감도라는 인천 근처 섬에 들어가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졌습니까?

    ◆ 안영화> 지금 상상을 하시면 가끔 TV 보면 포로들 잡혀가는 거 있잖아요.

    ◇ 김현정> 그런 모양으로.

    ◆ 안영화> 상상하시면 돼요. 그렇게 끌려서 갑니다. 가면 입고 온 옷을 다 벗기고 거기 원복으로 갈아입힙니다. 기상을 하면 노동으로 시작해서 노동으로 끝납니다.

    ◇ 김현정> 노동이라는 건 뭘 시키던가요, 그 어린 아이들한테.

    ◆ 안영화> 주로 그 당시에는 농사일이죠. 농사하고 그 당시에 누에를 키웠어요. 누에도 키우고 거기에 염전이 있어요. 저보다 조금 큰 형뻘 되는 친구들은 염전 쪽에 가서 일을 했고 항상 무슨 일이든지 할당량을 줘요.

    ◇ 김현정> 할당량을 줘요, 아이들한테.

    ◆ 안영화> 그러면 그 할당량을 마치지 못하면, 물론 그냥 죽을 둥 살 둥 이렇게 하는 친구도 있지만 개중에는 약하고 못하는 애들을 있잖아요. 매일 있어요, 항상. 그러면 사장이라고 우리 반장식이죠. 추궁을 받죠. 이 할당량을 못 채웠으니까. 그러면 화풀이, 분풀이가 저희한테 돌아오는 거예요.

    ◇ 김현정> 어떤 식으로요, 화풀이는 어떤 식으로?

    ◆ 안영화> 누가 하나 했다고 그 친구만 혼나는 게 아니고 거의 뭐 연대책임을 물어서 단체기합으로 들어갑니다.

    ◇ 김현정> 단체기합은 어떤 거 받으셨어요.

    ◆ 안영화> 우리가 소위 말하는 원산폭격, 머리 박기, 우리가 쉽게 말하는 기합은 거기서 우리가 다 배웠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아니, 그 어린 친구들을 데려다가 교육이 아니라 노예 부리듯이 부린 것 같아요.

    ◆ 안영화> 진짜 한마디로 얘기해서 제가, 난 사실 천국은 모릅니다. 그런데 진짜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런 데가 지옥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면 겨울에 추운 날이고 여름에 더운 날이고 이런 거 다 상관없이 일 시켰습니까?

    ◆ 안영화> 그렇죠. 저희는 겨울에 따뜻한 물은 쓸 수도 없고 거의 동상은 달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각종 질병, 홍역, 기아, 추위, 노동, 각종 질병 이런 게 진짜 견디기 힘들었어요.

    ◇ 김현정> 밥이라도 잘 먹여줬나요?


    ◆ 안영화> 밥 한 그릇에 무슨 새우젓 반찬 같은 거 이런 거 한 가지예요. 그러니까 항상 저희는 배고프죠. 그러니까 배가 고프니까 산에 가서 이런 거 저런 거, 그리고 특히 거기 그 섬에는 뱀이 많았어요. 배고프니까 단백질 섭취를 하려면 겁이 없는 애들은 뱀도 잡아서 먹고 심지어 쥐도 잡아서 먹고 이랬어요.

    ◇ 김현정> 세상에, 단백질 섭취는 해야 되는데 방법이 없으니, 고기 반찬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 안영화> 아주 열악한 상황이었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그럼 영양실조로 죽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 같고 매 맞아 죽는 아이들도 있고.

    ◆ 안영화> 그래서 그 묘역에 가면 대개 죽은 애들이 매 맞아서 그 후유증, 또는 도망가다 죽어서 다시. 도망가다 죽으면 물이 다시 들어오면 떠밀려서 다시 들어오게 돼 있어요. 물살이 그렇게.

    ◇ 김현정> 그렇게 탈출 시도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 안영화> 그럼요. 그렇죠. 그래서 그런 친구 제가 하나 묻은 친구도 있어요. 거기. 제가 직접.

    ◇ 김현정> 그러면 탈출 시도하다가 죽은 친구는 바다에서 익사를 한 걸까요, 아니면 잡혀서.

    ◆ 안영화> 익사죠, 익사.

    ◇ 김현정> 익사로.

    ◆ 안영화> 도망가다가 물을 건너서 헤엄쳐서 가야 되니까. 그걸 이기지 못하고 죽어서 떠밀려 오는 거죠.

    ◇ 김현정> 그런 경우도 있고. 영양실조도 있고 매맞아 후유증으로 죽는 경우도 있고 도망치다 익사한 경우도 있고.

    ◆ 안영화> 그렇죠. 특히 거기는 의료시설이 잘 돼 있지 않으니까 이게 무슨 병이나 이런 게 걸리면 자연치유 되는 거로 기대할 수밖에 없어요.

    ◇ 김현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다가 아프면 당연히 바깥에 있는 병원으로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 안영화> 당연하죠. 그건 당연한데 그게 다 갖춰지지를 않았어요. 거기가 무슨 말로는 학원이라고 그러는데 거긴 수용소였었어요.

    ◇ 김현정> 수용소. 알겠습니다. 좀 끔찍한 이야기기는 한데 여자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성폭행도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 안영화> 여자들은 없었어요. 여자들은 없었는데 조그마한 친구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그 나이 많은 친구들이 그 성폭행도 하고 그랬어요.

    ◇ 김현정> 그러면 이 성폭행이 있었다는 게 여학생들이 끌려와서 성폭행 당한 게 아니라 남자 학생들.

    ◆ 안영화> 그게 아니에요. 남자들한테 그러는 거예요. 거기는 여자 수용소가 아니고 남자 수용소였어요.

    ◇ 김현정> 남학생들만 있는 수용소에서 성폭행까지 벌어졌다. 이거는 뭐 거기 있는 어른들에 의한 성폭행이 아니고 그러면 그 동료들 사이에서 또 성폭행이 벌어졌다는 거군요. 질 나쁜 학생들이 약한 학생들에게 그런 일을 하는 또 그런 것도 벌어졌다.

    ◆ 안영화> 그렇죠. 네, 그런 일도 있었어요.

    '소년판 삼청교육대' 라 불려 온 '선감학원'의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유해 발굴이 시작된 26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선감동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들이 시굴을 하고 있다. 안산=황진환 기자'소년판 삼청교육대' 라 불려 온 '선감학원'의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유해 발굴이 시작된 26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선감동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들이 시굴을 하고 있다. 안산=황진환 기자
    ◇ 김현정> 지금 공식 집계돼 있는 사망자 수는 24명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세요?

    ◆ 안영화> 그거는 저희는 직접 신고된 건 24구라고 그러는데 조사를 한 게 있어요. 150구 정도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 발굴해 보면 결과는 나오겠죠.

    ◇ 김현정> 선생님도 친구들 암매장 하는데 동원되셨었다고 들었어요.

    ◆ 안영화> 그럼요. 제가 직접 떠밀려온 친구를 들것에 싣고 가서 거기서 가서 묻었어요.

    ◇ 김현정> 장례 절차는 그래도 치러주고 매장합니까?

    ◆ 안영화> 장례가 어디있어요. 그냥 가서 거적대기에 싸서 그냥 묻는 거죠.

    ◇ 김현정> 거적대기에. 그렇게 묻었던, 3년간 계시면서 그렇게 암매장 됐던 사람들 수만 헤아려봐도 24명은 택도 없습니까?

    ◆ 안영화> 내가 있을 때 죽은 친구들이 한 네다섯 명은 됐어요.

    ◇ 김현정> 3년 동안 네다섯 명을 보셨으면 이게 40년이라고 쳤을 때는,

    ◆ 안영화> 제 기억에는 그렇게 한 네다섯 명 정도 있었어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지금 저는 어떻게 이런 일이 1982년까지 벌어졌는가 참 이해할 수가 없는데.

    ◆ 안영화> 그러니까 묻혀 있어서. 그게 부랑아라는 딱지 때문에 저희들이 사실 이걸 숨기고 살아 왔어요, 여지껏. 우리가 처음 진정서를 낸 게 한 13년 전이거든요.

    ◇ 김현정> 삼청교육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공론화가 빨리 됐는데 선감학원 같은 경우에는 그동안 많이 감춰져 있다가 공개가 된 거네요. 용기를 내시면서.

    ◆ 안영화> 그렇죠. 저희도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다 이런 것이 있구나. 그래서 진정서를 내고 저희가 말하자면 이거를 밝히려고 그런 게 지금 한 13년 돼서 지금 여기까지 끌고 왔어요. 그래서 한 10월달 정도면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요. 그동안 상당히 고생 많이 했죠. 국회로, 경기도 지방정부로 청와대로 쫓아다니면서 진정 넣고 빨리 법을 개정해 달라고 해서.

    ◇ 김현정> 그럼 여기를 40년 동안 거쳐 간 사람은 몇 명이나 될 걸로 지금 보나요?

    ◆ 안영화> 제가 있을 때는 한 200에서 한 300명 정도.

    ◇ 김현정> 수용자가.

    ◆ 안영화> 그렇게 있었어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지금 말씀 듣고 보니까 참 기막힌 일이고 이게 아주 예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1980년대까지도 존재했다고 하니까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요. 이번에 발굴 작업. 제대로 이루어져서 비명에 숨진 청소년들, 그분들의 넋도 기리고 또 감춰졌던 이 드러나기를 저희도 기원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 안영화> 감사합니다.

    ◇ 김현정> 선감학원에 13살에 끌려갔던 피해자입니다. 안영화 씨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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